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홍대 2/2

정작 올바르게 화를 내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by 밍경 emb


홍대입구 지하철역 근처는 아니고, 그보다 더 내려와 서교동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서울 올빼미 버스는 집 근처에 내려주지 않았고 주머니는 학생 때보다 두둑했다. 택시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암만 손을 흔들어도 택시는 잡히질 않았다. 일단 '빈 차'가 없었다. 주황색 택시가 줄줄 내려오는데, 택시 뒷자석마다 사람들이 가득 차있었다. 가끔 보이는 빨간불의 번호판에는 인천이나 경기 같은 글자가 박혀 있었다.


15분쯤 휘적대다가 포기하고 신호등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집으로 가려면 골목길을 급하게 꺾어 돌아야 하지만, 완전 반대 방향이라고 단정하긴 어려웠다. 이쪽 대로를 따라가면 시내 쪽으로 이어지는지라 빈 택시들이 많았다. 일단 눈 앞에 있는 차 한 대를 잡아탔다.


"기사님 안녕하세요. 000동으로 가주세요"

안 그래도 종잇장같이 구겨진 기사의 표정은 더 죽상이 됐다.

"에이씨, 거기 완전 사람 사는 동네 아냐"


그럼 사람 사는 동네지 뭐겠어요, 라고 반문하려 했지만... 새벽 두시의 택시는 솔직히 말해 무서웠다.

나는 무려 이십분 전 남자 두 명과 클럽거리를 가로지를 때보다 훨씬 더 작아져 있었다. 그건 일종의 본능이었다.


"저도 참 이런 시간에 죄송해요. 3000원 더 드릴게요, 가주세요 기사님~"

"삼천원이고 오천원이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아..."

침묵의 일 초가 지나고 기사는 말했다. "내리세요"


잘못 들었나 싶었다. 창 밖에서 목적지를 말하고 거부당한 적은 많지만 뒷자석에 타고 짐을 내려놓은 채 거부당하긴 또 처음이었다. "진짜요?""정말요?""타기까지 했는데요?" 라는 반문이 이어질수록 기사의 명령도 "내리세요 참" "내리시라고요" "아 내리라고요 지금"으로 험악해져갔다.

그리고 피날레.

"아가씨 내리라고 쫌! 영업방해 말고!!(운전대 한 번 손으로 퍽)"


두려움과 짜증이 동시에 밀려왔다. 정말로 이 사람이 내 멱살이라도 잡을까 무서웠고, 또 졸리고 피곤한데 무시까지 당한게 서러워 짜증났다.

어느 쪽이든 격한 감정이라 나도 이상한 방향으로 폭발해버렸다. 나는 짐을 챙겨서 택시 문을 열고 피식 웃으며 말해버렸다.

"기사님 그렇게 살지 마시고요, 번호판 기억해놨고 후반부에 녹음했으니까 나중에 연락 갈거에요!"


33아 로 시작하는 택시에서 내렸고, 택시기사는 아주 잠깐 날 쳐다보다가 쌩 가버렸다. 기사와 내가 입씨름을 하는동안 안암동을 가려 하는 남자 둘이 타려 했다. 33아 기사는 그 사람들도 거절했다.


나는 그 다음 두 대의 택시 승차거부를 당했다.번째 기사는 다행히 너무나 친절했고, 친절에 감동해 3000원을 더 드렸다. 그렇게 집에 왔다.



일주일이 채 못 지난 어느 주말.

아버지와 식당에서 먹으며 이 이야기를 했다. 내 아버지는 방임주의와 자유주의를 섞어가며 날 키웠는데, 유달리 이 문제에 대해선 날 걱정하며 뻔하디 뻔한 충고를 늘어놓았다.

물론 99%는 흘려들었다(Ex. 큰일나면 어쩌려 그랬냐...). 그러나 딱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김수영처럼 설렁탕집 주인한테 화풀이하는 거랑 네 태도가 뭐가 달라."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이 잘못했으면 욕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니 돼지같은 주인년은 지워지고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한 내 모습만 천천히 마음에 스며들었다.

스며든 말들이 너무 차가워서 가슴을 콕콕 찔렀다.


홍대는 자꾸자꾸 사람이 채워졌고,

이제 마음을 먹어야 새벽 홍대를 쏘다닐 수 있을 정도로

나이와 의무와 책임과... 하여튼 그런 것들이 채워진 내 주변에는

자꾸자꾸 돼지같은 주인년만 많아지고

그 사람들에게 속절없이 화풀이를 하는 나는

정작 올바르게 화를 내는 삶, 예를 들어 밤거리를 본능적으로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세상를 향해

화를 내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아주 조금 무안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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