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아이유(IU) - 스물셋

'나'를 둘러싼 이미지의 주도권을 역으로 가져가버리는 당돌함

by 밍경 emb

https://www.youtube.com/watch?v=42Gtm4-Ax2U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 치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나는 사랑이 하고 싶어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
맞혀봐
어느 쪽이게

얼굴만 보면 몰라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아주 간단하거든
어느 쪽이게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스물셋14.png

Intro


K 팝의 훌륭함은 인정하지만 장르적으로 좋아하진 않는다. 감수성 예민하다는 중학교 때부터 그랬다. 그저, 잘 손이 가지 않았다.

단언컨대 취향이 고급지거나 유니크하진 않았다. 음악에 대한 깊이도 없다. 남들 모르는 인디 가수만 찾아 들을 정도로 똑똑하지 않았다. 그러니 유달리 좋아하는 힙합 장르를 제외하곤 그냥 아무 노래나 들었다는 (좀 없어 보이는) 표현이 딱 맞다.

그러나, 개중 가끔 몇 개의 케이팝 노래가 귀에 꽃히곤 했다. 예컨대 난 아직도 동방신기의 미로틱을 21세기 최고의 노래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 미로틱처럼 케이팝 중에서도 나만의 음악 리스트 상위권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소수의 노래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바로 아이유의 스물셋이다.




대중이 만든 아이유


모르겠다. 그 전에도 아이유의 노래야 많이 들어 왔으니까. 아니, 들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아이유의 '좋은 날'은 2010년을 강타한 노래 중 하나였다. 싱어송라이터 아이유는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전부터 아이유를 알고 있었다. 친했던 친구가 아이유의 데뷔 시절부터 팬이었다. 하이톤과 귀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시절의 아이유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러다 스물셋을 들었다. 궁금했다. 2015년에 나온 아이유의 새 엘범이 워낙 거세게 롤리타 논란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내 돈으로 엘범을 구매하고 전곡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내 플레이리스트에 올라온 두 곡이 바로 '스물셋'과 '제제'였다. 논란의 곡 두 곡을 나는 전부 좋아하게 됐다.


가사가 좋았다. 아이유가 싱어송라이터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스물셋'과 'zeze' 를 포함한 엘범의 곡들은 케이팝이라 정의한 여러 요소들을 답습하고 있다. 박자를 타는 방법이나 사용하는 악기나 기타 등등.

그런데도 노래의 가사가 참 인상적이다. 당시 아이유는 가수였지만, 동시에 연예인이었다. 뛰어난 외모를 가진 20대 초반의 여성은 각종 예능과 드라마에 출연했다. 상당히 활발한 모습이 두드러진 진행 모습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가수'로서 이런 가사를 쓴 것이다. 놀랍고 신기했다.




아이유가 받아들인 아이유


'돈이나 많이 벌래' 라던지,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라는 가사가 공격하는 대상은 명확했다. 자기 노래를 들어주는, 그리고 자기를 소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또 그런 이미지를 PC한 척, 하며 밀어내지도 않는다. 보아의 girls on top과는 다른 지점이다. 대신 아이유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딱 혼란스러울 정도로 음악을 듣는 이들을 실컷 놀린다.


그 당돌함이 너무 좋았다. 비단 '스물셋' 한 곡만 그랬다면 우연이라 치부하겠는데, 그 묘한 분위기는 'zeze' 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아이유는 대중이 자기를 쉬쉬하며 소비하는 롤리타적 감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그 분위기의 주도권을 자기가 가져가버린다. "지금 니네가 소비하는 내 이미지는 다 내가 만든 환상이야" 라고 외치며.


선언하는 순간 우리는 할 말이 사라진다. 그냥 바라볼 뿐이다. 그러자 아이유는 '흔한 한국 여자 연예인' 에서 '특별한 가수'가 되었다.




팔로워에서 주도자가 된 아이유


한국 사회에서 여자 연예인을 소비하는 성적 코드는 분명하다. 대중은 아이돌에게 '팔로워'가 되길, 너를 바라는 대중들에게 너가 맞추기를 대놓고 요구한다. 이걸 거부한다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예인으로서 돈을 버는 입장에선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걸 역발상으로 해낸 아이유가 좋았다. 노래가 성공했든 아니든, 그건 적어도 나의 호감도를 결정하는 데에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건 아이유라는 한 사람이 그런 시도를 과감히 질렀다는 사실 하나니까 말이다. 그것도 상당히 재미있고 당돌하게.

이 모든게 아이유의 '큰 그림'일 수도 있다만... 그럴지라도 나는 이 노래를 좋아할 것 같다. 아이유라는 사람을 모를지언정, 아이유가 '만든' 색채가 좋을 뿐이니까. 아이유가 만드는 당돌함과 적절한 반항은 내가 꼭 닮고 싶은 무언가이니까.


이런 상업주의라면 환영한다. 아이유가 더 잘 됐으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