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그리다로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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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과 사업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겠죠. 그중 기억에 남고 큰 의미로 다가오는 만남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조 : 저에게 좋았던 기억이 하나 있어요. 지난 5월에 기획 한 건을 하고 나서 저를 처음 본 관계자 4분이 ‘저 사람 누구냐?’라고 눈여겨보고 협업 제안이 들어왔어요. 당시 기획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20명이 넘고 게스트는 200명이 넘는 규모였는데 그 가운데서 저를 알아봐 주신 거죠.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연륜 있는 대표님들이 제가 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 인정해주고 연락을 주셨으니.
안 좋았던 기억도 있어요. 제가 더 어려서 사업을 잘 모르던 시절. 사람을 잘 믿었어요. ‘나랑 같이 일 하는데 뭐’ 하고서 열심히 일 하고 나니 돈을 안 주고 그냥 가시더라고요. 계약서를 쓰지 않았던 거예요. 그때부터 문서를 믿기로 했어요. 좋은 사람끼리 같이 일 하기로 했으면 계약서 작성해서 서로 열심히 하면 되는데 구두계약으로 처리를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나이가 어려서 그랬다고 생각하고 이후부터는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서 진행하고 있어요.
사업을 운영하면서 여러 파트너와 함께 하게 됩니다. 파트너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조 : 저와 코드가 맞는 사람이어야 해요. 같이 일을 시작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일 하는 쿵짝이 잘 맞는 사람이 있어요. 저와 성격이 정반대라고 하더라도 일 하는 스타일이 맞는 편이 나아요. 반대로 성격은 정말 잘 맞는데 일 할 때 너무 장황하거나 한 편에 치우쳐 있거나 돈에 대해 아예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일을 같이 안 해요.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일 하는 스타일과 능력을 보게 돼요. 또 제가 잘하지 못하는 분야를 상대방이 도와줄 수 있는지 여부도 봐요.
같이 일 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족이 근본적이죠. 가족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조 : 저에게 가족이 전부예요. 제가 뉴질랜드 유학을 갔을 때 아버지가 굉장히 힘들어하셨어요. 2007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집과 회사가 날아갔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뉴질랜드에 국비 장학금을 받고서 간다고 하니 보내주셨죠. 편입할 때도 공장에 있는 기계를 팔아서 저에게 주셨고. 제가 한국에 오자마자 열심히 일 하고 3천만 원을 모아서 부모님께 드렸어요. 그 시기에 돈을 모아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한 달에 4백만 원, 5백만 원 벌어서 40만 원만 사용했죠. 모두 가족을 위해 드렸어요. 어려운 여건에서도 저를 키워주셨으니까.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많이 반대하셨어요. 아버지도 본인이 사업을 한창 잘 운영하시다가 경제 여건 때문에 문을 닫게 됐으니. 사업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고 하시면서 연륜 있는 사람들도 당장 닥쳐올 상황을 모르는데 이십 대인 제가 사업에 뛰어든다는 것이 걱정되신 거죠. 사업을 하신 분들은 자식의 사업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어느 정도 있더라고요. 본인이 평생 갈고닦은 노하우가 있으니까. 더군다나 제가 진출하는 분야는 제조업이 아닌 전혀 새로운 분야라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야 하다 보니 더 인정을 안 해주셨어요. 그렇게 1년을 제가 꿋꿋이 사업을 하고 번듯한 사무실도 생기니까 같이 회식하라고 카드를 주고 가시더라고요.
사업을 경영하면서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조 : 저에게 사업을 해보라고 조언했던 친구가 있어요. 제가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 친구에게 ‘나는 왜 상사 복이 없어서 이렇게 힘든 걸까’라며 불평을 했더니 ‘너는 사업 기질이 있는데 왜 계속 회사에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말해줬어요. 그 친구도 사업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친구인데 경험을 토대로 조언을 해준 거죠.
스승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은 아직 없지만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조언해주는 분이 있어요. 저희 작은 아버지예요. 지금은 대기업에서 이사직을 맡고 계시지만 젊었을 때 밑바닥부터 시작하셨거든요. 처절하게 열심히 살아오신 모습을 보면서 사업뿐 아니라 어떻게 정직하게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려주셨어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나 계획이 무엇인가요?
