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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경 emb Aug 25. 2024

활동가는 못 되어도 소시민은 가능하니까

무키무키만만수 -  투쟁과 다이어트


이번 달부터 후원을 늘렸다. 정보공개센터 (https://cfoi.or.kr/)라는 시민단체에 월 3만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후원 시청을 한 날 밤, 문자가 왔다. "후원금의 무게를 잊지 않고,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끊임 없이, 새로이 활동하겠습니다."


정보공개센터는 공공데이터를 만들고, 연구하는 시민단체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굳이' 밝히지 않은 공공기관의 각종 자료를 받아서 읽기 쉽게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하는 단체다. 말하자면, 특정 집단에게 직접 도움을 주는적십자 모금 같은 그런 곳은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우리 사회의 씨앗을 꼼꼼히 심고, 언제 틀지 모르는 싹을 위해 물을 주는 근본적인 모임이라고 느꼈다. 




몇 년 전 이 곳을 알게 된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동창이 이 곳의 활동가로 일을 하고 있었다. 친하지 않은 동급생이었다. 결이 맞지 않다고 느껴서, 지금 생각해보면 대화도 많이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때의 나는 나름 '사회'에 공헌을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야릇하고 얄팍한 선민의식 비슷한 걸 가지고 있었다. 돈만 벌며 살지 않겠다는 건 신념이 필요하고, 나는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그런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란, 부끄럽고도 되도 않는 생각이었다.


의식'만' 가득 찬 나와 달리, 결이 다르다고 느꼈던 그 친구는 대학에 입학한 뒤 꾸준히 시민사회 활동을 이어갔다. 글을 쓰고 사회에 보탬은 되고 싶지만 돈을 버리지 못 한 나는 모 방송사의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누구보다 돈을 잘 벌 것 같은 그 친구는 정보공개센터에 둥지를 틀었다.

나는 이 친구와 그동안 연락을 주고받진 않았지만, 소식을 듣고 적잖이 놀랐고 한편으론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정보공개센터라는 곳을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는 않았다. "함께 일할 사람을 뽑습니다" 라는, 지인을 통한 이 곳의 공고를 보기 전까진.




활동가 모집 공고에는 복리후생과 급여, 하는 일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야근 잔업이 있을 거란 솔직한 고백 옆엔 최저시급 수준의 급여가 적혀 있었다. 2024년 센터의 재정이 적혀 있는 글도 봤다. 1억대를 간신히 넘는 인건비에, 월간 총액은 늘 마이너스였다. 


그러나 그들의 성과물은 훌륭했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권력자들의 기본 정보부터 재산 신고 내역, 정치후원금을 가독성 좋은 데이터로 깔끔하게 정리해놨다. (https://www.openwatch.kr/dataset)  기업별 산업재해 사고 내역을 전부 리스트업해놓기도 했으며 (https://www.nosanjae.kr/) 세월호 사고의 모든 걸 타임라인 별로, 자료별로 정리해놓은 사이트도 만들었다.(http://taogi.net/special/sewolho/background/)


정보공개센터는 지금 언론은 모두 잊어버린 한 사건, 1997년 외환위기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었다.(https://97imf.kr/) 정보연표부터 주제별 사건 정리, 당사자 인터뷰까지, 사이트 한 곳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대 장점이라 거듭 말하지만, 가독성이 정말 좋았다. 논문과 숫자, 신문과 당시 공공기관 문서까지 전부 읽고 데이터를 재구성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이 방대한 데이터를 정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품이 들어갔을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들의 활동을 일부 읽고 후원을 결심했다. 이미 인권단체를 포함한 3곳 시민단체에 후원금을 내고 있지만, 늘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제 딴엔 신념을 가지겠다고 사회에 도움이 되겠다고 되새기며 사는 직업인으로서, 나보다 훌륭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었다.



활동가에게 하는 기부란 건 쉽고도 부끄러운 행동이다. 

우리 사회를 위해 최저시급을 받으며 묵묵히 일하는 이들에게 디저트값, 커피값을 내밀며, 나는 공공선을 위해 제 몫을 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말하자면 책임 회피에 가까운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선 "그래도 기부조차 안 하는 사람보단 낫지 않아?" 라는 속삭임이 들려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위안에 세뇌당하고싶진 않지만, 그런 행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못 배길 것 같을 때, 사람들은 조용히 후원금 버튼을 누른다.



시민단체의 부패, 귀족 노조 같은 단어들이 세상을 떠도는 각박한 세상이다. 무서운 단어들 사이 우리 사회의 '시민'이란 역할은 흐릿해지고, '개인'들만 남아 서로를 잡아먹으며 일상을 살아간다

일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게 당연해진 세상에, 활동가란 직업은 여전히 숨쉬고 있다. 최저시급을 받으며 공익을 위해 일하는 게 직업인 그들은 요즘 사회의 기준으로 프레임을 놓고 볼 때 썩 훌륭한 평가를 받지 못하면서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해나가며 하루하루 토양을 단단히 다져가고 있다.



그러니 활동가가 되지 못 하는 우리들은, 마음 한구석에 '시민'의 씨앗만큼은 뽑아버리지 말자. 자기만의 시민단체를 발굴하고, 1만 원의 후원금이라도 내다 보면, 세상은 그래도 1만원만큼은 따듯해질 수 있다.


후원금의 무게를 잊지 않겠다는 그들의 낮은 말에 비해 후원자들의 역할은 지극히 작고 가볍기만 하지만. 적어도 연대의 손만큼은 놓지 않는, 그런 '소시민'들이 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으로 이 글을 적어 본다.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아이고)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아이고)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아이고)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어머니)


그냥 잘 살고 싶다오

편히 잘 살고 싶다오 

있는 그대로 살고 싶다오

이게 그리 큰 꿈이었던가


그들은 배불리 먹고

고급스러운 상점에 들어가네

나는 여기에 남겨져서는

운동만 열심히 해야지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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