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서 불편한 국회의 미투

미투가 가장 많이 이용되는 곳에서 미투는 퍼져나가지 않는다

by 밍경 emb


캡처.PNG


Intro


국회에 미투가 상륙했다. 현직 비서관이 실명으로 상사 보좌관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국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은 순식간에 1천 조회수를 돌파했다. 국회에 올라오는 국민제안으로썬 이례적이었다.

캡처2.PNG


피해자는 19대 국회(현재 20대 국회)에 있었던 사건이라며 운을 뗐다. 현재 다른 의원실에서 근무하는 가해자가 어떻게 피해자를 성추행했는지 기록했다. 짧은 묘사 후, 피해자는 왜 여태까지 피해 사실을 숨겨야만 했는지 적었다.

항의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의원실 내에서의 저의 입지는 좁아졌습니다.


마음이 아픈 구절이었다.



캡처.PNG


국회,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폐쇄적인.


미투에 참여하긴 어렵다.


얻는 것은 없고 잃을 것은 많다. 맨정신으로 하긴 어렵다. 뒤집어 말하면, 맨정신이 아니었던 사람만이 미투에 참여할 수 있다. 여태까지의 생활이 정상이라 하기 어려워 고통받던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있었다. 그들에게 '미투'라는 무기가 주어졌다.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변수는 대중의 지지다. 피해자들에게는 고르기 쉽지 않은 무기가 눈앞에 떨어진 셈이다. 잘못 휘두르다 내 목이 날아갈 수 있는 칼이다. 그럼에도 칼을 잡은 사람들이 많아 미투 운동이 완성됐다. 그만큼 일상이 파괴된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다. 우리 사회의 아픈 모습이다.



국회 보좌진이 미투에 참여하긴 더욱 어렵다. 잃을 것이 더욱 많다. 특히 생존이란 문제가 걸린다.


이 곳의 일자리는 불안하다. 국회 보좌진은 국회의원이 개별적으로 채용한다. 국회의원 한 명이 9명 가량의 보좌진을 채용할 수 있다. 뽑는 과정과 선별 기준은 그야말로 국회의원 마음이다.


보좌진은 국회의원을 영감, 혹은 사장이라는 은어로 부른다. 사장이라는 말에는 의원실 방 한 칸이 하나의 독립적인 회사와 같다는 의미가 녹아있다. 국회의사당을 마주보고 왼쪽에 있는 의원회관 건물에는 300개의 회사가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방의 분위기와 업무 스타일, 하는 일 전부가 다르다.


다만 본질적으로는 국회라는 공간에서 함께 일하다보니, 보좌진들끼리는 학연과 지연을 동원해 똘똘 뭉친다. 새로운 보좌진을 선별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이미 국회에 있는 보좌진이 서로를 추천해서 채용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국회 내부에는 수많은 모임들이 있다. 보좌진 한 명이 최소 5개 이상의 모임에는 얽혀 있다.



이렇게까지 뭉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나는 직업적 불안정성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싶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다. 보좌진은 4년마다 목숨줄이 왔다갔다한다. 모시는 의원이 다음 총선에 당선되지 않으면 의원실이 사라진다. 새로운 회사(=의원실)을 찾아야 한다. 나름 경력직으로 옮기는 과정이니 알게 모르게 평판 조회를 받는다. 거기서 온갖 모임으로 얽힌 동료 보좌진이 많으면? 국회에서 새로운 의원실을 못 구해 쫒겨날 확률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당연히 뒷소문이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 모인 곳에 퍼지는 뒷소문에 업무 평가만 있을 리 없다. 개인의 성격과 행실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오간다.


상당수가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캡처22.PNG

꽃뱀 A양과 가련한 A양


받은글) 이라고 도는 글이 있다. 일종의 찌라시 같은건데, 정계와 금융권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빨리 퍼져나간다. 누가 만드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퍼져나가는 속도는 바람처럼 빠르다.


내가 받은 글의 상당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었다. 국회 보좌진이 대상이 될 경우, 여성 보좌진의 외모 품평("평소 짙은 화장으로 뒷소문 파다")과 성격 묘사("평소 드세다고 소문나")는 당연하다. 심한 경우 여성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자체가 뒷소문("들어오자마자 악착같이 일해 눈밖에 나")으로 이어지긴 한다. 더 질이 안 좋으면, "꼬리쳤다"는 단어로 이어진다.


