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참을 수 없는 관계의 모호함 Sep 2. 2023
얼마 전 현 소속 부서 동료들과 상급자들을 모시고 야유회를 겸해 근무지 근처 야트막한 산에 다녀왔습니다. 전에 근무하던 부서에서는 젊은 직원이라는 이유로 뒷산 산행 때마다 인솔자 역할을 했는데 꽤나 재밌게 했었습니다. 입사하기 직전에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 무작정 제주도로 떠났을 때도 계획에 없는 한라산을 찾았고, 절친한 친구와 을지로에서 가볍게 한 잔 하고는 바람 쐰다며 남산에도 몇 번 오른 적 있습니다. 모아보니 산을 오르는 걸 취미로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약간의 호감은 있는 것 같아 보이네요. 이렇게 산과 관련한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일기를 시작한 것은, 요 근래 겪는 일들이 산을 찾으면 겪는 일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상기한 뒷산 인솔자를 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해당 부서로 발령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상급자가 나를 불러 단 둘이 뒷산에 오르자고 했습니다. 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개인적인 고충을 들으려는 건지, 본인이 산에 오르는 걸 좋아해 말동무가 필요한 건지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알고 보니 뒷산 정상까지 오르내리는 길에 갈림길이 여럿 있는데 나에게 그 길을 하나하나 알려주려던 것이었습니다. 이 이정표를 보면 왼쪽으로 가야 비교적 오르기 좋다, 산스장(운동시설)을 지나면 계단이 보일 텐데 거기서 쭉 올라가면 뭐가 보인다, 내려올 때는 국기를 바라보고 몇 시 방향으로 가면 된다 등 꽤나 꼼꼼하게 설명을 들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부서에 무슨 일이 있어 뒷산에 갈 때마다 나에게 인솔을 맡기려고, 일종의 인수인계를 한 것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을 데리고 산에 오르는 게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대충 길도 익어 편안한 마음으로 올랐던 게 기억납니다.
그렇게 여러 번 오르고 나서는 익숙해졌다고 인수인계받은 곳이 아닌 다른 갈림길로도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익숙한 그 이정표를 보면 왼쪽 대신 오른쪽으로 가고, 세 갈래 길에서 항상 다니던 가운데 길 대신 양옆으로도 가보고, 내려올 때도 항상 다니던 방향 반대로도 들어서보고. 그동안 가지 않았던 길을 갈 때마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더니 그간 보지 못했던 기이한 모양의 돌이나 주인 모를 묘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도 그 길이 다른 길과 모아지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다시금 내가 알던 그 길을 걷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때때로 갈림길에 서고, 내가 선택한 길을 경험하며 나아가는 것. 그리고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중간중간 만나기도 하고 결국에는 가장 높은 곳을 찍고 가장 낮은 곳으로 돌아오는 것. 돌이켜보면 이게 산 정상을 찍고 풍경을 보는 것보다 더 재밌는 산행의 묘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지금 인생의 갈림길을 당분간 가를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삶, 그리고 그런 삶을 같이 할 수도 있는 사람 등. 그런 선택의 순간을 지나고 나서는 어떻게 될까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산행의 묘미를 참고해 유추해 본다면, 내가 선택한 바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며 책임지는 것. 그리고 그중에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살다 보면 택하지 않았던 길과 중첩되는 기간도 있을 거고, 결국에는 기쁘고 슬프고 화가 나고 슬픈 일들을 모두 겪고 생이 다 하게 될 것이라는 것 등이 있음을 추론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묘미, 오묘한 맛이 맞다면 꽤나 괜찮은 추론이었지요? 머지 않은 때에 맛보게 될 것 같아 기꺼이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