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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울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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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Sep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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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대기질이 40% 좋아졌다고 한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공장이 일제히 작동을 멈춰서 그럴까. 올해의 벚꽃은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피었다. 봉긋한 꽃망울은 진하게 물든 여인의 빨간 입술처럼 꼭 다물고 있다가 뒤를 돌면 그새 색을 빼고 하얀 속살을 펑펑 터트렸다. 난분분(亂紛紛)한 하늘… 벚꽃이 나무의 가지마다 붙어 상당한 볼륨감으로 아치를 만드는 대모산 둘레길을 선민과 해지는 가벼운 차림으로 걸었다. 선민은 내심 해지와의 등정을 손에 꼽아가며 세고 있었는데 벌써 여덟 번째였다.


해지와 처음 만난 건 이주일 전 선민이 액션 캠 한 대와 8mm 옛날 캠코더 한 대를 들고 동네를 배회할 때였다. 어느 아파트 한 구석 노는 아이 하나 없는 을씨년스러운 놀이터에서 해지는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살구색 스타킹을 신고 그네를 타고 있었다. 누가 볼 수도 있는데 당당히 그 분홍 스커트를 바람에 날리며 얇은 발목으로 바람을 갈랐다. 벚꽃이 피는 모양처럼 스커트는 둥근 원형을 그리며 퍼졌고 멀찍이서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던 선민의 눈에는 단박에 눈에 띄는 피사체로 아로새겨져 왔다. 선민은 흥분이 되었다. 카메라 가방을 뒤적여 덜덜 떨리는 손으로 조립을 맞추고는 원경으로 날아가는 꽃잎을 담으려 애썼다. 우산 같이 퍼졌다가 모아지는 스커트의 모양새와 벚꽃 몽우리는 힘껏 제 몸을 웅크리고 다물었다가 하얀 속살을 화악 내뱉어냈다. 그런 색감이 눈에 아렸다.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얀 허벅지 속살이 비치는 어린 여자 아이의 다리가 만들어 내는 반복적인 리듬이 야하게 느껴졌다. 누구나 그 광경을 보면 눈을 뗄 수 없으리라. 하여간 이상한 여자애는 선민 기준으로는 그다지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는데 비슷한 나이 또래라는 걸 짐작할 수 있는 적당히 살이 붙은 탄력 있는 몸매와 아직 얼굴에 젖살이 빠지지 않은 통통한 얼굴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선민은 카메라 화각이 만들어 내는 프레임 안에 팔딱거리며 생동하는 꽃잎을 신나게 담아내고 있었다. 5m는 떨어져 있었는데 알록달록한 놀이터의 기구들이 일제히 일그러져 보이는 듯 어지러웠다. 머리가 띵했다. 액션 캠 카메라를 접어 가방에 넣으려 할 때 그네를 타던 그 꽃잎이 이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선민은 잠시 당황했다. 달아날까? 놀이터의 모래에서 바람이 일고 그네를 탈 때만큼 조심성 없는 걸음으로 걸어온 소녀가 대뜸 선민에게 물었다.


“너 뭘 찍는 거야? 변태야?”


선민은 당황했지만 여태 잘 해오던, 이를테면 친구들과의 대화 도중 딴생각을 하거나 상대를 집요하게 관찰하던 걸 들켰을 때 태연히 얼굴 표정을 바꾸고 분위기와 공기를 여유롭게 장악하던 것처럼 멀끔한 얼굴로 소녀에게 말했다.


“왜요? 놀이터를 찍었을 뿐인데.”


소녀는 손을 내밀더니 선민에게 카메라를 보자고 말한다. 선민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다. 몰래카메라가 아닙니다,라고 하며 선민은 특유의 궤변을 풀기 시작한다.


“확인해 보시려면 하셔도 돼요. 저는 단지 프레임에 걸린 생동하는 피사체를 우연히 담았을 뿐입니다. 광각으로 찍었기 때문에 몰래카메라라고 할 수 없어요. 조금의 줌도 당기지 않았습니다. 그네 쪽을 배경화 시켜 찍었을 뿐이고 거기에 누가 걸려도 찍었을 겁니다. 전 지금 다큐를 찍는 중이거든요.”


소녀는 금방 화났던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선민에게 물었다.


"무슨 다큐?"