남녀관계에 대한 받은글도 끊이질 않는다. 그런 소문에서는 높은 확률로 여성 보좌진이 주어가 된다. 여성이 양다리의 피해자든 가해자든 상관 없다. 가해자면 "00방에 있는, 꽃뱀으로 유명한 A양" 으로 문장이 시작한다. 피해자면 "00방에 있는, 가련한 A양"로 또 다른 글이 된다.


마찬가지로 가해자든 피해자든 소문은 나쁜 평가로 이어진다. 국회는 시끄러운 보좌진을 원치 않는다. '보좌진' 이니까.



익명 아래에서야 겨우, #미투


페이스북에는 국회 보좌진과 직원들의 익명 투고 사이트 '여의도 옆 대나무숲'이 있다. 직원을 인증받고 글을 쓸 수 있는데, 최근 수많은 미투 사례들이 올라온다.


'소문'과 '나쁜 평가'가 두려운 피해자들은 익명의 힘을 빌린다. 그제서야 겨우 미투를 외칠 용기가 난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조차도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드는 공간. 그 자체만 봐도 국회의 폐쇄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미투 운동과 관련된 기사를 써내려가면서도, 출입처 어딘가에 있을 그 비서관이 걱정됐다. 그가 폭로한 가해자는 해당 의원실 국회의원에 의해 면직 처분됐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걱정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앞서 서술한 이유로 가해자의 퇴장은 피해자의 직업적 안정성과 수많은 뒷소문 차단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객식구로 바라본 국회는 결단코 그런 공간이 아니었다.


아마 피해자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글에서도 고통을 호소한 피해자지만, 글로 쓸 수 없는 고통이 녹아있다는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간절했을 테다.



Outro 1: 미투를 이용하는 국회


맥락을 바꿔서 좀 다른 이야기.


국회에 들어온 모든 정당이 미투 파동을 말한다. 안희정이 소속됐던 더불어민주당은 안희정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안간힘을 쓴다. 안희정 쇼크는 6월 지방선거의 직격타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입장에서 그것만큼 큰 이슈는 없다.


민주당을 깎아내려야 하는 한국당은 미투 운동에 더 적극적이다. 한국당은 며칠 전, with you라는 단어와 흰 장미를 내세웠다.


거기서 그치면 좋았을 텐데, 한국당은 한 걸음 더 나간다. 안희정의 성폭행 의혹을 "좌파 운동권의 문란한 성의식"으로 프레이밍한다.


안희정이나 진보 인사 개개인의 도덕적 타락을 지적하는 건 진영을 붕괴시키지 못한다. 사회 현상을 분석하듯, 상대 진영(=좌파)에 대한 분석을 기본으로 비판 의식을 섞어줘야 비로소 우리 진영(=우파)에게 이득이 된다.


그래, 다 좋다. 옳은 분석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 개인은 사라져버렸다. 정치적으로 소비되는, 피해자라는 흐릿한 단어만이 있을 뿐이다. 그게 순수한 분석이 아닌 정치적 프레이밍이라면 더욱 그렇다. 안희정의 타락이 진보 운동권의 타락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나온 피해자는 그저 좌파 운동권 문화의 희생양이 되어버린다.


한국당의 지도부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알면서도 '좌파 운동권'의 문제로 프레이밍을 시도하고, with you 라는 팻말을 들었다.


Outro 2: 받은글, 당신들이 2차 가해자


안희정 성폭행을 폭로한 피해자를 둘러싸고 국회에는 온갖 받은글)이 돈다. 절반 이상의 소문은 김 씨의 개인 신상에 대한 이야기다.


받은글은 자신들이 '사실관계'만 나열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해자들 둘러싼 모든 사실관계(심지어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글)가, 도대체 지금 왜 필요한가? 이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유일한 대답이라면 당당하게 말하긴 부끄러운 단 한 단어가 있을 테다: 재미있으니까.


우리들이 하는 행동은, 2차 가해가 맞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자는 왜 취재원에게 밥을 얻어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