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식탁 Ep 01
오늘도 남편은 부엌에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장을 새로 보지 않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음식은 무엇일까?'
아내는 금요일에 언니들을 초대한다며 이미 장을 보았고, 식사는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그녀가 요리하고 남은 재료들이 여전히 부엌에 가득했습니다.
양파, 시금치, 아보카도, 식빵, 방울토마토,
그리고...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포도와 건포도.
심지어 양파는 이미 충분히 있었는데 아내가 모르고 한 망을 더 사는 바람에 남편은 결국 2시간 동안 양파 4개를 카라멜라이징을 하느라 팔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남편은 미니멀리스트이며, 냉장고 재고관리에 엄격한 편입니다.)
생각이 많아진 남편의 복잡한 표정을 눈치챈 아내가 말했습니다.
남은 시금치로 제가 김밥을 말아 볼게요. 당신, 내 김밥 좋아하잖아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김밥을 얻어먹고 그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물론 김밥이 하도 커서 이게 김밥인지, 후또마끼인지 헷갈리긴 했지만요.
그는 밑반찬으로 견과류 멸치볶음을 만들고 잠에 들었습니다.
일요일에는 냉동실에서 잊혀가던 건포도를 소환해 스콘을 만들었습니다. 어제 치즈케이크와 마카롱을 다 먹어서 오늘은 아내가 먹을 디저트가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썩기 일보 직전인 포도를 졸여 잼을 만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단맛이 덜해서 바나나를 추가하여 '포도 바나나 잼'을 완성시켰습니다.
(아내가 남은 아보카도로 '아보카도 바나나 주스'를 만들어보겠다며 바나나를 또 한아름 샀습니다. 그는 바나나가 또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재고를 소진하고자 꾀를 부린 것입니다.)
스콘과 잼은 아주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시나몬도 넣었거든요.
당을 보충한 아내가 또 좋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아보카도와 방울토마토와 식빵, 3가지 식재료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메뉴를 생각해낸 것입니다.
바로, 과카몰리 샌드위치!
안타깝게도 아보카도 후숙이 덜 되어 풋내가 약간 났지만 잠시 멕시코를 여행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하루하루 성장하는 아내가 기특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렇게 둘은
만들고,
먹고,
치우고,
만들고,
먹고,
치우다
주말을 다......... 보냈습니다.
* 일곱 살 차이 부부입니다. 서로 존댓말을 쓰지 않습니다. #판타지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