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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용 May 20. 2018

[몽촌토성 인터뷰 25-3] 상상해봤니 헤이리

헤이리의 신비한 게스트하우스

* 앞선 인터뷰를 먼저 읽으면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합니다(클릭 시 앞선 인터뷰로 이동)



‘여행자의 하룻밤’이라는 책을 집필했습니다. 만나온 여러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엮었는데, 독자들과 어떤 내용을 나누고 싶었나요? 

안 : 저는 이곳에서 사람을 만날 때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정의 내리지 않고 수평적인 관계를 항상 염두에 둬요. 제가 모르는 상대방을 만날 때 그를 먼저 스승으로 여기고 다가가요.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각양각색이고 다이내믹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감동으로 다가와요. 누구나 내가 살아온 인생과 다른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본인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미안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는데 그중에서 공감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이야기들을 묶어서 책으로 만들었죠.


 제가 감동을 느낀 다른 이야기들은 책이 아니더라도 미디어에 계속 글을 쓰고 있어요. 제가 이곳에서 존재하며 살아가는 한 해야 하는 의무로 생각하고 있죠. 내가 농사꾼이면 농사를 지어서 보답을 할 텐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재 이유라는 의무감을 가지고 쓰고 있어요. 


이안수 대표의 저서 '여행자의 하룻밤'


지금껏 정말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해왔는데, 대화를 나눌 때마다 염두에 두고 있는 소통에 대한 가치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안 : 모든 사람이 타당하다는 생각을 하고서 대면해요. 누구든 그 나름대로 옳다는 거예요. 이런 자세를 갖게 되면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게 돼요. 상대방은 본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터놓을 겁니다. 하지만 배척하는 마음이 드러났을 때는 대화가 진행되지 않죠. 누구든 마땅하고 타당하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말, 글, 영상, 사진 등 여러 소통 방식 중 본인에게 가장 편한 형태는 무엇인가요? 

안 : 가장 효율적인 소통 방식은 글이라고 봐요. 글은 정제되어 있기 때문에 짧으면서도 내용의 핵심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니까. 훈련된 대화도 상대를 기분 좋게 하고 서로의 반응을 즉각 알아챌 수 있기 때문에 깊은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영상이나 음악은 본인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형태죠. 타인은 동의하지 않더라도 본인의 개성을 내보일 수 있는 소통의 도구죠. 각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장점을 취하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인과 소통하며 지내지만 그 시간만큼 스스로의 내면으로 침전해가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타인과 소통하는 시간과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 : 맞아요 정말 중요한 문제예요. 우리는 일하느라 바쁠 수밖에 없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쓰러지듯이 샤워 후에 잠이 들죠. 저도 나름대로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로 인해 한가한 것만은 아니지만 꼭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요. 제가 스승으로 삼고 있는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은 반드시 자급자족을 위한 시간, 자기 자신을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런 삶의 패턴이 조화로운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누군가와 대화한 후에는 꼭 서재에서 원고지를 마주하고 저만의 시간을 가져요. 그러면 가지고 있던 불필요한 생각들은 침전되고 필요한 생각들만 잘 정리가 돼요. 



청년뿐 아니라 모든 사회인들의 공통된 관심 주제이자 고민거리가 바로 돈입니다. 모티프원을 건축할 때에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은데, 돈에 대한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안 : 쌓으면 쌓을수록 갈증 나는 것이 돈인 것 같아요. 절제하면서 제어할 필요는 있겠다 생각해요. 달라이 라마가 ‘오늘 먹을 만큼만 일하라’고 했죠. 한 끼에 5천 원짜리 밥을 먹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내 영혼을 쥐어짜면서 연봉 1억 원을 벌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오히려 그 시간을 본인의 영혼을 풍족하게 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죠. 


 스스로 생각하는 살림의 규모, 목표의 규모를 설정하는 것이 먼저예요. 무조건 높은 연봉의 직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해요. 월급이 더 낮은 직업이라도 그만큼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죠. 내가 어떤 가치에 삶을 할애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정의할 수 있다면 고민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모든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루하루 버텨내는 현대사회가 되었습니다. 모티프원을 찾는 이들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진정한 휴식을 찾으러 온다는 생각이 드는데, 여러 손님을 지켜본 결과 휴식 다운 휴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안 : 저는 도시를 떠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Unplugged’ 예요. TV의 플러그만 뽑은 것이 아니라 아예 TV를 없앴어요. 미디어를 모두 끊었어요. 신문을 끊고, 잡지 구독을 끊고. 예전에는 하루에 여섯일곱 개 신문을 봤어야 했고, 밥을 먹으면서도 뉴스를 모니터해야 했어요. 이와는 전혀 상반된 삶을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모티프원 객실 중 한 곳