가까이서 본 소녀는 역시나 그리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나 생기가 넘쳤다. 볼과 탄력 있는 하얀 피부의 몸매는 이 죽어가는 잿빛 코로나 전선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생명 덩어리 같았다. 생기,라고 할 수밖에 없는 미친 듯이 용솟음치는 생명력. 대단한 에너지를 가진 여자였다.


“물체와 비 물체 간의 상호작용 연구랄까. 양자 역학의 시각적 실험이랄까. 평행이론에 근거한 제2의 지구 연구랄까. 말해도 잘 모르실 거예요.”


소녀는 제 몸에 팔짱을 끼더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다. 분홍, 분홍… 입술을 오므렸다가 피더니 결국 카메라는 보여주지 않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그럼 나 찍은 거 영화에 나오는 거야?”


반말이다. 발랄한 반발심이 목소리부터 새어 나왔다.


“우선 씬과 컷을 내키는 대로 찍고는 있어요. 구상한 씬에 필요하다면 담겠지요. 얼굴이 안 나왔기 때문에 초상권을 주장할 수는 없을 건데… 원하시면 이름을 크레디트에 넣어드릴게요. 원하시나요?”


선민이 구상한 씬 같은 건 없었다. 능청스럽게 선민은 말을 늘어놓았다.


“글세, 일단 내 이름은 해지야. 대학생이야?”


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이름은 김영민입니다. 영화과 2학년 재학생이에요.”


물론 거짓말이다. 그의 이름은 이선민이고 명문대 S대 신문방송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한 스무 살 언저리의 애송이일 뿐, 현재는 코로나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백수나 다름이 없었다.


“아 진짜? 영화 만드는 사람이야? 신기하네, 그런데 여기서 뭘 하고 있어?”


코로나로 휴학했다고 둘러댔다. 나이를 물으니 동갑이다. 재수를 한다고 한다. 학원도 독서실도 다 문을 닫아서 근처에 여는 카페에서 공부를 하다가 답답해서 그네를 타고 있다고도 했다. 선민은 한 살 더 먹은 연장자 인척을 하면서 코로나로 개학이 미뤄졌다고 했다. 다니는 대학에 대해서도 묻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자 벌써 한 시간이 갔다. 소녀의 이름은 박해지였다. 해지. 박해. 지. 그 후로 해지와 선민은 함께 산에 같이 올랐다. 산이 배경인 11시간짜리 영상이 이것저것 뒤섞여 쌓여갔다. 분칠 하나 안 한 뽀얀 얼굴을 바라보면서 선민은 사람 없는 둘레길을 걸었다. 그게 벌써 여덟 번째다. 다섯 번째 등산에서는 처음으로 딥 키스를 하였다. 벚꽃은 팝콘 튀기듯이 펑펑 터졌다. 해지의 티셔츠 속에 손을 넣었다. 혀가 얽히는 촉감과 손에 쥐어지는 물컹한 물의 촉감, 어깨 위로 흔들거리는 벚꽃 가지 소리가 뒤섞여 황홀에 젖었다. 나는 봄이다, 너도 봄이다, 라는 문장이 나무 뒤에서 스멀스멀 올라와 섞여 들려왔다. 6번째에는 해지의 가슴을 입에 담고 빨았다. 작고 물컹거리는 좋은 촉감의 가슴. 만개한 벚꽃만큼 분홍색의 정점이 피어있는 가슴에 입을 맞췄다.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보산업고등학교를 다니는 해지는 사실 수능은 볼 필요도 없었다고 했다. 한 전문대학에 수시로 합격했으나 등록금도 안 내서 입학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사실 대학 갈 생각이 별로 없었어. 우리 반 애들 다 전문대나 가지 수능 보는 애들도 없었거든.”

“그럼 뭘 하고 싶은데?”

“수능 공부해 보니 집중도 안되고… 뭐, 기회가 된다면 BJ나 하려고 했지. 아르바이트할 거였거든.”

“무슨 콘텐츠로?”

