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하우스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 모차르트 생가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있다. 괴테와 모차르트의 공통점은 두 사람 다 천재라는 것이고 오랜 시간 지나서도 생가가 잘 보존되어 그 불멸성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두 생가는 모두 한 때 그들이 살았을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 명은 문학과 문화, 연구를 위한 풍요로운 서재에서 영광의 흔적을, 한 명은 피아노가 흔치 않던 시절에(슈베르트도 죽기 일 년 전에 피아노를 처음 가져 보았다고 함) 피아노를 비롯한 여러 악기들이 장식되고 형제와 자매가 함께 그려진 초상화가 걸려 있는 고풍스럽고 넓은 집에서 문명의 흔적을 남겼다. 어느 독일 문화권의 시인과 작곡가.
파스텔 색상의 페인트칠을 한 고전적인 괴테 하우스 주위에선 기념촬영이 한창이고 잘츠부르크의 거리는 온통 모차르트가 그려진 미라벨 초콜릿을 팔고 있었다. 영광스러운 이름과 이름 사이, 불멸의 훤한 대낮에 무명의 내가 여느 관광객과 같이 오래된 집을 누비고 다녔다. <파우스트>로 유명한 괴테를 한동안 질투했었다. 괴테를 예시로 초인의 각본을 쓴 니체의 사상에 감화되었을 때에도 괴테가 초인으로 느껴지기보다 그저 노욕이 많은 영감 같은 이미지가 더 강했다. 그는 오래 살았으면서 영광을 동시대에도 누렸고 팔순의 나이에 십 대 소녀를 탐했으며 죽어서는 불멸까지 얻었으므로. 파우스트처럼 그는 악마와 계약을 하였으나 대가를 치르지 않은 것 같았다. 행운아였다.
잘츠부르크는 독일 방문 몇 달 전, 내가 쓴 시에 그가 등장하기 때문에 잘츠부르크에도 꼭 오고 싶었다. 모차르트를 찾아서. 잘츠부르크에 도착하자 기념 삼아서 모차르트 생가에도 가보고 초콜릿도 사고 모차르트 생가 기념품 상점에서 모차르트의 <Requiem> CD를 샀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진혼곡을 쓰다가 자신의 진혼곡이 된 그 음악을 들으면서 모차르트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다. 동시에 어떤 공포감도 들었다. 그는 괴테와는 다른 길을 걸었던 걸까? 몇 백 편이나 되는 기악곡을 서른 언저리의 나이에 다 토해내고 떠난 짧디 짧은 인생. 장대하고도 노련한 길을 걸은 괴테와는 다른 길. 유려하고 미려하고 정교한 기교와 산뜻하고 명쾌한 주제의식. 하지만 마지막은 더없이 장엄하고 엄숙했던 미완성. Requiem.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도시였다. 한 인간이 도시의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그 답을 잘츠부르크에서 잠깐 엿본 것 같다. 사운드 오브 뮤직도 이제는 세계인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니... 고전의 고전이 갖는 신성하지만 불경스럽고 아름답지만 악마 같은 선율만이 한 도시를 유령처럼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