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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Sep 06. 2022

나의 문구 생활

예쁜 필기와 좋아하는 과목과 사랑하는 선생님

  예쁜 필기에 집착했다. 시기에 따라 선호하는 펜의 종류, 굵기, 필기감, 컬러펜의 색상, 반짝이 여부 등등에는 차이가 났지만 여튼간에 예쁜 필기를 사랑했다. 지금이대충 흘려쓰는 글씨체로도 쓰고, 엉망으로 날리거나 색깔이 뒤죽박죽이 되어도 그러려니 하지만 그때는 얄짤없었다. 나는 완벽함을 추구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페이지는 좍좍 찢어서 날려버리고  윗줄부터 다시 쓸 정도로.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라고 할 만한 내 성격이 학창 시절에 빛을 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결과물이 완벽하게 들어올 때까지 계속 해야 하는 성질머리. 오래 걸릴 것을 알아서 처음에 밍기적거리고 시작을 안 하지만, 막상 손을 대고 나면 끝을 봐야 하는, 그런 것. 이십개 초반까지만 해도 그런 습관이 남아있었다.






  책상 밑에 뚜껑이 닫힌 서랍 한 켠에는 아직도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사인을 받아가며 적었던 일기장들, 중고등학교 때 애지중지 썼던 노트들이 들어있다. 과목에 따라 선생님 - 필기 덕후 선생님 - 이 열심히 관리해주신 노트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가 따로 정리한 공책들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과목에 내 공책을 만들어서 내용을 정리했다. 사회나 과학계열 과목처럼 설명이 필요하고 나름의 서사가 있는 과목은 예쁜 공책을 배정받았다. 학기 초에 어찌나 열심히 노트를 골랐던지. 나는 미적 감각이 전혀 없는 편이라 주로 깔끔하거나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표지를 골랐다.



나 혼자 써 내려갔던 공책들은 십중팔구 두께가 얇아졌다. 마음에 안 들면 좍좍 찢었다. 뒷면을 거의 다 써내려갔을 때도, 화이트로 한두 글자를 지워서 될 일이 아닌 것 같으면 찢어버렸다. (지구야, 미안해!) 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한국사였는데, 공책의 원래 두께라면 15장 쯤은 더 있어야 할 부분들이 날아가고 없다. 현저하게 박살난 수학 성적을 올려야 할 자습시간에 나홀로 한국사 노트를 2시간씩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까지 하냐?"라고 물으면 "쓰면서 외우는 거야."라고 했다. 20%는 맞고 80%는 변명이었다. 당연히 쓰면서 외워지기야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예쁘게' 쓰는 것이 중요했지, 무슨 내용을 쓰는지는 아마 머리에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예쁜 결과물이 남아있으니, 이것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나 보다. 그 공책을 열어보면 다 기억난다. 내가 고대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나라별로, 연도별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그려보는게 어찌나 재밌었는지. 무슨 왕이 무슨 일을 했고, 그래서 어찌 되었고, 그래서 그 나라는 어떻게 되었는지가 너무너무 재밌었다는게 보인다.  낱장의 지식들을 사랑했다. 내가 그 페이지를 얼마나 예쁘게 적고 싶었는지, 그게 예쁘게 쓰였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예쁘게 완성된 '작품'을 들고 이 반 저 반 돌아다니며 친구들에게, 선생님에게 자랑하던 때가 있었다.