“콘텐츠? 풋, 그냥 먹방? 아니면 다이소 쇼핑?”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사고 출신인 선민은 해지가 만만했다. 넌 친구도 없니? 선민은 해지를 향해 선공격을 했다. 응, 우리 학교 애들 개꼴통이야. 너는 근데 왜 혼자 다녀? 해지의 말에 선민은 우리 동네는 저기 4동이야. 다큐는 여기서 찍고. 진짜? 너 부자네? 부자는 아니고 그냥 중산층 정도지. 해지는 선민의 등 뒤로 펼쳐진 벚꽃을 바라보았다. 해지는 햇빛을 그대로 받아 반짝였으나 선민은 햇빛을 등지고 있어서 얼굴에 잔뜩 그늘이 졌다. 다섯 번째에는 삽입까지 가지 않았다. 그저 실컷 물고 빨았다. 해지가 손으로 대신 수음을 도왔다. 물티슈로 하얗고 미끄덩한 액체를 닦아냈다. 그 모습이 선민은 낯설고 창피했다. 얘는 대체 얼마나 발라당 까진 걸까? 닳고 닳은 년이라고 생각했다. 꼴통 학교를 다녔으니 그럴 수밖에… 둘이 들어가면 셋이 나온다는 곳 아닌가? 선민은 방금 전까지 경이롭던 해지의 몸이 고깃덩어리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욕심은 더 해갔다. 다음에는 자빠뜨려야지. 다음엔 더 디테일하게 찍어야지, 다음엔 다른 자세로도… 여덟 번째에는 마침내 원하던 모양과 시퀀스와 여러 각도의 쇼트로 흐드러진 벚꽃과 몽우리 핀 철쭉 아래서 그 짓을 하는 걸 촬영했다. 총 네 번의 사정으로 만들어진 대장편이었다. 선민은 해지에게 동의를 얻고 이 모든 촬영물을 오로지 자신만 간직하겠다고 입을 털었다.


“너는 너무 예뻐, 해지야. 나는 이렇게 예쁜 피사체를 본 적이 없어.”


이윽고 여덟 번째 만남에서 선민은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다. 말캉거리며 흔들리는 흰 가슴과 떨리는 속눈썹과 하얀 피부의 쇄골이 벚꽃처럼 붉게 번져 가는 모습을 언제 어디서 봐도 아름다울 최상의 모습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듯한 그 어설픈 몸짓이 궁극의 아름다움처럼 눈과 카메라에 새겨졌다. 선민과 해지는 겨우 맥주 한 캔을 마셨을 뿐인데 그것보다 더 큰 쾌락과 희열이 해일처럼 덮쳐왔다. 왕복으로 가는 여행길, 눈앞에는 별이 반짝였다.


“그래도 영민 오빠는 좋겠네, 대학생이잖아.”


해지는 하얀 셔츠블라우스 단추를 잠그며 물었다. 선민은 물끄러미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도 않아, 뭘 해도 지겹거든.”


대학 따위 제대로 다녀본 적도 없지만 하여간 모든 것이 지겨웠다.


해지와 만나지 않을 때는 집에서 영화를 대여섯 편 쌓아 두고 보거나 책을 그만큼 읽었다. 해는 점점 기울어져서 방을 가득 매우고도 쉬이 나가지 않았다. 봄은 한복판이었다. 선민은 이따금 밖으로 나와 카메라에 의미도 없을 부동물이나 정물, 표지판과 간판, 건물과 기울어져 가는 해와 바람에 흔들거리는 놀이터의 그네 같은 걸 찍었다. 사람도 없는데 저절로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그네에서 어쩌면 해지가 보였다. 바람도 해지처럼 찰랑였다. 해지는 이제 환상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선민은 해지같이 생동감이 넘치는 피사체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생동감과 에너지는, 그러한 생기는 흡사 소용돌이 같이 주위의 사물과 풍경을 부수적인 것으로 왜곡시켰다. 심도를 만드는 중심이 해지였다. 하얀 생명 덩어리. 이상하게 해지를 떠올리면 섹스의 욕구와 함께 살욕도 들었다. 생명력이 그만큼 강해서일까? 죽이고 싶다는 욕망이 거세었다. 그리고 죽인 피를 마시고 하얀 살을 잘라먹고 싶다는 식욕도 들었다. 그런 충동을 결코 성공적이지 않던 첫 번째 섹스부터 성공적으로 움직임을 담았던 세 번째 섹스까지 매번 느꼈다. 그런 충동은 점점 더 선민의 무의식을 침범했다. 아니, 점령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욕망의 덩어리이자 살덩어리! 그리고 뼈를 보고 싶은 기이한 욕구는 선민에게 카메라를 들고 동네의 가장 으슥한 곳으로 내몰았다.


