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키노-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

존 레논을 선망하던 빅토르는 스스로 소련의 존 레논이 되었다

by 밍경 emb

https://www.youtube.com/watch?v=BRPx5-0sM14&list=RDBRPx5-0sM14


팔에 새겨진 혈액형

소매에는 내 군번

전장에서의 승리를 빌어줘, 부디 내가

이 들판에, 풀밭에 남지 않기를

나의 승리를 빌어줘, 승리를 빌어줘

값을 치를 것은 있지만, 값싼 승리를 원하진 않아

누구의 가슴도 짓밟고 싶지 않아

단지 너와 함께 있고 싶어, 있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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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솔직히 말한다. 빅토르 최의 외모에 먼저 반했다.

객관적으로 잘생기진 않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눈웃음이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 담배를 태우는 음악가는 막연한 로망이었다. 1980년대에 활동한 러시아 록 그룹 키노의 리더이자 보컬인 빅토르 최(빅토르 로베르토비치 초이, Виктор Робертович Цой)는 세 가지 요소를 다 갖춘 사람이었다.


외모에 빠졌으니 당연하게도 음악보다는 신상이 궁금해졌다. 80년대 한국인 가수같이 생긴 사람이 이 러시아 전설의 록그룹 리더라니. 빅토르 최는 고려인 아버지를 둔 소련인이었다. 20대 초반부터 러시아 전력을 휩쓴 인기를 자랑했다. 28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요절을 했다. 교통사고에는 의문점이 많았다. KGB가 얽혀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한다.


최소한 빅토르 최의 음악이 소련 정보당국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의미다. 그의 음악이 궁금해져 구글링을 했다. 빅토르 최가 이끈 록그룹 키노의 대표곡이 떴다.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이었다.



빅토르 로베르토비치 최


70년대 소련은 공산주의를 왜곡한 전체주의 사회였다.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끔찍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엔지니어와 교사 부모 밑에서 태어난 빅토르 최는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서구 자유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락을 선택했다. 소련에서는 그닥 돈을 벌 수 있는 음악이 아니었다.


예술학교에서 퇴학당하고 기술자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어찌어찌 만난 사람들과 1982년, 밴드 키노((Кино=극장)를 만들었다. 한국으로 치면 홍대와 상수같은 뒷골목 인디음악 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허구한 날 서양의 락을 듣고 자랐다. 자연스럽게 주제의식은 자유로 좁혀졌다. 민중가요처럼 직접적인 노래를 만들진 않았다. 비틀즈와 비슷하게, 음색과 가사는 부드러우면서도 서정적이었다.


키노는 착실히 명성을 쌓아왔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20대 중반이었다. 빅토르 최는 1985년 한 여자와 동거를 했다. 아이를 낳았다. 1984년 이후에는 레닌그라드 록클럽 페스티발의 상을 휩쓸었다.


1988년, 빅토르 최는 중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혈액형>을 불렀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에 대한 노래였다. 반전(反戰)이라는 이상을 담았다. 전체주의에 지친 소련의 젊은 세대는 열광했다. 노래로 정점을 찍었다. 키노는 80년대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독보적인 락밴드가 되었다.


인기의 중심에는 빅토르 최가 있었다. 정상급 연예인이 됐다.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렸다. 존 레논을 선망하던 빅토르 최는 스스로의 힘으로 소련의 존 레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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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은둔형 예술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잘 소비하는 편에 속했다. 빅토르 최는 뮤직비디오를 찍고,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갔다. 본업을 놓진 않았다. 전국순회공연을 돌았다. 외국으로까지 진출했다. 미국과 일본 등을 오가며 공연을 펼쳤다. 소련을 떠난 무대에서 소련 사람들의 삶을 개미에 비유한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20대 후반에 들어선 빅토르 최의 전성기를 사드라들 것 같지 않았다.


1990년 8월 15일, 빅토르 최는 차기 앨범 준비와 뮤직비디오 촬영을 병행하고 있었다. 별장 근처에 있는 호수에서 새벽까지 낚시를 즐겼다. 혼자였다. 별장으로 돌아가려고 자동차를 탔다. 시속 100키로가 넘게 달렸다. 맞은편에서 대형 버스가 달려오고 있었다. 정면충돌한 빅토르의 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졌다. 빅토르 최는 즉사했다. 28세였다. 민족이나 핏줄로 엮고싶진 않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날은 한국의 광복절이었다.


대형 버스의 운전자가 누구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의문스러운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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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장례는 레닌그라드의 보거슬라브스끼 묘지에서 치러졌다. 소련은 충격을 받았다. 5명의 20대가 빅토르를 따라가고 싶다며 자살했다. 그를 추모하는 벽이 생겼다.


빅토르가 떠나고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소련은 러시아가 됐다. 사람들은 여전히 검은 머리의 빅토르를 추모한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면, 젊은이들이 버스킹을 하며 <혈액형>을 열창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Outro


한국에도 빅토르 최를 기억하는 음악가가 있다. 윤도현밴드(YB)다. YB는 키노의 가사를 해석해 <혈액형>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빅토르 최 특유의 중저음을 그대로 가져왔다. 키노를 상당히 좋아하는지, YB는 한국어-러시아어-영어 세 가지 버전으로 <혈액형>을 녹음했다. 반응이 좋았다. 러시아 사람들 중에서도 YB가 부른 <혈액형>을 들어본 사람이 많다고 한다.


노래를 소개하는 글이지만, 노래를 매개로 잘 알려진 한 명의 예술가를 소개하고 싶었다. 노래는 노래 자체로 훌륭한 의사소통의 도구다.그러나 때로는, 노래를 부른 사람을 이해했을 때 더 잘 스며드는 감정이란 게 존재한다. 빅토르 최는 그런 존재감을 뿜는 사람이었다고 추측해본다. 그의 죽음 후 태어난 나는 간접적으로나마 이 사람을 추모하며 빅토르의 노래를 듣는다. <혈액형>만큼 좋아하는 노래인 <담배 한갑>의 가사를 마지막으로 가져온다.


낯선 창에 기대 낯선 하늘을 바라본다

하지만 아는 별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루종일 거리를 이리저리 걸어봤지만

그림자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었어.

(...)

그 누구도 죄 없이 죄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지

그 누구도 맨손으로 뜨거운 재를 옮기길 원하지 않지

만약 세상에 음악이 없었다면

죽음도 아름답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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