  필기를 그렇게까지 본격적으로 한 것은 중학교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필기 덕후 선생님을 만났다. 거의 삼 년을 내리 함께하신 것 같은데, 덕분에 내 중학교 과학공책은 온갖 학습지와 참고자료가 예쁘게 붙어 엄청 빵빵하다. 내 필기 인생에서의 유일한 예외다. 보라색 분필을 따로 사서 들고 다니시는 선생님이셨다. 틴케이스 안에 보라색, 연두색, 그런 신비로운 색깔의 분필을 넣어 다니시면서 예술 같은 판서를 하셨다. 선생님이 직접 필기를 전두 지휘하셨다. 우리 노트가 엉망진창으로 뒤죽박죽이가 되지 않도록 왼편에는 학습지  오른편에는 필기, 이렇게 딱 나눠주셨다. 선생님은 쉬는시간마다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 하나에 색색깔 사인펜과 색연필, 가위와 풀을 몇 세트나 가지고  반 저 반을 누비셨다. 바구니 안에는 인쇄물도 잔뜩 있었다. 공책 크기에 딱 맞는 똥종이에 학습지가 인쇄되어 나왔다. 세포의 감수분열, 장마전선, 이런 그림들도 잔뜩이었다. 이건 오른쪽 필기 옆에 같이 붙이세요, 하시면 우리는 또 가위질에 열을 올리고 풀칠을 쓱쓱 한 다음 세포들을 무지개색으로 색칠했다. 암, 무채색은 안 될 말이지. 칠판처럼 우리의 공책도 화려해졌다.


   그 때도 선생님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약간은 알았던 것 같다.  선생님의 우아하고 기품있는 판서를 어설프게 옮겨적은 우리들의 필기. 선생님은 단원마다 노트 검사를 해주셨다. 우리가 혹시 빼먹거나 모르고 지나가는 내용이 없도록 확인하고, '참 잘했어요'가 적힌 귀여운 도장을 돈 내고 파오셔서 열심히 찍어주셨다. 가끔은 2개 반, 가끔은 3개까지도 찍어주시는 그 도장을 더 받으려고 얼마나 속을 태웠는지 모른다. 아이들과 호흡하는 그 모든 시간을 사랑하는 선생님. 그게 사랑이었다는 것을 우리도 다들 알았다. 그 나이에도 다 알았다. 지식에 대한 사랑, 아이들에 대한 사랑, 가르치는 일에 대한 사랑,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살아가는 스스로에 대한 사랑. 과학에 대한 사랑. 나는 그 때 이미 그 공책들을 내 관 속에 들고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필기왕인 것 치고 글씨가 그렇게 예쁘지는 않았다. 시기에 따라 선호하는 글씨체가 달라서 초서체니 해서체니 하는 것처럼 글씨체가 왔다갔다했다. 어떤 때는 자음을 크게 그렸고, 또 어떤 때는 글씨를 전체적으로 기울여서 썼다. 다 자란 어른이 되고 나서는 두께가 1.0인 볼펜을 가볍게 쥐고 갈겨쓰는 글씨가 제일 예뻐보이지만, 가끔씩 한 획 한 획을 따박따박 긋던 어린 시절의 글씨체가 그립다. 이제는 그렇게 쓰려고 해도 써지지가 않는다. 요즘은 펜을 정말 이상하게 잡는다. 어린 시절, 연필 쥐는 연습을 한다고 연필에 끼우던 고무조각을 아직도 안 버리고 있었다. 그걸 가끔 손에 끼고 써보려는데, 이미 엉망으로 굳어진 모양은 교정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 꺼내본다. 그때는 어땠을까, 그때의 나는 어땠을까, 그 어릴 때의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예쁜 필기에 집착했을까. 무슨 마음이었을까.


선생님과 연도별로 만든 과학노트, 한 장 한 장 찢어가며 쓴 한국사 노트가 아직도 있다. 내 눈에 아름다운 뭔가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그때를 떠올린다. 마음의 여유가 한 톨도 없어 안타까웠던, 완벽하려고 허우적거렸던 때를. 지혜를 기르는 것보다 지식을 쌓는 게 더 멋져 보였던 때를. 이 페이지를 예쁘게 완성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망설임 없이 종이를 찢고 다시 제목부터 시작할 수 있었던 오기와 용기와 집념이 있었던 때를. 어른이 되면 쓰잘데기 없어보이는 온갖 것들에  에너지를 활활활 불태웠던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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