남서쪽으로 자전거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폐허가 하나 있었다. ‘OO 환경센터’라고 불리던 자리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지금은 아무도 근무하지 않고 발길도 닿지 않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늪이며 연못이며 또한 잡초로 무성했다. 독풀 같은 게 자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봄에는 늪에 녹색의 풀이 둥둥 떠 다녔다. 벌레가 날았고 무너진 연못의 다리에는 갈대와 연잎이 앞다투어 엉켜 들었다. 마스크를 끼고 그런 것들을 손바닥 만한 카메라로 촬영했다. 늪이 된 환경센터는 몹시 더러웠다. 온갖 독충과 독풀이 자랐다. 60만 원 주고 산 소니 카메라로 이걸 담으면서 선민은 이상한 충동도 들었다. 늪 속으로, 심연 속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은 충동. ‘저 연못에 빠지면 죽겠지.’라고 생각할 때 넘실대는 물풀 사이로 더러운 이끼와 수포, 모기알 같은 게 올라왔다가 들어왔다가 반복했다. 바람이 일 때마다 수포의 간격은 일정한 유선을 그리면서 유지했다. 작고 작고 작고 작은 더러운 세계의 법칙. 자연의 견고함. 자연적 위계의 견고함. 위력. 자연의 위력. 볕살은 그늘 하나 만들지 않고 더러운 늪을 조명했다. 그걸 또 조망하면서 선민은 영상에 끔찍해서 말도 못 할 자연을 담았다. 선민은 시를 잘 알지 못했지만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시 중에 한 구절을 생각해냈다.



썩어 문드러진 배때기 위에는 파리 떼 들끓고    

거기서 까만 구더기 떼 기어 나오고

살아 있는 너덜너덜한 고기에서

액체처럼 걸쭉하게 흘러나오고 있었지


그 모든 것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나가며

반짝이며 솟아올랐지



교과서에 나온 시는 몰라도 선민은 그 시만큼은 좋았다. 어떻게 그런 추한 것을 기록할 수 있을까. 시는 화자를 포함한 두 남녀가 죽은 고양이 시체를 목격하는데서 시작해서 고양이 시체에 들끓는 구더기 떼 모습에 대한 묘사, 그리고 고양이 시체와 같이 유한한 육체인 여인에 대해서도 만약 여인이 저렇게 썩은 고기처럼 사라진다고 해도 기록으로 영원히 기억할 것임을 다짐하고 있었다. 그때 선민은 잠시 해지를 생각했다. 해지는 선민의 기억 속에 얼마나 남을지 모르겠지만 기록은 영원하다. 수십 개로 나눠진 파일 1, 파일 2, 파일 3… 해지는 남을 것이다. 단 한순간의 쾌락이지만 게임에서 전적을 쌓는 것처럼 그런 매치 포인트를 위해서라도… 하지만 선민에게는 해지에 대한 연민이나 애틋함은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해지의 어깨를, 그 하얀 어깨에 붙은 작은 점을 떠올린다. 디테일한 특이점을 선민은 잘 잡아낸다.


환경센터의 본관은 굳게 닫혀 있다. 그 벽으로 담쟁이덩굴이 온통 뒤덮여 있다. 본관을 잡아 삼키려는 듯 꾸역꾸역 올라가는 담쟁이덩굴은 족히 이층 높이는 되어 보였고 넓이는 벽면의 반 이상을 잠식했다. 응달에서 그만큼이다. 선민은 햇볕을 등진채로 담쟁이덩굴이 바람에 또 일렁이는 모습을 촬영하면서 빛이 덩굴의 안쪽을 파고드는 광경을 한동안 서서 바라보았다. 늪이 된 환경센터 앞의 연못은 멀찍이서 보면 흉물스럽기는 해도 어떤 사연이나 사정을 한껏 머금은 고딕적인 낭만과 우수, 그러니까 폐허가 주는 처절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축축 늘어선 잡초와 갈대… 몇 번 연못 주위를 거닐다가 한 시간 분량의 영상을 찍었다. 흐린 날에도 찍고 맑은 날에도 찍었다. 그렇게 환경 센터의 늪지만 서너 시간의 분량을 촬영하고 나서야 본관 뒤쪽의 작은 문을 발견했다. 나무판자로 온통 못질하여 막아 두었는데 누가 마구 뜯어 놓아 판자는 반쯤 벌어져 있었고 너덜너덜했다. 성인 남자인 선민이 몸을 반쯤 숙여 들어가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퀴퀴한 냄새는 문 안쪽에서 났다. 어두침침한 냄새. 어둠의 냄새. 응달의 습성은 독초를 문 안까지 피어나게 했다. 다소 축축하고 매우 어둡고 몹시 낡아 위험한 구조물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카메라는 야간 모드로 자동 전환되어서 녹색의 화면이 LCD 간이 화면 상에서 점멸했고 카메라 눈은 빨갛게 변했다. 어둠. 화면에 잡히는 건 다 무너진 계단의 잔해나 건설 폐기물, 음습하게 쌓여 있는 폐건물의 가구들, 이를테면 다리 하나가 없는 책상, 솜이 터진 의자, 깨진 게시판 보드…


