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akothek der Mode
독일-오스트리아 여행의 마지막 하루는 뮌헨에서의 1박이었다. 오전에는 쾨르니 호수에 들렸다가 오후 점심 즈음 도착한 뮌헨. 10월 맥주 축제가 지나간 다음의 뮌헨은 무언가 한산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지나가고 오고 가는 사람들 모두 외투 재킷을 바싹 여몄다. 가을이 깊어지기도 해서 그럴 것이다.
남편과 렌터카를 반납하고 마지막 하루는 각자 보고 싶은 박물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오빠는 BMW 박물관에, 나는 노이에 피나코텍이 공사 중인 관계로 모던 피나코텍에 갔다.
숙소에서 피나코텍 미술관까지 가는 길은 걸어서 대략 30~40분 정도. 구글 맵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잔뜩 충전한 구식 아이폰을 들고 길을 나섰다. 걸어가는 내내 서울보다 위도가 높은 동유럽의 서늘한 날씨에 몸을 떨었지만 하늘만은 쾌청했다. 여행자를 반기듯 공원을 지나고 이름 모를 길가를 지날 때도 현대적이고 또 고전적인 도시 뮌헨은 아름다운 건축물을 눈앞에 펼쳐주었다.
고전 조각상(복제품) 박물관을 지나는 길. 하늘과 조각상 머리(?)와의 대비가 멋져서 사진을 찍었다.
오후 서너 시를 훌쩍 넘긴 시각. 드디어 눈앞에 파르테논 신전 같은 모던 피나코텍이 나왔다. 현대적인 건축물인데 왜인지 파르테논 신전이 연상되었다.
노이에 피나코텍(중세~18세기 미술작품이 모인 곳)이 공사 중이라서 이중에 렘브란트의 펜화와 드로잉 작품이 모던 피나코텍에 전시되어 있었다. 덕분에 렘브란트의 작품 세계를 일부나마 엿볼 수 있었고 '현대 미술관'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공업과 산업 디자인에 녹아든 미술, 이를테면 바우하우스와 아우디의 작품도 상당한 디테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현대 미술이라고는 해도 내게 흥미 있는 건 '회화'라서 회화 작품을 중점적으로 보았다.
칸딘스키, 파울 클레, 마티스, 르네 마그리트, 막스 베크만... 벼르고 있던 작가들의 작품을 눈에 담았다. 모두 경이로웠지만 역시 독일 출신의 화가인 막스 베크만의 연작이 그 큰 크기의 양감과 더불어 어떤 전율을 주었다. 또한 스위스 화가 페르디난트 호들러의 그림인 <Jena Student>가 인상 깊었다. 기지개를 켜는 꿀렁이는 몸짓 언어의 에너지가 거대한 크기의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한참을 앞에서 본 기억이 난다.
카를 호퍼라는 내게는 낯선 화가도 알게 되었다. 식물과 인간의 대칭 구조, 그리고 강렬한 선과 색상, 물결치는 에너지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고 숙소에 와서도 이 화가에 대해서 계속 찾아보았다.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거나 감상자와 눈을 마주치고 있지 않는데도 왜인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아우라가 그림 속에서 스멀스멀 나오는 듯했다.
세 시간의 짧은 관람을 마치고 아쉬운 마음에 도록을 샀다. 영문 도록을 달라고 말하니 직원이 꺼내서 주었다. 도록은 생각보다 그림보다 글이 훨씬 많았고.... 피나코텍 창립 시기부터의 동향을 다루고 있어서 내가 기대했던 위의 화가들의 멋진 그림들이 짜라란-하고 보이는 그런 도록은 아니었다. 아쉬운 마음에 이조차 여행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지만 말이다.
파리에서의 신혼여행에서도 4일을 내리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일정을 짠 나이기에 이번에도 미술관을 많이 가고 싶었는데... 오빠와의 의견 충돌로 결국 모던 피나코텍 한 곳 밖에 못 가서 아쉽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낸 세 시간 남짓한 시간이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은 가기 전에도 가고 나서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서울의 디뮤지엄에서의 책 행사를 마무리하고 가는 길이기에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권능감에 젖어 있던 때이기도 했다. 미술-관이라서, 이상하게도 그 관이 官이 아니라 棺인 것만 같은 느낌. 또는 기시감.
미술관은 미술 작품의 무덤이기도 하지만 영원히 살게 하는 신전이기도 하니까. 어쨌든 나는 내게 남은 시간, 어떤 절대의 세계에서 표류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