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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Feb 12. 2023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31일 프로젝트 시-작!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몰아치게 바빴던 것이 조금은 끝났으니, 이때를 틈타 어서 글자를 타이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 5일을 운동으로 보내다 갑자기 짬 내서 잠을 자야 하는 생활 패턴에 부닥치고 나니 일상이 너무 무너졌다. 그래도 이제 주 3일은 운동할 시간을 낼 수 있으니, 어서 내 노트북도 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바빴다. 정말 너무-너무 바빴다. 근무일이 아닌 날에도 일을 하느라 밤을 새웠다. 면역력이 뚝뚝 떨어졌다. 코로나가 한 번 왔다 갔고, 수면부족으로 살이 확 빠졌다가 다시 확 불었다. 평생 바쁘게 살았는데, 일이 바빠서 살이 빠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주 5일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잠도 겨우 자는 패턴으로 던져지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지냈다 보니 그 간극이 더 컸다. 극심하게 바쁜 업계에 편입되니 매일매일을 쫓기는 기분으로 보냈다. 내가 사냥감처럼 쫓겨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상사를 피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시뻘건 눈알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나, 나를 질책하고 몰아세우려는 나를 피해 다녔다.


  그래도 얼추 반년 정도가 지나니 적응이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를 시작한 지는 딱 세 달 째다. 보통 두세 달 정도 적응기간이 필요하니까, 나도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물리적인 여유는 없는데, 이제 어떻게 하면 일을 약간 요령 있게 할 수 있는지 알겠다. 내 결과물로 직결되지 않는 잡일에 시간과 노력을 뺴앗기지 않고 중요한 일에 신경을 많이 쓰고자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아주 저렴한 값에 거대한 노동을 하고 있자니, 그것도 하루에 단 30분도 글을 쓸 시간을 낼 수 없다니 스스로도 약간 각성했다. 이렇게 시간에 쫓겨 아무것도 못 하고 있으면 결국에는 난 아무것도 못 쓰겠구나. 시간을 만들고, 내야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 불평불만만 하고 있지는 않네. 예전이었으면 "이 돈 받고 이렇게 일하냐?"로 하루종일 분노한 상태였을텐데, 이제는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에 감사할 수 있다. 돈 내고도 못 얻을 경험과 지식을 얻고 있는 것도 안다. (나는 지금 나의 저렴한 소득을 정당화하고 있지 않다! 회사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으아악! 으아악악악!) 오히려 많은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되다 보니 더욱 내가 해야 하는 것에 눈이 간다. 내가 해야 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열심히 하고 싶은 것, 부끄러워도 결과물을 내고 싶은 것.


  전에 글 쓰는 습관을 들이고자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했던 적이 있었다. 몇 년 전이었는데, 어떻게든 하루에 15분을 냈다. 지하철에 앉아 휴대폰을 손에 들고 아무 단어라도 쳤다. 다시 읽어보면 참혹하고 멋쩍은 글들이지만, 시계의 숫자가 12:00으로 변하기 전에 어떻게든 '등록' 버튼을 누르려고 기를 쓰고 썼다. 중요한 것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지, 내용의 양과 질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뭔가, 오늘도 그런 기분이다. 방바닥에 누워 1시간을 비비적거리면서 유튜브를 보다가 '오늘은 진짜 해야 한다고!' 하는 마음으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몸을 일으켜 책상에 앉는 3초간 딱 다짐했다. 지난번에 해냈으니까, 이번에는 딱 한 달만 매일 글을 써야겠다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는 글 쓰고 살고 싶으니까 다시금 매일매일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딱 한 달만 잘 써볼게요. 몇 달 쉬었다고 다시 똥 같은 글들이 올라와도 그러려니 해주세요. 숙변을 슬쩍 긁어 내보내듯 제 안에 갇힌 단어들도 살살 파내어 내보내야 저도 잘 숨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매일 쓰다 보면 결국엔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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