무너진 창가에서는 빛이 조금 들어오고는 있지만 복도로 추정되는 1층은 어둡기만 했다. 폐허에는 음험하고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 흉가체험도 아니고… 선민은 중얼거리며 부서진 계단 쪽으로 돌아 나왔다. 그때 선민은 자신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지를 뻔했다. 누군가 쓰러져 있던 것이다. 박스 두 개를 펼치고 도포 같은 걸 덮은 검은 인영은 고함소리에 어둠 속에서 뒤척였다. 성인 남자로 보였고 굉장히 왜소했다. 소리마저 삼킬 어둠 속에서 인기척에도 놀라지 않은 듯 남자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잠자고 있었다. 특이할 점은 냄새였다. 몇 달은 제대로 씻지 않은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가 났다. 그의 주위에는 여러 가재도구와 쓰레기처럼 보이는 더미가 쌓여 있었다. 컵라면 용기, 씻지 않고 방치된 숟가락, 이 깨진 그릇 같은 것이 나뒹굴고 있었다. 몹시 어두었고 냄새는 몹시 불쾌했고 몹시 조용했다. 숨소리도 불규칙한 이음만 반복할 뿐이었다. 선민은 장대비처럼 내리는 습한 어둠 속에서 카메라를 켰다. 빨간 불이 들어오고 야간 촬영 모드로 바뀐 카메라 속 화면은 음산한 녹색으로 물들었다. 녹색의 형광빛 속에서 숨 쉬는 소리에 따라 들썩이는 인영, 마치 좀비 같은 냄새나는 시체를 찍고 이어서 그가 취식한 음식 찌꺼기와 나뒹구는 가재도구들, 곰팡이가 잔뜩 슨 이불 따위를 패닝 하면서 찍었다. 깜빡깜빡. 빨간 점은 딱 그만큼의 밝기로 어둠을 비췄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선민은 카메라를 껐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선민은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복도를 빠져나왔다. 저 폐허는 언제 사라질까? 선민은 말 그대로 도망치면서 연못과 더 큰 환경센터의 그 폐허를 빠져나오며 등 뒤로 폐허가 자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폐허가 언젠가 더 커져서 덮칠 것만 같았다. 마구마구 달렸다. 등 뒤로 노을이 또 졌다. 그 광기 어린 도주를 마치고 집에 와서 여태 촬영한 사나흘 분량의 영상을 날짜와 날씨를 제목으로 항목화 했다. 백여 개의 파일. 환경센터 촬영 전에 적은 시나리오대로 각각 촬영한 장면들을 1시간 40분 분량으로 편집하는 시간은 일주일보다 더 오래 걸렸다. 시나리오도 순서대로 찍을 장면만 적어둔 게 전부여서 거의 즉흥적으로 편집점을 잡아 영상을 이어 붙였다. 폐허가 자라나는 모습, 수풀이 죽어가는 모습, 살았지만 죽은 노숙자, 광기 어린 눈빛과 카메라 너머의 지옥, 카메라 옵스큐라에는 상이 맺히고, 그것은 어쩌면 거꾸로 맺힌 상, 중간중간에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해지의 몸이 흔들거리는 장면, 그 잔상이 사방으로 흔들리는 위태롭고도 원초적인 잔영, 이어지는 핸드헬드의 흔들림, 균형 깨짐과 비자유, 답답함, 진술할 수 없는 슬픔, 비대면으로 지켜보는 대면적 심연, 어둠의 끝없는 이어짐에도 자라나는 폐허… 모든 건 분절되어 있으나 이어져 있었다. 이틀 내내 영상 쪼가리를 영화의 형태로 내러티브를 부여하고 플롯대로 순서를 조정하고 등장하는 공간에 인물성을 입히는, 마치 공간이 사람처럼 살아 숨 쉬는 영상 하나를 만들었다.


제목은 <자라나는 폐허>.


