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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Mar 04. 2023

안의 외로움

술을 마셨습니다

    아주 따뜻하고 다정한 순간을 보내고 나면 사무치게 외로워진다.


    이게 내 안에 있나 보다.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 버려지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혼자 외롭게, 외로워하며 말라죽을까 봐 무섭다는 마음.


    지난 주말에 친구들의 밴드 공연에 다녀왔다. 어설프게 알던 지인 속에 가장 친한 친구가 한 명 있는 밴드였다. 이름이 가물가물한 멤버라도 얼마나 공연을 하고 싶어 했는지 드문드문 들어왔다. 나까지 설레는 마음에 공연장에 가기 전까지 기분이 아주 좋았다. 혼자 갔지만 상관없었다. 정말로 그랬다. 난 혼자 전시회도 보고, 음악도 들으러 가고, 영화도 잘 보니까. 식당에서 혼자 밥도 잘 먹으니까. 나만의 시간이 소중한 사람이니까. 오늘 여기엔 내 친구의 (얼추) 가장 친한 친구라는 자격으로 왔으니까.


    그날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곁을 지키는 애인이 있고, 함께 연주하는 동료가 있었다.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도 많았다. 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라면 유쾌하게 넘어갔어야 했다. 그런데 때와 장소에 맞지 않게 처연한 기분이 솟구쳤다. 난 당황스러웠고, 모른 척했다. 신나게 음악에 집중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외로움을 인지하지 않으려고 <슬램덩크> OST를 크게 틀었다. 눌러 담은 것은 돌아올 거라는 속의 외침을 무시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보고 싶던 사람과 함께였다. 전 직장 동료였고, 직장 내 가족 놀이를 정말 싫어했던 내가 자청해서 호칭을 불렀던 분이었다. 요즘 들어 몸 컨디션이 좋아지면서 주량도 확 늘었는지, 사케가 술술 들어갔다. 한때 지긋지긋했던 전 직장 이야기가 오늘은 추억을 자극했다. 과거를 자꾸 꺼내보는 말들이 구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땐 이랬잖아요, 하는 말이 끊임없이 나왔다. 그러다 문득, 나는 과거형이고 상대방은 현재형인 이야기에서 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당연했다. 그런데 정말, 마음속 작은 동굴의 벽면에서 돌멩이 몇 개가 부서져 내리는 것 같았다.


    아, 이제 가끔씩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주는 사람이 내가 아니구나. 내가 빠진 자리에 새롭게 온 구성원과 단단한 공동체를 만들었구나. 마음이 잘 맞는구나. 로테이션을 도는 직장에서 마음이 맞는 동료가 부서에 발령받아 온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알고 있다. 그래도 축하해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미화된 기억 속에서 나 때문에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겠구나. 누군가는 나를 잊고 싶어 하기도 했겠구나. 알만한 일들이었는데도 돌멩이 부스러기가 더 떨어졌다.


    내가 외부인이라는 사실은 무겁지 않았다. 전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 난 전반적으로 아주 행복했다. 여러 가지 사내의 이유로 그 시절 같은 부서였던 사람들끼리 끈끈하게 지내기는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건, 내가 지나왔던 자리가 아주 옅어졌다는 거였다. 와, 나 그런 거에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는데. 내가 지금 몇 년 사귀고 헤어진 애인 같은 상태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다는 것이 날 화나게 했다.


    가끔 아주 이른 새벽에 눈을 떠서 울었던 적이 있다. 외로웠다. 평생 살면서 마음을 터놓을 친구 세 명만 있어도 행복한 인생이라던데, 나는 그게 아직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평생 없을 것 같았다. 아주 어려서는 사랑을 주기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세상이 미웠다. 조금 더 자라고 나서는 내 삶에 내가 함께한다는 것이 소중했다. 매 순간, 죽는 순간까지 나와 함께할 사람이 있구나. 그게 나구나. 나를 지켜봐 주고,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말의 의미를 아직 잘 몰랐나 보다. 어쩌면 꾸역꾸역 들어찬 외로움을 지워보려고 날 더 붙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에서 도망치지 않으려고 거울을 봤다. 가만히 이야기해 준다. 외롭구나. 세상에 너를 이해해 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고통스럽구나. 속상하구나. 너를 이해해 주고, 네 안의 이기심과 수치심까지 사랑해 줄 사람이 필요했구나. 그런 사람이 평생토록 없을까 봐 무섭구나.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하는 말이 아직은 억지스러웠나 보다. 그러다 알아차렸다. 아, 난 아직도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나 봐. 아이들에게 그토록 말하면서, 정작 나는 갈 길이 멀었네. 괜찮아, 잘 될 거야, 그런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있는 그대로의 외로움을 지켜봐 주면 어느 순간 옅어져 사라지겠지.


    외로웠구나. 외로웠구나. 사랑받고 싶었구나.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구나. 가만히 지켜봐 줘야지. 그래, 외로웠구나. 그럴 수 있어. 응. 외로웠구나. 이런 감정이 외로움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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