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은 포크송이란 장르를 안고 무한한 세상을 마음대로 표현해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r2vZK_sfJyo
나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사색의 시인이라면 좋겠오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테요
새로운 노래를 탐독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보단 내가 알고 생각나는 온갖 음악을 플레이리스트 하나에 잔뜩 쌓아놓는다. 그리고 개중 그날 기분에 따른 플레이리스트를 별도로 만들어 무한 반복한다. 본의 아니게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가수들의 음악들을 같이 듣게되는 이유다.
근 한 달 동안은 90년대 이전 한국 대중음악에 꽃혔다. 김민기, 전인권, 송창식, 김현식, 김광석 등등을 찾아들었다. 그 중 가수를 잘 모르고 들었던 노래가 하나 있었다. 포크송만의 맑은 기타소리가 너무 좋았다. 그 노래가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 이었다.
음악을 안 지는 꽤 되었는데, 한 번도 정태춘의 노래들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며칠 전 시간이 남아 아무 생각 없이 정태춘의 1집을 처음 들었다. 타이틀곡이 <시인의 마을>이었다.
사실 조금 놀랐다. 정태춘이란 가수를 처음 알게 된 계기가 <아, 대한민국>이었다. 게다가 그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시위 등에 얼굴을 비추던 사회운동가였다. 당연히 민중가수적 색채가 다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시인의 마을>이란 데뷔 엘범은 전혀 거리가 멀었다.
특유의 창조성이 좋아 80년대 한국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근대시기의 산업화는 이룩했다. 그러나 자유라는 가치는 어째 너무 더뎠다. 정확히 말하면 초고속으로 진행된 한국의 산업화 속도에 비해 자유의 속도가 더뎠다.
당시를 살던 사람들에게 그 속도는 너무 암울한 미래처럼 비춰져 애가 달았다. 이미 민주화의 씨앗은 텄지만 사람들은 싹이 조금 더 빨리 자라나길 바랬다. 80년대 한국에서 민주주의 운동이란 전성기를 지나온 회광반조(回光返照)같은 시기였다.
'모더니티의 아수라장' 속에서 대중문화도 비슷한 색을 띠었다. 특히 대중음악은 긍정적으로 발전했다. 운동권의 획일적 멜로디에서 벗어나되 문제의식과 철학적 고민을 안고 가는 사람들이 수면위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 있는 음악 장르를 움켜쥐되 그 속에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창조해내려 했다. 바꿔 말하면, 장르에 매몰되기보단 장르를 사용했다.
정태춘은 포크란 장르를 선택했다. 70년대의 주류 음악이기도 했다. 통기타를 잡은 젊은 정태춘은 가사에 상당히 많은 고민을 쏟아냈던 것 같다. 최대한 진솔한 감정을 가장 아름답게 포장하려 노력한 흔적이 참 많이 묻어나는데, 데뷔 앨범 치고는 굉장히 노숙하다.
개중 타이틀곡인 <시인의 마을>이 나는 가장 좋았다. 소설처럼 어떤 '세계'를 가정하고 담아낸 노래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시인이란 단어를 중심에 놓고 풀어나간 이야기가 시원스러웠다. 게다가 자신이 선택한 포크송이란 장르를 차용할 뿐, 나머지는 온전히 내면의 무언가에서 끌어내려 하는 모습은 내가 좋아하던 '80년대 한국 노래'의 특징들과 정확히 일치했다. 예술은 수단이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창조할 수 있다는, 요새는 조금 보기 힘든 명제를 다시금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정태춘은 그 후에도 포크송이란 장르를 안고 무한한 세상을 멋대로 표현해왔다. <촛불>로 가장 보편적인 사랑을 노래했고, <우리들의 죽음>으로 사회적 문제를 가장 슬프고. 애닯게 표현했다. 음악적으로 완성된 정태춘은 꾸준히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의 움직임대로 한국 포크송의 계보가 쓰여졌다.
요즘, 무언가의 한계를 지나치게 빨리 규정짓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해진 틀 속에 들어가는 것조차 팍팍한 세상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여튼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 세계만의 규칙과 하면 안 될 것들이 덕지덕지 모여 '모범'이란 단어로 치환되는 모습을 참 많이 보고 있다. 그러니까 그 밖으로 벗어나면 임계치를 벗어나는거고, 한계를 넘어서버리는 거다.
나 역시도 규칙을 이용하기보다 규칙에 매몰되는 삶을 살고 있다. 네모난 규칙 안에 사는 건 사실 꽤 편하지만, 어째 갑갑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그 마음을 풀 데가 없어 요새는, 대리만족을 느끼듯 정태춘의 노래만 줄곧 듣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밖엔 또 할 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지인지도 몰라
(정태춘-우리들의 죽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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