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숙한 스모키에 예쁜 타투를 한 보통의 꾸민 여자가 더 예뻤다.
잭다니엘 한 병을 다 비운 시간은 새벽 1시 30분쯤이었다.
세상과 가치관에 대한 쓸모 없는 토론을 한 K와 W는 목이 아파 켈록거렸다. 쓸 데 없는 토론을 했지만 목은 멀쩡했던 나는 대신 무척 잠이 왔다.
과일안주가 남았지만 아깝진 않았다. 우리는 술집 구석에서 계산서를 들고 일어났다.
나와 W는 앞서 나가고 K는 자연스럽게 계산을 했다.
수입 없는 대학원생 K는 부모님이 만들어준 한도 없는 카드를 방패처럼 들고다녔다. 생활에 별 지장은 없지만 K는 카드깡으로 '유흥' 비상금을 모았다. 우리는 별다른 생각도 반발도 없이 K의 목돈 만들기 프로젝트를 도왔다.
5말6초 새벽날씨는 숨쉬기 딱 좋았다. 바람은 한밤이었는데 소리는 대낮이었다.
클럽거리 구석에 있던 술집은 안부터 밖까지 시끄러웠다. 골목을 빠져나가니 한 평당 못해도 예닐곱 명쯤 되보이는 사람들이 거리를 꽉꽉 채우고 있었다. 싸구려 EDM과 공산품 노래가 온 가게에서 흘렀다. 프랜차이즈 술집 2층에서는 웃음인지 괴성인지 모를 소리가 엉켰다.
열려 있는 초여름 창문 밖으로 굴러나온 소리 사이로 보도블럭 담배연기가 스며들었다.
편의점에는 하늘보리나 산탄수 같은걸 사들고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던 어린 여자들이 있었다. 속눈썹까지 정성스레 붙이던 단발머리 여자는 많아봤자 스물 둘 아니면 세 살이었다.
어린 나이는 예뻤는데, 헐벗고 꾸민 친구는 더 예뻤다. 수수해서 예쁘단 건 본판이 예쁘니까 가능한 거지. 난 솔직히 수수한 보통 여자보단 능숙한 스모키에 예쁜 타투를 한 보통의 꾸민 여자가 훨씬 더 예뻤다.
K와 W도 그래보였다. 술기운에 눈이 반쯤 감겨있던 K와 W는 크롭티 입은 여자가 줄선 클럽거리로 나오니 맨정신이 됐다.
원래부터 여자를 심하게 좋아하던 W는 K를 쿡쿡 찔렀다. 흩어지든 같이 있든 하여간 집에는 가지 말자는 뜻이었다.
나도 예쁜 여자를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잠이 깰 정도는 아니었다.
일이 조금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무척 피곤했다. 국가주의가 옳니, 소시민적 저항이 세상을 바꾸니 하는 쓸모 없던 토론도 에너지를 급격히 깎아먹었다.
주말은 놀기 좋은 만큼 체력도 바닥난 시간이었다. W와 K에게 인사를 하려 돌아봤다. 옷도 아무렇게나 입은 둘은 무슨 자신감인지 이미 어느 클럽을 모색중이었다.
사커킥으로 누군껀지 모를 궁둥이를 걷어차고 인사 없이 돌아섰다. 한밤중 서교동 대로 쪽으로 슥슥 걸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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