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좋아했던 수영장 물 냄새가 코로 들어와 몸 속을 빙글빙글 돌았다.

by 밍경 emb


기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나는 자유형-배영-평형-접영 네 가지법을 전부 할 수 있었다.



수영장을 처음 데려간 건 내 할머니었다. 외동딸이었던 엄마가 결혼을 하고 할머니는 집에서 5분 거리인 동네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물을 무서워하지 않던 할머니가 꼭 배우고 싶었던 운동이 수영이었다고 한다. 몸살 기운이 돌 때 빼고는 주3회 수영을 거른 적이 없었다고, 할머니는 종종 말했다. 그녀가 거짓말할 이유는 없으니 아마 사실일 테다.


빠른 생일을 가진 외손녀가 5살의 나이로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50대 중반의 할머니는 외손녀를 수영장에 처음 데려갔다. 한 뼘도 안 되는 년이 첫날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제치고 풀장에 풍덩 뛰어들더라.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중학교 1학년 때 규모 있는 대회를 신청했다. 수영 선수가 되려면 통과해야 할 첫 공식 관문이었다. 아마추어 대회에서 어느정도 성적을 내 자신감이 있었다. 집에서 사십 분 정도 걸리는 연습장을 일주일에 대여섯 번씩 다녔다. 막상 훈련에 들어가니 말도 못 하게 힘들었다. 접영으로 50M 수영장 열 바퀴, 스무 바퀴를 연속으로 도는 건 기본이었다. 자세 교정을 위해 양 발을 고무밴드로 묶고 그 밑에 추를 달았다. 정신교육이란 이름으로 단체기합을 받기도 했다.


두세 달의 훈련을 받고 출전한 대회에선 접영 200M로 4등을 했다. 무척 애매한 등수를 받들고 풀을 나오자마자 눈으로 할머니를 찾았다. 관중석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손을 흔들어줬는데, 괜히 울음이 치켜나와 서둘러 수경을 다시 써버렸다. 지옥같은 훈련에서도 좋아했던 수영장 물 냄새가 훅, 코로 들어와 몸 속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 느낌이 역해 숨을 들이막고 샤워장으로 달렸다. 더운 8월 여름이었다.


대회에 출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한 중이염이 생겼다. 두세 번의 수술을 에필로그처럼 받은 후 수영을 그만뒀다. 귀 수술이 자신 탓이라며 엉엉 울던 할머니는 내가 운동을 그만둔 후에도 주3일 꼬박꼬박 동네 수영장에 갔다.



직장생활에 적응하자 보이지도 않던 저녁시간이 눈에 들어왔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나에게 운동은 곧 수영이었다. 동네 수영장은 경기 불황에도 몇 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건재하게 남아있었다. 마침 신규 회원 등록기간이라 주5회 저녁 수영을 끊었다. 직업 특성상 저녁자리가 많지만 그래도 주3회는 무조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충 수영복과 모자,수경을 사고 첫 강습 시간에 들어갔다. 10년만에 들어온 수영장 풀은 10년이란 시간을 그대로 되감기해줬다. 몸이 기억하는 운동이란 참 놀라워서 언제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야할지, 머리보다 빨리 판단했다. 다만 줄어든 폐활량과 깎인 기본체력때문에 자유형 두 바퀴를 돌자마자 머리가 띵해졌다. 자세도 무너져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힘든 것과 별개로 아드레날린은 나오니 첫 수영을 마친 다음날, 근육통에 시달리면서도 하루종일 콧노래를 불렀다.



외손녀가 10년 만에 수영을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


주 3회 수영 원칙을 지켜오던 할머니는 수영복을 그대로 입고 로비에 나왔다. 이십년 넘게 할머니를 봐왔던 수영장 직원들은 놀라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집안일을 하다가 뛰쳐나온 엄마를 보고 할머니는 세면가방이 사라져 그랬다며 화를 냈다. 세면가방은 할머니의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엄마는 할머니를 잡고 울어버렸다. 할머니는 당신이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같이 눈물을 짜냈다.


알츠하이머는 치즈구멍을 파내는 것처럼 사람의 기억을 구석구석, 숭숭, 가져가버린다. 홀몸 자수성가로 외동딸의 성장과 외손녀 교육을 책임진 할머니는 어느 날 돈이 한 푼도 없어서 슬프다고 펑펑 울었다. 식단조절을 자랑으로 생각하던 할머니는 하루에 다섯 끼를 드신 후 하루종일 쫄쫄 굶었다고 믿었다. 돈계산과 암산이 세상에서 제일 빨랐던 할머니는 이년 전 취직한 외손녀가 왜 취직했다고 말해주지 않냐며 엄마에게 전화로 소리를 질렀다. 잔인하고, 빠르고, 또 힘든 병이었다.


할머니는 수영복을 입고 세 번째로 로비에 나온 날 수영을 그만두셨다. 수영장 물 냄새도 맡기 싫어졌다고 말했다 한다. 같은 날 퇴근하고 돌아온 나는 다음달치 수영을 등록했다. 추운 12월 겨울이었다.



수영을 그만둔 할머니는 여전히 나를 기억한다. 웃어주고, 음식을 챙겨준다. 최고로 미스코리아라고 볼때마다 등을 쓰다듬는다. 그 쓰다듬을 받고 난 수영장에 간다. 나는 할머니가 다음날 외손녀 본지 일 년이 넘었다고 엄마에게 투덜댈 걸 알고 있다.


봄이 오는 4월이다. 영법 자세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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