조 : 꿈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계속 바뀌더라고요. 몇 년 안의 계획은 염두에 두고 있어요. 영상 분야를 이제 막 시작했는데 한 달에 열 건의 작업을 완성하는 것이 3년 내에 이루고 싶은 목표예요. 5년 안에는 자그마한 바(Bar)를 만들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콘퍼런스를 기획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연말 파티나 세미나를 기획하고 있는데 더 크게 일 해보고 싶어요. 아직은 제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개인 자체가 브랜드입니다. 조소라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조 : 처음에는 거창하게 생각했어요. ‘나는 1인 플랫폼이다’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슬로건을 말하는 사람이 또 많더라고요. 저를 통해 사람들이 가치를 얻어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단순히 사람끼리 연결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그 이상을 주고 싶어요. 사람들이 저를 떠올릴 때 ‘조소라를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뤘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상 돈에 대한 가치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돈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나요?
조 : 예전에는 돈을 그저 수치(數値)로만 생각했어요. ‘한 달에 얼마를 벌면 얼마를 남겨야겠다’라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모아둬야 하는 가치, 부모님께 전달해야 하는 가치로만 생각했어요. 지금은 모자라지도 않고 너무 많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이들은 돈을 많이 모아서 집을 바꾼다든가 슈퍼카를 사기도 하는데 저에게는 필요 없어요. 외국 친구들 보면 월세도 아니고 주세 내면서 결혼하고 아이 낳아서 편하게 살더라고요. 저도 큰 욕심 없이 스트레스받지 않을 만큼의 수준만 되면 충분해요.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도구라고 생각하거든요. 꼭 많이 가질 필요 없어요. 예전의 가치관과 달라졌죠.
먼저 사업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창업을 생각하는 젊은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조 : 저도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긴 했는데(웃음). 투자나 국가 지원금 없이 시작해보면 좋겠어요. 저도 제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모자란 돈은 은행에서 대출받았어요. 힘든 과정을 겪어보면서 결핍을 아는 것이 첫 번째예요. 3년 정도 버티면서 운영을 하다가 이 정도면 확장해도 되겠다 싶을 때 지원금이나 투자금을 받아야 돼요. 처음부터 ‘언제까지 앱을 개발하고 출시하면 이렇게 크게 성장할 거야’라고 부풀려서 투자를 받기보다는 직접 시도해보고 기틀을 다지고 나서 진행하면 좋겠어요.
두 번째로 직원을 대하는 태도예요. 회사가 잘 나가느냐에 상관없이 직원을 막 대하는 회사가 많아요. 저는 시간이 남을 때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어요. 직원으로 일 하면서 직원을 어떻게 부리는지 다 보거든요. 직원을 함부로 대하는 사장이나 매니저를 보면 저는 절대로 이렇게 사람을 대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죠. 회사를 창업하려는 사람도 다른 곳에서 밑바닥부터 일 해봐야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직원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요즘 청년들이 많은 이유로 힘들어합니다. 이들에게 응원의 한마디 부탁해요.
조 : 저도 취준생이었던 적이 있었고 이직도 많이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그런데 스펙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저는 MOS(Microsoft Office Specialist) 자격증도 없고 운전 면혀증조차 없거든요. 그런 것 없이도 회사 잘 들어가고 이직했거든요. 실제 업무 능력이 중요해요.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만 하고 실무 경험이 없다 보니까 취업을 위해 실제 면접을 보면 면접장에서 우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 거죠. 밝은 기운을 내비쳐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 거예요.
본인의 자존감이 높고 사회성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토익 만점 안 받아도 돼요. 오히려 스피치 수업을 추천해요. 나를 잘 표현하고 호감 있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중요하거든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 이 회사에서 어떤 일을 담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머리 터지도록 고민해봤으면 해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번외 질문들 : 번외라 쓰고 꿀지식이라고 읽는다
‘공그리다’라는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조 : 이름에 대해 참 많은 고민을 했어요. 결국 ‘공간을 그리다’라는 의미를 담아 ‘공그리다’라고 지었어요. 영상, 사진, 타투 등 여러 작업들도 진행하고 스터디나 파티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주말에 갈 곳 없이 집에서 쉬고 있는 분들이 많다 보니 재밌게 모여서 놀자는 취지로 마련했어요. 여러 사람이 모여서 각자의 작업을 그리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이름을 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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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시용 @사진 : 배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