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복제시대의 눈부신 그대

발터 벤야민은 저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기술 발달로 예술이 가지던 아우라가 해체되고 사진이나 영상등 매체를 통해 예술의 대중화가 촉발되었다고 진단합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보려면 왕복 26시간을 비행해 루브르박물관 전시관 깊숙이 들어가야 하지만, 라이프지의 수록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종종 열리곤 하는 특별전시를 기다렸다가 한가람미술관에 가면 되는 게 좋은 사례가 되겠네요. 벤야민은 기성예술의 권위와 희소성을 담보하는 오리지널리티, 거기서 기인하는 아우라의 개념에 주목한 것입니다.


그의 미학개념은 인간관계의 공식으로도 치환해 볼 수 있습니다. 일상을 스쳐 지나가는 표층의 인간관계 말고 내심으로 한 발짝 들어온 심연의 인간관계를 말입니다. 회사에서 매일 보는 팀장은 그저 고리타분하고 곧 정년을 맞아 자리를 비울 날을 기다리는 사람이지만, 36년 6개월을 근무하고 내일자로 은퇴 후 인생을 준비하러 가는 우리 팀장님은 회사에 큰 애정을 가지고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좋은 말과 커피를 내려주시는 호인입니다. 대학원 수업 옆 자리에 앉았던 원우는 피곤에 절어 끝나는 시간만을 기다리는 학생1이지만, 통성명을 하고 고등학교 선배라는 걸 알게 되니 낮에는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책임감 있는 기자이자 없는 시간을 쪼개어 전문성을 기르고 있는 성실한 대학원생이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얼굴을 접하고 이야기 나누고 이내 돌아서고 하는 이른바 '경험복제시대'. 지금이 지나면 사람 1, 사람 2로 기억될 이들이 수십, 수백 년마다 한 번씩 지구를 스쳐 지나가는 혜성처럼 매일 쏟아집니다. 짧은 만남 이후 다시금 머나먼 길을 돌아 나선 자리엔 부스러기 몇 점 남겠지만 그저 우주먼지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혜성은 이름까지 붙이고 76년마다 기다리기도 합니다. 실상은 거대한 우주를 돌아다니며 알 수 없는 역학 메커니즘을 따라 지구 근처를 지나간 돌덩어리임에도 낭만 있는 이들이 생에 한 번 볼 수 있는 대상으로 이야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과 기억은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어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아우라를 품게 되었습니다.


기쁨이와 적어도 한 번 더 시간을 보내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경험복제시대에서도 선명한 여름날의 기억을 지나 서늘한 가을밤의 아우라를 담아내고 있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자꾸만 떨립니다. 그런 벅차오르는 마음을 담담하게 누르기에는 저 멀리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그가 혜성처럼 눈부시게 날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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