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게임이론은 가라

학부시절 청개구리처럼 전공수업보다 교양수업을 더 열심히 들었습니다. 다른 동기들이 학점 관리한다고 꿀교양을 찾아 들을 때 강의계획서 보고 듣고 싶은 과목(대중음악이론)을 듣기도 했고, 졸업을 앞두고는 전공학점 올린다며 교양과목 듣는 걸 꺼리는 분위기일 때도 끌리는 교양수업(국제개발협력)을 과감하게 넣기도 했습니다. 정말 교양을 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들은 과목들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은데요, 그중에 재밌게 들었던 건 경제학 관련 과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깊게 안 배우니까 재밌게 배울 수 있었겠죠?) 구체적으로는 경제학원론과 정치경제학입문을 듣고 개인적으로 인터넷에서 이준구 교수님 강의도 찾아봤었습니다. 졸업한 지도 어연 몇 년이 지난 지금, 당연하게도 그때 소 귀에 경 읽기 식으로나마 배웠던 경제학 이론들은 다 잊어버렸고 몇몇 내용들만- "경제학은 시장에 관한 학문이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등- 슬로건처럼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게임이론의 '팃포탯(tit-for-tat)'전략입니다.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내가 죄수의 입장이 된다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스탠스가 무엇인지를 연구하다 나온 전략이라고 합니다. 무슨 시뮬레이션대회에서 수많은 전략들을 제치고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는 것도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교수님께서는 해당 전략에 대해 말씀하시며 이는 비단 경제학뿐만 아니라 생태학, 나아가 정치학에도 유효함이 입증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본인의 폭풍 같던 공직생활을 예로 들어- 참고로 행시 재경직 출신이십니다- 정글 같은 사회생활을 할 때도 이 전략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이셨죠.


그 말만 철석같이 기억하고 있던 무지몽매한 학부생은 학교생활, 나중에는 사회생활을 할 때도 팃포탯을 항상 명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우선 주위 사람에게 협력하고, 상대가 나를 배신하면 나도 그 사람을 배신하되, 그가 다시금 나와 협력하기를 원하면 바로 이전의 호의적인 태도로 돌아가기로요. 물론 이론과 현실에는 무시할 수 없는 괴리가 있기에 모든 상황에서 팃포탯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아니었으나, 때때로 까다로운 상대와 같이 무언가를 할 때 의외로 요긴하게 썼던 적이 몇 있습니다. 이거 똑똑이들이 고민해서 만든 전략 맞군요?


하지만 이 훌륭한 전략에도 맹점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정글 같은 인간관계를 헤쳐 나갈 때는 다소간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친구-연인 등 사적영역에서 이를 쓰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한테 한번 서운하게 한다고 내가 부모님에게 즉시 되돌려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친구가 약속에 늦어 나를 오래 기다리게 했다고 내가 다음번 그 친구를 만날 때 되갚아주는 게 무슨 소용인가요. 연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과의 관계에서는 신뢰하고 지지하며 사랑하는 게 최고의 전략, 아니 전략이라는 말도 필요 없고 태도 정도만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는 기쁨이와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입니다. 나는 그를 알게 된 후부터 지금까지 그와 가까이하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한 방 맞으면 한 방 받아치는 팃포탯보다는 그를 생각하고 반가워하고 그리워하는, 그런 호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 아니 태도일 것입니다. 그의 침묵에 나도 두려워져 연락하기 꺼려지고 마음의 거리가 한 뼘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먼저 냉랭하게 대해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 그의 말대로 작별할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본 그의 얼굴에 나는 다시금 빠져들고야 말았습니다. 아직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고 있구나. 그렇다면 팃포탯같은 헛짓거리보다는 내가 그를 생각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이 전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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