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에서 만난 곡, 일상을 지배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4G_S-lhzM3I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가라
이 매거진은 내가 좋아하는 곡을 추천하며, 곡과 아티스트, 앨범에 대한 생각을 늘어놓는 공간이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길 일이 없고, 담긴다 해도 도입부 정도다.
하지만 <부치지 않은 편지>만큼은 예외다. 이 노래는 내 사적이고 개인적인 경험담이 전부다. 노래를 처음 접하게 된 상황은 내 머릿속에 강력한 잔향(殘響)으로 남아있다.
2010년대 겨울, 어느 집회 장소였다. 민주노총이 참여하던 대규모 집회였다. 그런 집회에는 어김없이 앰프가 등장한다.
앰프에선 민중가요가 흘러나왔다. 나는 길바닥에 앉아 꽃다지, 안치환의 무겁고 웅장한 노래를 속으로 되뇌었다. 그 때 <인터내셔널가> 가 끝나고 <부치지 않은 편지>가 흘러나왔다.
집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징처럼 굳어진 <부치지 않은 편지>를 듣게 된 배경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절 없다.
이 말을 굳이 붙이는 이유는 우연성과 강렬함을 동시에 강조하고 싶어서다. 다소 뻔한 민중가요의 리듬 속 갑자기 흘러나온 통기타와 하모니카 소리는 꼭 그만큼이나 인상 깊었다.
인상 깊은 장면은 동영상으로 머릿속에 저장된다나. 추운 겨울, 손을 후후 불어가며 앉아 있던 아스팔트 바닥은 차가웠고 바람은 따가웠다. 시청 앞에는 온갖 화려한 깃발이 바람을 타고 나부꼈다. 모여 앉은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김광석의 음악은 끝도 없이 흘러 나왔다. 우리는 노래를 따라불렀다.
집회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곡을 찾아 들었다. 가사를 뜯어먹듯 찾아봤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일기장을 펼치고 가사를 적었다. 한 자 한 자 적으면서 꼭꼭 씹듯 외워나갔다. 버릴 가사가 없었다.
원문은 정호승 시인의 시였다. 그러나 김광석의 떨리는 듯한 목소리가 있어야만 가사는 완성됐다. 그래서 들으면서 썼다. 곧 일기장 두 바닥이 검은 글자로 채워졌다. 빈틈 없이 새까만 일기장은 오랜만에 보았다. 중학교 시절 영단어 깜지 이후 처음인 듯 싶었다.
그래서 그 날의 집회는 내게 '집회'보단 '김광석'으로 기억되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혼자 걸어갈 때, 공부를 할 때, 책을 읽을 때, 하다 못해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에서, 혼자 노래를 중얼거린 경험이 있을테다. 그 때 부르는 노래야말로 개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 리스트라 생가한다. 나의 애정 리스트엔 항상 <부치지 않은 편지>가 있다.
자정 넘어 혼자 걸어가며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본다'고 읊조린다. 돈 모아 산 아끼는 책의 구석탱이엔 새벽 감성으로 써놓은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가 적혀 있다.
민주화운동 열사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라는 건 한참 나중에 알았다. 외람된 말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별로 신경쓰고싶지 않다. 노래의 배경과 의미를 몰라도 심금을 울리는 가사란 건 존재한다. 나는 진혼곡이든 뭐든 그저 이 노래와 가사가 좋을 뿐이다.
비일상의 집회에서 만난 곡이 일상을 지배하는 노래가 되었다. 나는 이 노래를 '집회의 노래'로 해석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즐기고 있다. 조금 모순적일지도 모르겠다만, 굳이 모든 걸 논리적으로 짜맞추고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만 따라오는 감정이 있다. 많은 경우 그 감정은 달콤하고 황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