 모티프원에서는 단지 음악만 들을 수 있도록 했고, 강요가 될지 모르겠지만 각 방마다 TV를 두지 않았어요. 책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책 조차도 사람을 대면했을 때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누군가가 이곳에 와서 저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인다면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기보다 함께 이야기하기를 선호해요.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더 우선하는 일은 없어요. TV를 보고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앞에 있는 사람과 시간을 공유하는 거예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수평적인 관계로 소통이 이루어지면 편안한 휴식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독립된 공간에서 홀로 고립되어 있을 때. 모든 관계를 끊어내고 오직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행복하고 편안했어요. 나 자신을 만났을 때 진짜 휴식이라고 느꼈죠.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안 : 모든 시간이 너무나도 편안해서 어떤 일을 하든 거슬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목표예요. 그럴 나이가 된 것 같기도 한데 불쑥불쑥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자연스럽게 다듬어 가면 좋겠어요. 두 번째 목표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온 지 13년 가까이 됐어요. 그전까지 내가 먼저 어딘가 찾아가는 삶을 살아오다가 이곳에서 지내면서 누군가를 맞이하는 삶을 살게 됐어요. 아무리 재밌고 흥미로운 일이라도 10년이라는 세월이 넘어가면 변화를 주고 싶죠. 이제부터는 저를 찾아왔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찾아가고 싶어요. 몇 년 안에 다시 세상을 주유(周遊)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이 아닐까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기 전에 가족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계 각지에 가족들이 본인만의 삶을 살고 있는데, 본인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안 :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시간에 상관없이 아군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설령 가족 중 한 명이 본인이 살인을 했다며 뛰어들어오더라도 ‘왜 그랬어’라는 말보다 먼저 감싸줄 수 있는 존재.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음껏 피난할 수 있는 토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논리나 이성이 아닌 포용과 사랑이 가득한 곳이 가족이죠. 


이안수 대표의 가족


 저희 가족은 각자 곳곳에서 나그네 삶을 살고 있어요. 물리적 거리가 가족으로서 존재하는데 중요하다고 여겨지지 않아요. 반드시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야 가족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제가 가족이라는 개념을 정의하기를, 가족 각자가 정한 목표를 향해 걸어가다가 외롭거나 힘들 때 기대고 싶어서 돌아올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해요. 어느 곳에 기대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언제든지 와서 조건 없이 기댈 수 있는 가족. 저희 가족 모두 이렇게 인식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어요. 


청년들이 힘겨워하는 시대입니다. 취업 문제, 결혼 문제, 소통의 문제 등 어느 시대보다 많은 문제점을 토로하는 현시대 청년들에게 인생을 먼저 살아본 선배로서 조언과 응원의 한마디 부탁합니다. 

안 :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기회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시간이 지나 봐야 옳은 선택인지 아닌지 알게 되죠. 나중에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실패라고 정의를 내려버려요. 그리고 실패했다고 좌절하죠. 


 사실 실패는 또 다른 기회예요. 끝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을 바꿔서 상황을 직면하면 좋겠어요.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힘든 상황에도 웃을 수 있어요. 모든 상황에서 옳은 선택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수많은 오류들을 수정하면서 살아가는 거죠. 수많은 사람들도 똑같이 오류를 발생시켜요. 실패에 친숙해지고 실패의 친구가 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균형. 타인과의 소통과 온전한 휴식의 균형. 상반되는 개념이라 알고 있었다. 필자 본인의 성격도 한몫했겠으나 기본적으로 남들과 대화하는 데에 에너지가 방출되지 않는가. 온전한 휴식은 타인과 단절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이 생각에 변함이 없다. 다만 모티프원을 방문해 이안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후 휴식이라는 개념의 범위가 넓어졌다. 지우(知友)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때의 편안함이란. 나이와 성별, 언어와 문화를 떠나 내가 살아온 인생, 상대방이 살아온 인생을 편견 없이 공유하는 시간의 안락함. 내가 모르던 세계를 처음 접할 때의 호기심은 새로운 자극제가 되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나만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공감받을 때의 희열은 위로가 된다. 예상치 못한 휴식의 방법을 발견했다.


예상치 못한 휴식의 방법을 발견했다


 인간이 기계가 아니기에 휴식이 필요하다. 또 기계가 아니기에 목적 없는 소통 역시. 둘 모두 인간이기에 필요하고 누릴 수 있는 권리리라. 휴식을 위해 무작정 타인과 단절했던 휴가가 달라질 듯하다. 대신 허물없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찾는 것으로.

* 본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허가를 받아 작성한 게시물이며 본 글의 저작권은 게시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안수 대표 및 모티프원 SNS

  - Facebook : https://www.facebook.com/ansoo.lee.1

  - 모티프원 블로그 : https://motif_1.blog.me/



@글 : 이시용   @사진 : 배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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