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장성철-보수의 민낯:도전 2022

김무성 예찬가와 보좌관의 자기자랑, 재미 없는 콜라보레이션의 완결판

by 밍경 emb
※ 들어가기 전
<보고 들은 백 개의 뒷이야기>는 백 가지의 '무언가'에 대한 리뷰입니다. 여태까진 음악을 적었지만 책도, 영화도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글의 길이는 쓰고 싶은 이야기마다 달라질 것 같습니다.



내 돈 내고 산 책을 보다가 포기한 적은 처음이다. 그런 의미에선 또 역사적인(!) 책이다.


객식구로 사는 마을이 여의도 국회라서 국회의원이나 보좌관의 이야기에 (어쩔 수 없이) 관심이 간다. 심지어 내가 아는 사람이 보좌관직을 그만두고 책을 썼다 해서 궁금해졌다.


글쓴이는 존재 자체가 이슈가 될 수 있는 김무성 전 대표 방의 보좌관이었다. 오랜 시간동안 그의 옆에서 함께 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재미있어 보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제목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새누리당 공천 파동을 다룬 책의 제목이 보수의 민낯이라니. 뭔가 엄청난 내용이 나올 것 같았다.


빌릴 수도 있었지만 정말 돈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책 구성도 훑어보지 않고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했다.




절반도 읽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사실 다 읽어도 절반이었다. 책의 절반은 신임 보좌관을 위한 백서라며 글쓴이가 작업한 문서들로 채워져 있었다.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문서였다. 읽으려고 시도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절반의 내용은 요약하기 참 쉬웠다. 첫째는 김무성 예찬가였고, 둘째는 보좌관으로서의 과도한 자기자랑이었다.


우선 첫째. 놀랍게도 소설이 아닌 이 책에서 소설의 법칙을 발견했는데, 입체화되지 않은 선악구분은 글을 아주 무료하게 만든다는 거다.


책의 대립구조는 아주 심플하다. 김무성과 친 김무성 vs 친박과 기타 세력들. 과거 비박이라 불렸고, 현재는 복당파라 불리는 수많은 사람들은 정의롭고 보수의 가치를 지키는 영웅처럼 묘사된다. 그 중에서도 김무성은 사심 없이 우국 충정이 넘치는 이 시대의 위인같이 그려진다.


보좌관의 책을 사면서 객관적인 평가를 바라진 않았다. 다만 김무성을 수식할 때 '우국충정' '선당후사'란 사자성어가 쉴 새 없이 나오는, 여과 없는 문장 역시 기대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절대선(비박)과 절대악(친박)이 끊임없이 대립하니 역동성과 선악의 모호함이 생명인 정치 이야기는 확 재미가 없어져버렸다. 재미 있는 주재로 재미 없게 쓰는 것도 재주다 싶었다.



그리고 둘째. 이 책은 보좌관인 스스로를 마치 김무성의 비선실세처럼 만들어버렸다.


책에서는 친박 의원들이 시도때도 없이 보좌관을 협박하고 의사를 타진해온다. 책에 따르면 친박 핵심인 이정현 의원은 길 가는 글쓴이를 이름을 부르며 불러세우더니 "어디 김무성이 당대표라고 까부느냐?" 같은 이야기를 하고, 글쓴이는 의원의 얼굴을 빤히 처다본다. 게다가 글쓴이는 몇몇 기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흘리고, 이정현은 글쓴이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의 문자를 보낸다.


보좌관들의 노고를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생각은 일단 지워보려 한다.


그러면 나에겐 놀라움이 남았다. 객식구로 보고 들은 의원과 보좌관 출신의 관계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수평적이었다. 여기는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배경처럼 미국 의회가 아니고, 이 사람들은 위계관계가 문화로 새겨진 자유한국당 소속이었다. 그렇다면 좋게 봐서라도 이야기를 부풀렸다는 뜻인데, 부풀리는 건 집필의 필수적인 항목이니 그렇다 쳐도 실력이 너무 일차원적이라 역시나 김이 빠져버렸다.



결국 보수의 민낯에 대한 편견만 생겨버렸다.

책에 따르면 보수의 민낯은, 추악한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무(無)였으니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책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을 읽길 최종적으로 포기하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PS)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오히려 중간쯤 있는 '언론인을 대하는 7대 원칙'이었다. 사실상 이 책에서 가장 쓸모 있고 재미있는 여덟 페이지다. '건너 들어 지어낸' 정치세계가 아닌 '직접 겪고 대면힌' 기자세계라 그런지 자세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차라리 이 부분을 부풀려서 책을 써냈으면 좋았을걸.


PS))

글쓴이가 책을 내고 한 달쯤 지나 김무성 의원실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방 비서진 중 한 명에게 농담삼아 "000보좌관은 행복할라나?"라고 물었는데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그건 더이상 언급하면 안 된다는 어떤 신호라서 조용히 입을 닫았다.

책을 읽고 나서야 왜 그런 표정이 나왔는지 알게 되었다. 글쓴이는 김무성을 찬양하지만 정작 김무성의 사람들에게 글쓴이의 책은 명분도, 대의도, 도움도 주지 않았다. 그 찬양의 종착역은 보좌진으로서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포장과 자랑이었으니까. 김무성을 포함해 의원실 사람들은 그걸 모를 만큼 둔하지 않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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