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즈-비망록
어느날 퇴근길 라디오에서 사람은 권력을 가질수록 뇌과학적으로 공감 능력은 떨어지고 타인을 선별하는 능력, 즉 내 말 잘 들을 피지배대상을 가려내는 안목은 올라간다는 말을 들었다. 굳이 권력이란 거창한 단어를 안 붙이더라도 사회에 정착해 역할이 생기면 의지와 상관 없이, 자연스럽게 뇌과학적 인지회로에 절여지는 지극히 평범하고 보통의 인간,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25살에 시작한 나의 사회생활 초반기는 순탄하고 즐거웠다. 선호한 건 아니지만 회사의 요직 부서, 정치부에서 일을 시작했다. 나쁘지 않은 평가도 받았다. 2년차에 운이 좋아야 한다는 출입처,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회를 얻었고, 대통령을 따라 전용기를 타고 여러 국가에 순방 취재를 다녔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오만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얻은 기회를 '나 자신'의 능력으로 따낸 성과라고 여겼다. 굳이 대놓고 말하고 다니진 않았지만, 어린 나이 나의 행동은 미숙하여 아마 자만심이 뚝뚝 묻어 나왔을 거다.
분수와 때에 맞지 않는 큰 혜택은 높은 확률로 시기와 뒷말을 몰고 온다. 어린 여자애가 자신만 잘나서 무언갈 이뤄냈다고 생각하고 다녔으니, 얼마나 좋은 말의 대상이 되었을지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다.
2년 뒤 나는 이직을 했다. 조직원의 구성원이란 종속감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빠르게 내게 등을 돌렸다. 행동과 말은 칼이 되어 그대로 돌아와 꽃혔다. 한 때는 사람들을 원망했지만, 지금은 반성의 가늠자를 스스로에게 돌려 재단한다.
"그걸 왜 못해?" 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듣기보단 듣는 사람을 붙잡으러 다니는 데 집중했던 나. 돌이켜보면 말을 삼가고 보다 경청하며 뒷말을 자제하고 겸손하라는 건 모두 어딘가에서 들어본 것들이었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현인들은 그래서 여러 조언을 남기는데, 나처럼 우둔한 사람은 꼭 겪어보고 상처받고 넘어지고 나서야 단순한 진리를 체화한다.
사회생활 n년차, 막내만 돌다가 최근 후배가 생겼다.
생기가 넘치는 20대 중반 아이는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 잘 해내겠다는 각오, 이 부서에 와서 자랑스럽다는 뿌듯함을 차마 숨기질 못하고 온 몸으로 뿜어낸다. 상당수의 구성원들이 그 모습을 대견스럽다기보단 부담스럽게 본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그 열정의 아지랑이에서 어린날 나의 모습을 때때로 마주치는 나는 솔직히 말해 피하고 싶거나 자랑스럽다는 감정보단, 잊고 싶은 과거가 떠올라 그저 약간 부끄럽다.
사람의 에너지 중 4분의 1 가까이는 뇌에 쓰이는데, 특히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할 때 소모량이 크다고 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건 뇌가 자동적으로 효율화를 추구해서라고. 즉, 권력을 가지기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공감할 필요가 줄어드니 에너지를 '덜' 쓰도록 공감능력이 퇴화한다는 의미다.
권력을 갖진 않았지만 어린 날 비슷한 경험을 했던 나는 쥐꼬리만한 권력을 갖게 되는 '선배'의 위치에 막 올라서려는 요즈음, 조금은 더 후배들에게 공감하려고 노력하고 싶다.
어려운 점은 없는지 조심스럽지만 유심히 살피고. 나의 이야기를 앞세우기보단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선배. 내 일을 자연스럽게 미루지 않으면서도 자상해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사람.
대단한 사람이 되는 건 너무 힘들었고 제 풀에 지쳐 상당히 내려놓은 지 오래다. 그런데도 좋은 사람은 되고 싶은 욕심은 여전히 가득해서, 나는 아직까지 이런 꿈들을 꾸고 있다.
아름답다고 난 스물에 세상을 꿈꿨지
오늘부터 다 날 어른으로 부르네
어제 오늘은 단 하루가 차이 날 뿐인데
마치 꿈인 듯 다 변했어
알았던 모든 것은 전부 허구였어
꿈이란 결코 마법처럼 되지 않아 (기다리고)
칼과 창 방패에 말을 타는 서부의 총잡이 돼볼까?
순례자든 방랑자든 다 밀림의 도시 벗어나 볼까? (기다리고)
난 또 다른 삶의 길 위에서 새로운 방황을 시작해
스무 살의 어린 비망록 난 펼쳐드네
나의 노래로, 조금 서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