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스터의 조건: 적당한 실험정신과 아슬아슬한 대중성
https://www.youtube.com/watch?v=TGZ0ppPoDuk
노란 방 그 속에
난 경멸스런 눈빛들
노란 방 그 속에
난 울지 않는 어머니의
노란 방 그 속에
내게 불가피한 상황들과
노란 방 그 속에
난 노란 방 그 속에
노란 방 그 속에
난 이해할 수 없는 설렘들
노란 방 그 속에
난 축축하게 젖은 아버지의 흰 눈자위
그 속에
난 즐길 수 없는 날씨들에 대해
노란 방 그 속에
난 노란 방 그 속에
단편선은 힙했다.
그는 기억할 리 없겠지만, 2011년 어느 재개발구역 철거반대운동현장에서 그를 오며가며 만났다. 인사까지 할 사이는 아니었다. 당시에도 단편선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어느 구석에 박혀 기타를 연주했다. 그가 공연을 하면 언제나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의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기괴한) 그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 때의 단편선은 분명한 힙스터였다.
그러나 그의 '힙함'은 제약이 따랐다. 당시 회기동 단편선으로 불렸던 그의 음악을 즐겁게 소비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갈라지는 목소리에 째지는 기타 소리가 그의 정체성이었다. 보고 듣고 있자면 마치 현대 미술을 보는 듯한 아련한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회기동 단편선의 거리 공연을 보는 사람들은 두 패로 갈라졌다.
즐거워하거나, 신기해하거나.
2013년, 회기동 단편선은 단편선과 선원들이 되어 돌아왔다.
그들의 음악을 일부러 찾아 들어봤다. 사실 좀 놀랐다. 내가 알던 단편선이 맞지만, 확실히 달라졌다. 긴가민가했었는데,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확신했다. 이제 그의 음악을 접한 사람들은 즐거워하거나, 신기해하면서 즐거워했다. 결국 모두가 그의 음악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단편선은 좀 더 사랑받는 힙스터 뮤지션이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만 분명히 하자. '힙함'이란 단어는 어떤 고정된 음악적 특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단편선이라는 음악가, 그리고 단편선과 선원들이라는 밴드는 내 짧은 지식으로 어디에 분류할 수가 없는 밴드였다. 여러 정보를 찾아보니 그들이 하는 음악은 포크라고도 하고, 록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들어도 이 음악이 포크, 록, 혹은 포크록같진 않다.
그렇다고 이들이 한국 음악 특유의 가창력+멜로디를 강조하지도 않는다. 지금 소개하는 <노란방>만 해도 그렇다. 이 음악을 백 번 이상 들었다. 그래도 조금씩 갈라지는 단편선의 목소리가 거슬린다. 기억나는 멜로디나 따라 부를 수 있는 훅(hook)이 없다.
때문에, '힙하다'는 말은 상대적인 의미가 된다. 즉, 단편선과 선원들이 힙스터가 된 이유는 그들의 음악이 무척이나 똑똑하고 영민해졌기 때문이다.
첫 정규 앨범 <동물>과 두 번째 정규 앨범 <뿔>을 전부 들었다. 회기동 단편선 시절의 실험적인 음악스타일이 남아있었다. 그렇지만, 그 음악 스타일은 괴기한 현대미술마냥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아주 살짝, 대중의 영역에 발을 들이밀었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도 재미있어하는 이유다.
마지막엔 그들의 음악에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발광(...)하는 바이올린의 선율과 반복해서 외쳐대는 '사람답게 살아'라는 어구는 몇 번 듣지 않아도 쉽게 기억에 남고, 따라 부르게 된다. 따라 부를 수 있다는 건, 최소한 거부감이 들진 않는다는 뜻이다.
이 결과물이 이들 밴드가 노린 효과인지 혹은 음악을 만들다 도달한 지점인지 모른다. 그게 아니면 나를 포함한 대중의 음악적 취향이 그렇게 변한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세 가지 이유 모두라고 생각한다. 특히 세 번째 이유가 사실이라면 단편선과 선원들이라는 밴드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대중의 취향을 파악하고, 그들과 다르지만 또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힙스터'가 될 수 있는 소양이다.
다만 지금 소개하는 <노란방>은 회기동 단편선 시절 난해함에 좀 더 가까운 노래다. 비틀어 말하자면 단편선과 선원들의 노래 중에서 가장 '위험한' 노래다. 일단 가사를 들어도 들어도 뭔 소리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단지 추측만 할 뿐인데, 추측은 상상력이란 영역을 선물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 노래를 고른 이유는, 단편선과 선원들이라는 '밴드'의 발전과정을 소개하면서 <노란방>만큼 그 역사를 잘 보여주는 노래가 없기 때문이다. <노란방>은 그저 한 곡의 노래라기보단, 단편선과 선원들이라는 밴드의 입문서에 가깝다.
단편선과 선원들은 해체했다.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노래는 남았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노래는 힙하다.
그거면 됐다. 뒤늦게 씹어들어봐도 충분히 좋은 노래들이다. 그러니 이들의 음악을 처음 접한다면, 그냥 현대미술을 보듯 노래를 노래 그 자체로 들어보았으면 한다.
혹시 모른다. 그렇게 듣다 보니 어느 새 백 번을 재생한 노래가 되어있을지도.
- <뿔> : 2집의 대표곡. 가장 클래식한 노래다
- <모든 곳에>: <노란 방>의 난해함에 신바람을 가미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아슬아슬한 노래를 좋아하는 탓에 단편선의 노래들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좋아한다. 참고로 이 노래의 백미는 아무리 들어도 노래 자체만 들어서는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괴기한 매력. 서태지 <크리스말로윈>의 난해한 가사전달력을 5배 정도 뻥튀기한 느낌.
- <연애> : 2016년부터 갑자기 핫해진 인디 가수 김사월이 참여해서 뒤늦게 유명해졌다. 이 노래도 클래식한 편이라 거부감 없이 듣기 좋다.
- <국가> : 싱글곡. 단편선은 원래 자립음악생산조합을 하고 집회장소에 자주 나타나는 등 사회참여적 뮤지션이다. 앨범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정치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주제의식이 노골적이진 않아 거부감은 덜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