... 제2차 냉전시대에는 직접적인 전투나 전쟁은 없었으나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같은 생화학 무기가 전투를 대신하여 진영 대 진영의 양상을 격화시켰다. 바이러스는 모든 생산 활동에 제동을 걸었고 인류의 생산성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상대 진영에 속한 민간인은 무차별적으로 사망했다. 하루 사망자가 2차 세계대전 하루 사망자보다 많았다. 몇 번이고 우연의 형태로 이 바이러스는 진화하여 2차 코로나발, 3차 코로나발 하는 식의 넘버링이 붙었다. 모두 어디서부터 발생한 건지 알 수 없는 끔찍한 혼종 바이러스였다. 모두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발생하고 음모론이라는 장식이 붙어 사회와 여론을 혼란에 빠뜨렸다. 소외된 건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없는 취약 계층뿐이 아니었다. 정보의 비대칭은 항상 문제였다. 한편으로는 지배의 열쇠였다. 1차 코로나 19 시기에 전 세계가 올 스톱한 그 시점에서 일론 머스크 1세가 최초로 민간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린 것이, 그것도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이 우연이라고 보는가?...
<한 시간 만에 다 읽는 제3차 세계대전> 중에서
매달 있는 대청소지만 리스트업 된 청소 항목은 매번 늘어간다. 열 대의 로봇과 청소 외주 로봇들, 그리고 나라는 인력까지 투입되는 대청소는 하루 반나절도 안 돼서 끝나지만 엄청난 매너리즘을 동반한다. 지겨워 죽겠다. 여기에 백 년 동안 발생한 수만 가지 바이러스를 일쾌에 퇴치하는 버전 업된(이것도 일주일에 한 번씩이다) 소독 가스도 당국으로부터 내려온 지침에 따라 살포해야 한다. 죽어라! 랩틸리언! 물론 랩틸리언은 수백 년 동안 발견되지 못한 전설의 파충류 외계인이다. 호수 괴수인 네시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이상하게 제국의 교육은 괴수 형태를 한 러버와의 수간질은 용인하면서 진짜 혼종과의 교접은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 물론 이계의 종은 없기에 물리적으로나 러버적으로나 교접의 상상은 상상일 뿐이다. 2143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어떤 외계 생명체도 발견하지 못했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새티 프로젝트에 더러 외계 신호가 잡히고 그 신호를 쫓아 가장 먼 태양계의 끝까지 추적하였으나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시간 낭비라니까?” 예전에 어떤 손님이 이렇게 비아냥거리는 걸 들은 적 있다. 아니, 그럼 지금 시간 낭비 안 하고 있는 인간이 있다는 말인가? 어쨌든 나는 내 시절에, 내 시대에, 내가 사는 시간에 외계인을 보고 싶다.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그나저나 당국이 걱정하는 건 이계의 존재가 아니라 돌연변이인 것 같다. 화성과 기타 소행성계, 우주공간에서 지구와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인간은 비록 그 본질과 형태, 습성이 수천 년 전의 인류와 큰 차이가 없다고 해도 사고방식부터 해서 지역 특, 지방 특, 지리 특의 여러 특색이 있고 이 특색의 차이가 제국에 분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벌써 내전과 반란이 몇 번이나 일어났고, 또 일어나려다 말았는지... 하여간 지난 인류와 지금 인류와의 차이 서술... 벌써 백 년 전의 인간과도 우리는 많이 다를 것이다. 일단 48시간을 하루로 써도 백 살은 넘게 산다는 점, 또한 조금의 산소와 조금의 잠만으로 생존이 가능하다는 점이 그렇다. 이건 ‘진화’일까? 오히려 지금은 이런 생존 능력이 없는 인간을 도태된 돌연변이라고 보기도 한다. 차별금지법 제12조 7항에는 대수면, 기면증, 산소 과다 사용 등을 이유로 한 괴롭힘을 금지하고 있으나 잘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여전히 인간은 이질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돔 안의 지구는 ‘진화(라고 부르고 현상유지)’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뇌과학은 아직도 각광받는 분야다. 그 아인슈타인도 평생 뇌를 3%밖에 못 썼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 뇌의 잠재력에 대한 맹신도 웃기지만 퍼센티지를 따져 가며 인간의 생산력을 평가 절하하는 시선도 여전해서 나는 그게 웃기기만 하다. 인간이 언제부터 그렇게 ‘생산적’이었나? 역사시대의 진입 이후로 수천 년을 놀고먹다가 겨우 근세의 백몇십 년 동안의 광포할 정도의 과학의 발전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었다. 이 말인즉 살아남을 것들만 살아남았고 그 살아남음 속에서 미친 듯이 발전했다는 말이다. 지구는 계속 이 생존에 딴지를 걸었다. 딴지뿐만 아니라 온갖 복수와 저격과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인류는 바퀴벌레의 생명력마저도 이겨냈다. 그 저격과 복수와 딴지로 인해 강해졌다. 바이러스의 공격에도 살아남았고 핵전쟁에서도 살아남았고 온갖 류의 자원고갈과 파괴된 환경에서도 살아남았다. 여전히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라고 할만하다... 음, 이렇게 적어야겠지? 수천 년간 답보 상태였던 바다의 밑, 해저 세계도 40%는 똥 마니아, 아니 지구 탐험가와 과학자들, 해군에 의해 밝혀졌다. 혹자는 외계인이 발견된다면 차라리 해저에서 발견되는 편이 빠를 거라고 하는데 그 말에 동의한다.
