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 Aug 29. 2022

포켓볼 망태기

귀여운 언니들이 아주 좋아


  난 귀여운 것을 좋아한다. 아주 좋아한다. 귀엽다고 인지하는 대상은 식물, 동물, 인간인 것 같고, 특히 아기 인간과  여성 인간, 아기 동식물을 좋아한다. ‘귀엽다’라는 단어의 정의를 내리자면 좋은 뜻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사려깊어서 좋다, 너무 아름답다, 저 사람을 알고 싶다, 저쪽의 매력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중이다, 이런 말을 다 퉁쳐서 ‘귀엽다’고 표현한다. ‘귀여워’ 정도는 작은 웃음과 호감이고, ‘귀엽잖아!’가 되면 약간 위험해지며 ‘세상에, 너무 귀엽잖아!’가 되면 겉잡을 수 없이 사랑에 빠진다.


  그래. 사랑에 빠진다. 뭔가를 듬뿍 좋아하는 상태를 ‘사랑’이라고 이름붙이자면 난 세상에 사랑하는 것이 정말 많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디폴트값은 ‘좋다’다. 살면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세상이 좋아보인다. 성악설 신봉자 친구들과 장난스러운 마찰을 자주 빚지만, 그래도 그 친구들도 너무 좋다.

  특히 귀여운 언니들을 좋아한다. 언니란 ‘멋지면 다 언니다’고 하는 그 문장에서와 동일한 의미다. 나한테 멋지면 다 언니다. 원래 그렇다.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관계없이 섬세하고, 다정하고, 멋지고, 지적이고, 유머감각이 좋고, 웃는 모습이 예쁘거나 노래를 멋지게 부르거나 땀 흘리며 운동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그냥 이유없이 끌리는 모두가 언니다. 김연아 선수도 내 평생의 언니였고, 자우림의 김윤아 언니도 평생 언니였으며, 융프로디테 윤아 언니도 영원한 언니다. 아주 사랑한다.






  나는 귀여운 언니 수집가다. 언니들을 내 마음속 망태기에 잘 넣는다. 포켓볼같은 시스템이다. 내 인생에 불가피한 상황이 생긴다면 언니를 떠올려본다. 이 언니면 이렇게 하겠지? 저 언니라면 이렇게 해결해줄텐데, 그런 꿀팁도 받는다. 사실 세상에 멋진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망태기 무게가 위태위태하다. 멋지고, 닮고 싶고, 혹은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닮을 수 없는 모습을 폴라로이드 앨범처럼 착착 담아둔다. 꽤 친해지고 나면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언니를 제 망태기에 집어넣었어요.” 언니들은 아주 관대하고 멋진 사람들이라 대부분 쿨하게 웃거나 머쓱해한다. 그런 모습도 귀여우니까 한 장면 차지한다.


  적절한 상황에 적절한 언니를 추천하는게 좋다. A언니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B언니가 능수능란하게 해결할 것 같으면 A와 B 사이에 다리를 놓고 “가랏, B몬!”라고 언니를 내보낸다. 멋진 언니들은 대부분 관대하고 다정해서 서로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준다. 사건이 훌륭하게 해결되면 나는 “잘했어요, B몬!”하고 오늘의 성공을 조금 더 미화해서 기억한다. 몇 달이 지나고 A언니와 B언니가 찰떡처럼 붙어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 아주 뿌듯하다. 언니들을 주렁주렁 엮어 서로 묶어주는 일이 즐겁다.


  오랜만에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도, 먼 발치에서 요 언니, 저 언니를 쏙쏙 찾아 내 포켓볼에 모아뒀다. 대화하다가 갑자기 어떤 매력에 치이기도 하고, 어떤 언니들에게는 사회생활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고 싶기도 하다. 귀여운 언니들이랑 어서 친해지고 싶어서 마음이 근질근질하다. 나 무서운 사람 아니야! 나랑 친하게 지내자 언니들아!

매거진의 이전글 잘 가시게 백수 라이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