선민은 이제는 생기를 잔뜩 머금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거울을 보면 뽀얀 얼굴은 분홍빛이 돌았고 눈빛도 맑고 명징했다. 표정은 거의 없어도 조금만 웃어도 뭇사람들의 호감을 살만큼 파급력이 있었다. 선민은 어디에서든 사랑받았고 또 어디에서든 저주를 받았다. 생기의 줄기 밑에는 언제나 어둠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저주의 깊이가 있었다. 죽음에 뿌리내린 아름다움이었다. 피할 수가 없는 죽음애. 선민에게는 그런 기이한 아름다움이, 죽음과 삶을 시시때때로 연결하는 중재자로서의 미덕이 있었다. 죄와 죄책감 사이. 삶과 죽음 사이. 칭찬과 저주 사이. 애정과 증오 사이. 생의 몫이 있다면 죽음의 몫이 있는 것이다. 마지막 타이틀을 만들어 올리며 타이틀을 마지막에야 찍어 올리며 선민은 중얼거렸다.


“생의 몫이 있다면 죽음의 몫이 있다.”


그 말을 그대로 마지막 –FIN-위에 실었다. 선민은 죽음과 더 친할 뿐이었다.


국내 최고라는 S대를 입학 전후로 몇 번 방문한 선민은 여름까지 내내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통통한 체격에 가냘픈 목소리로 간드러진 영어 말을 되풀이 하는 어느 유학파 출신 시간 강사의 강의를 틀어놓고 모텔에서 해지와 섹스를 했다. 거친 흔들림과 긴 사정 지연, 이제는 익숙한 반복 속에서 영화에 나오는 두 인물 중 하나인 해지를 내려다보면서 그 몸뚱어리의 위태로운 움직임과 불안한 매달림을 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영화의 나머지 한 명의 이름을 K라고 해야겠다, 그러니까 선민에게 ‘발견’된 그 노숙자를 K라고 엔딩 크레디트에 그렇게 새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숙인의 꿈틀거림과 해지의 몸짓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었다. K, 그리고 해지. 노숙인과 겹치는 그 죽음의 이미지, 시체 애욕과 겹쳐진 해지의 몸뚱어리에 흥분한 결과물을 쏟아내고 뒤돌아 누웠다. 해지는 영어 강사의 말을 조용하게 따라 하면서 선민의 등에 팔을 둘러왔다. 귀찮다는 말을 선민은 삼키기로 했다. 해지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영민아, 나는 아이는 낳지 않을 생각이야. 이 순간이 너무 좋기 때문에……내가 언제나 스무 살이었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죽어야겠지, 네가 언젠가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면 딸을 낳았으면 좋겠어. 그때 나는 네 옆에 없을 테니까. 나는 스무 살에 죽고 먼 훗날 네 딸이 태어나서 다시 0부터 시작하는 거야. 그리고는 또 스무 해를 살고……모르겠어. 그 이후는 생각하지 않기로 해. 우린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너도 동의하지?”


선민은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긴 잠이 찾아왔다. 깊고 오랜 잠을 잤다. 선민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해지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곳에도 해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 3일간 해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 두어 번 가고 영상에 K의 낙인을 찍고 완성한 선민은 3일 동안 해지 생각이 영 나지 않았다. 아마 귀찮아서 그런 것 같았다. 이미 영상은 완성되었고 해지 몸에도 더는 미련이 없었다. 그러다가 열흘쯤 지나 선민은 휴대전화로 해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몇 번 더 연락을 한 뒤에도 꺼져 있는 전화는 켜질 줄 몰랐다. 해지를 처음 만났던 놀이터에도 가끔 올라가는 등산로나 해지의 집 근처를 지나갈 때에도 선민은 해지를 만나지 못했다. 절실히 찾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선민은 더 이상 해지를 찾지 않았다. 공기처럼 해지는 선민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여행을 갔을까? 선민은 그 정도까지만 궁금했다.