통 식욕이라는 게 돌지 않는 우주 공간이지만 소마 알약 따위와는 조금 다른 차원으로 전두엽에 자극을 주는 ‘코냑’을 ‘코스모스 감자칩’과 함께 먹으면서 일지를 쓴다. 백오십 년 전쯤 흥행한 책 시리즈 중에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게 있었다. 그 책을 VR로 복간한 것을 보고 여덟 살의 나는 포복절도를 했다. 까무러치게 웃었다. 당시 미국이 사막에서 우주선을 주웠는데 거기에는 죽은 외계인이 있었다고 한다. 이 죽은 외계인을 데려다가 미국은 암암리에 실험을 하고 채집을 하고... 이 사실은 FBI(당시 미 연방수사국)에 의해 통제되다가 외계인을 처음으로 직접 목격한 대령이 죽을 때 “외계인은.... 있다!”라고 양심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 함께 실린 사진은 실제 사진이라고 백오십 년 당시에는 알려진 모양이다. 옷을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은(아니, 지적 설계자이며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문명에의 욕망을 가진 이가 패션에는 욕망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단 말인가?) 외계인의 사진이었다. 머리가 크고 눈은 커다란 타원형에 체모가 하나도 없는 중세 영화 <E.T.>의 그 모습 그대로인 참 게으른 상상력의 날조된 사진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우스꽝스러운 옛 자료를 보면 그래도 지금의 인류와 ‘호기심’ 면에선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다. 한편으로는 지구 평평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전하다는데서 수천 년의 인류의 원형성, 집단 무의식의 전승을 느낄 수 있었다. 중세 영화 중에 <에이리언> 시리즈 라든지 <프로메테우스> 시리즈 등. 외계 생명체 탐구 분야의 선구자격 영화가 더러 있기는 해서 나는 이런 영화나 책을 보는 걸 좋아한다. ‘신’은 아직도 발견되지 못한 미스터리지만 이런 옛 자료에서도 지금의 신을 찾으려는 그 갈구, 탐구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간을 창조한 지적 설계자, 인간이 창조한 로봇, 평행우주를 따라 그 로봇이 창조한 지적 설계자... 이런 구조로 물고 물리는 지배관계의 역설도 재미있다. 아무도 그 옛날 영상이나 책을 '체감'할 수 없이 그저 바라만 보는 그런 방식의 감상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나는 고전적인 인간이라 그런 걸 좋아한다. 고전 마니아이다.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한다. 내가 백오십 년 전쯤, 아니 2020년쯤의 지구에 간다면 나는 외지인 취급을 받을까? 외계인 취급을 받을까? 지금의 지구에서도 괴짜 취급을 받은 나지만 오히려 옛날 시대에서는 덜 괴짜 같지 않을까? 긁적긁적. 이건 고전 마니아만 아는 의성어 글로 쓰기 전법이다. 물론 “-전법이다”라고 쓰는 것도 고전 마니아만 아는 것이니 일지에만 남겨둔다. 쩜쩜. 이만 줄여야겠다. 호텔에 묵던 리얼 로맨티스트들이 드디어! 지구 평평설을 입증할만한 증거를 찾아 소행성계로 떠난다고 한다. 낄낄. (똥)무기여 잘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