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참을 수 없는 관계의 모호함 Sep 8. 2023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를 보고 잤습니다. 동명의 뮤지컬 원작도 워낙 유명하고 영화 자체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제 취향이 아니어서 오래도록 그냥 넘기던 작품입니다. 그러다 기쁨이의 추천으로 해당 영화를 접했는데요, 나름대로의 감상이 있어 적어보려 합니다.
우선 간단히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도나의 딸, 주인공 소피는 곧 결혼식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모녀에게는 한 가지 탄생의 비밀(?)이 있는데 바로 소피의 아버지가 누군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나는 소피를 가질 무렵인 20년 전 세 남자와 관계를 가집니다. 그리고 소피는 자신의 결혼식에 이 세 남성을 모두 초대한 상황이죠. 혹여나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 이 명작을 보지 않은 분이 계실 것 같아 구체적인 결말까지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일단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은 1) 언제 들어도 신나는 ABBA 노래, 2) 눈이 즐거운 군무, 3) 적절한 장면 간 충돌 정도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스토리가 전개되는 중간중간 펼쳐지는 ABBA 콘서트 같은 수록곡들 그리고 출연 배우들의 칼 같은 군무를 보며 눈과 귀가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아름답게 뻗어나가는 수평선과 지중해 어느 섬의 다채로운 색감은 덤이고요. 거기에 도나의 시선과 도나를 찾아온 세 남성(샘, 해리, 빌)의 시선이 병렬적으로 제시되며 적절한 충돌을 일으키고 등장인물 간의 긴장과 완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플롯은 상대적으로 단순했지만 덕분에 두 번 세 번 보지 않아도 되니까 잘된 거죠.
기쁨이는 언젠가 내게 이 영화를 보라며 나중에 둘 다 나이가 들면 본인을 만날 때가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때 반갑게 인사하지 않겠느냐며 수줍게 웃었습니다.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얼핏 들었던 한 외국 행위예술가의 퍼포먼스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난 웃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 보고 싶고 지금 함께 하고 싶은 건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만날 때가 있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 다시 만나게 되는 날, 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듣고 얼마 뒤 정말 그런 꿈을 꿨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말하는 기쁨이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맘마미아!>에 나오는 세 남성이 애잔하면서도 유쾌하게 도나를 대한 것처럼, 내가 그를 대하게 될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겠지요? 그에 대해, 그의 인생에 대해, 그의 사람들에 대해 더 알아갈수록 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생각- 자꾸 나 스스로를 비교하게 되고 자신이 없어진다고. 그걸 생각하면 내가 너와 앞으로도 즐겁게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을 여러 번 토로했습니다. 돌아오는 말은 "너가 자신이 없다니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난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아요. 기쁨이와 함께 하는 동안에는 지금을 생각하고 집에나 가서야 다른 생각들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영화로만 보고 잊어버리려고요. 내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