선민의 관심사는 환경센터의 그 남자였다. 남자는 왜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었을까? 남자의 인영뿐만 아니라 얼굴도 찍기 위해서 선민은 카메라와 헤드라이트를 챙겼다. 이번에 들고 간 카메라는 부모님이 대학 입학 선물로 사준 삼백만 원가량의 캐논 DSLR 카메라였다. 적외선 기능이 배는 갖춰진 카메라에 헤드라이트까지 달고 주머니엔 혹시 몰라서 스위스 칼 같은 걸 넣었다. 준비를 다하고 오지의 디스커버리,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촬영자처럼 주머니가 잔뜩 달린 조끼를 입었다. 기습에 최대한 대비를 하고 마스크를 끼고 환경센터로 들어갔다. 일전에 갔던 연못에서의 지독한 악취와 썩은 물에서 피어오르는 수천 가지의 독초와 미생물, 꼬여 있는 날벌레 떼를 피해서 곧장 무너진 환경센터로 향했다. 환경센터의 울타리는 철책으로 꽁꽁 싸여 있었다. 구석에 크게 벌어진 빈틈은 전보다 더 크게 구멍이 나 있었다. 누군가 오고 간 흔적. 비가 내려 축축해진 구멍 앞 화단에는 발자국 두서너 개가 깊게 찍혀 있었다. 발 크기는 남자. 군화 같이 홈이 큰 밑창이다. 발자국은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다. 문구멍 앞에서 카메라를 조립하고 헤드라이트를 달았다. 선민은 카메라를 든 손과 몸을 구멍 속에 밀어 넣고 나머지 몸을 안전하게 넣었다. 오른쪽 주머니에는 종이와 펜이 있었다. 칼도 있었다. 왜 이렇게 목숨 걸고 환경센터로 향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호기심은 가끔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데…


선민은 다시금 그 폐허로 들어갔다. 선민에게는 카메라와 칼, 두 개 밖에 없었다. 선민이 지금 이 순간 죽는다 해도 부모 외에는 아무도 그의 죽음을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다. 해지처럼. 해지가 부모가 있었던가? 적어도 제대로 된 부모가 있었던가? 해지가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눈 앞에서 사라져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존재다. 해지와 어쩌면 선민. 하지만 스릴, 어떤 어두운 비밀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에 도취되어 선민은 어둠이 가득한 햇빛, 또는 볕살이 저 너머의 창가를 통해 조금의 웅덩이를 수십 개 만들어 내고 있는 창가를 걸어 들어갔다. 웅덩이는 밝았다. 가득하게. 햇빛 웅덩이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까맣게 색칠된 화면. 너무나 어두운 내부, 무너진 계단, 모든 게 쓰러진 복도를 걸었다. 발소리가 났다. 저벅저벅. 심장이 뛰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선민은 카메라를 고쳐 잡고 남자가 있던 곳으로 갔다. K는 그대로 있었다. 누워 있었다. 그 주위엔 다행히도 아무도 없었다. 다만 흩어진 것은 가재도구뿐. 바닥에는 화단에서 보았던 군용 워커의 발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적어도 두 명. 마스크 아래로도 누워 있는 노숙자 K에게서 나는 악취가 풍겨져 나왔다. 그저 위생상태가 나빠서 나는 악취가 아니었다. 그 순간 파리 떼가 K의 몸에서 한꺼번에 피어오르더니 윙윙대며 먹구름을 만들었다. 헤드라이트를 켰다. 선민에게도 파리 떼가 덮쳤다. 팔을 크게 휘저으며 K에게 다가가니 K의 몸에서 구더기가 흘러나왔다. 구더기 밑에는 검게 변색된 피가 응고되어 있었다. K는 엎드려 있었는데 허연 구더기가 그 몸속에서부터 파도처럼 흘러나왔다. 비위가 좋지 않았더라면 선민은 바로 토했을 것이다.


K(가명은 죽었다.


엎드린 K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저번에도 K는 눈을 감은 채 숨만 쉬었다. 선민은 K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카메라는 꼼꼼히 K의 뒷모습과 응고된 피와 흐르다가 멈춘 핏자국과 허연 구더기와 파리 떼를 찍었다. 헤드라이트를 껐다. 식은땀이 흘렀다. 뒤를 돌아서 내달렸다. 이제 곧 스무 살이었다.


여름 방학이 끝났다. 선민은 1학년 1학기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았다. 더불어 제출한 대학생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영화제 대상을 받은 날에는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선민은 해지의 얼굴이 그대로 나온 나체 영상을 켰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해지의 이름은 없었다. 미칠 듯이 수음을 한 뒤에는 K의 엎드린 시체 영상을 켰다. 죽음, 또 죽음. 선민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비는 주룩주룩 내렸다. 그리고 어둠.


잠에서 깼을 때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하늘은 맑았다. 선민은 맑고 서늘한 하늘 아래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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