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강 랩소디
아침에 '브런치'에 백설공주 글을 쓰고 우연처럼 북한강의 어느 카페 테라스에서 '브런치'를 먹으면서 강가의 풍경을 보았다. 작년 이맘 때쯤 갔던 쾨니히 호수 같은 풍경과 겹쳐 보이는 너무나 아름다운 천혜의 모습. 그때보다 더 유럽같은 음식과 건물, 유유히 흐르는 강물, 산들거리는 바람, 아직 지지 않은 빨갛게 물든 담쟁이덩굴, 카페를 뒤덮은 식물들과 건너편으로 보이는 가옥들, 그 중에서는 퓌센의 디즈니랜드 성을 연상케하는 고전식 건물도 있었다.
쾨니히 호수에서는 상인들에게 다소 문전박대를 당하고 눈치밥으로 전병 같은 걸 먹고 알프스의 그 청명하고 깨끗한 호수를 비추어 보았던 것이 전부였지만 오늘 북한강에 가니 그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쾨니히 호수에서 호수를 따라 호수에 떠 있는 섬을 가고 또 그 주위를 도는 배가 뱃고동 소리를 내었지.
조심하라고, 또 조심하라고
쾌락의 섬의 뱃고동 소리처럼
카페 건물에서 스쳐 가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 같이 다 부러웠다. 갓 태어난 아기가 하얀 레이스 뜨게질 모자를 쓰고 방긋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눈물이 질질났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다시 보고 싶다
그런 풍경이었다, 그 속에 나도 있었던... 나는 많은 것을 누렸다. 여태 그걸 몰랐다. 그럼에도 누리고 또 누리고 싶다. 생이 이렇게 아름다운 걸 미리 알았더라면, 악마의 소굴이라 해도 자연은 새록새록하고 또 강물은 넘실넘실 평화롭게도 흘러가던 걸... 브런치 하나, 둘 5만원에 이 세상을 천국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분에 넘치는 자리에서 쾨니히 호수 같은 북한강을 바라보는, 그런 나라에서, 그런 계층으로, 그런 인간으로 태어나 누리고 또 누리고...
그런데도 살고 싶었다
세상은 지금 뒤집어져 보인다. 우연이라는 악마가 숫자 장난질을 하고 우연히 들리는 말들도 모두 악마의 표식 같다. 컴퓨터도 악마, 휴대폰도 악마, 인터넷도 악마, 티비도 악마, 유튜브도 악마, 모두모두 악마의 것, 숫자는 악마, 과학은 악마의 언어, 신은 없는데 악마는 산재하고... 천사는 무슨 언어로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악마의 언어로 또 컴퓨터를 틀어 글을 쓰는 나와, 무엇으로 남으려는 악마의 마음, 또 회개를 하고, 죄를 저지르고...
많은 것을 누렸다. 언니를 생각한다. 미워했던 언니, 짐스러웠던 언니, 미안한 언니, 그리고 언니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간 나. 언니가 누릴 것을 뺐어서 누렸던 나. 엄마의 사랑을 빼앗긴 건 나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의 사랑을 그만큼 받고 내 옆에는 내 말을 하나도 믿어주지 않지만 수많은 여행, 스물 몇 번의 여행을 동행해준 남편이 나를 여전히 사랑해주고 있다.
눈물이 또 계속났다
오늘 북한강이 너무 아름다워서, 건물에 실룩거리던 그 많은 담쟁이덩굴이 아름다워서, 계절엔 죄가 없는데, 자연에는 죄가 없는데, 나는 프레임에 갖혀서, 나만 불쌍하다고 여기고, 여행, 수십 번의 여행을 떠올리고, 결혼을 떠올리고, 성대했던 결혼식과 호사스럽게 누렸던 아름다움, 예쁘게 수술한 쌍커풀, 원래 높던 콧날, 뻐기면서 지냈던 지금도 하얀 얼굴, 날씬했던 몸과 마음, 어딜가든 사랑 받으면서 지냈던 십수 년, 좋아하는 루이비통 백도 여러 개, 그득하고 죽으면 다 팔릴 것들만 잔뜩. 외면과 더불어서 재능도 십수 년 동안 꽃 폈었다. 예지와 예언을 위조한 악마의 언어... 누리고 또 누렸던 세월들. 그때는 감사함을 몰랐던 지금, 순간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색채. 조용히 옆 사람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침묵 속에서 하늘의 별이 이렇게 많고, 인간의 생은 짧지만 아름답다는 지혜를 왜 나는 몰랐을까.
작년에 내가 본 쾨니히 호수
오늘 내가 본 북한강 풍경
앞서 사라진 사람들이 못 본 풍경
언제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풍경
나는 오늘 행복했다. 행복했고 행복해서 더 살고 싶어서 눈물이 났다.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떠올리며 가슴을 쳤다. 베티나 블루야, 코로나 블루처럼, 그건 병이었어. 불멸 따위 전혀 중요하지가 않아요, 여러분. 지금, 지금, 구름이 익어가고 삶이 강으로 흐르는 악마의 세상을 사랑하세요.
저처럼 제3의 눈을 뜨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