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인생을 통틀어 무엇 하나 완벽하게 이룬 것이 없음에도 그에 대한 불편함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일을 완벽히 끝내지 못했어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여기고 넘어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조금 달라졌다. 물론 여전히 대다수의 일은 '문제 생기지 않을 정도로' 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내가 진정 좋아한다고 느낀 일에 대해서는 완벽하지 않은 결과물을 묵인하고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가령,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가정하자. 원래의 나라면 분명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고, 발행한 후, 나름 괜찮은 글을 쓴 것 같아 기뻐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한 문장을 고치기 위해 몇 시간 이상을 투자하는 것은 기본이요, 이미 완성된 글을 전부 지워버리고 머리를 쥐어뜯는 일 또한 다반사다.
지금까지 쓴 글을 모두 합치면 아마 책 한 권 분량 정도는 충분히 나오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항상 반복했기에, 남은 건 5개가 채 되지 않는 짤막한 글 뭉텅이 들일뿐이다.
흔히 이런 말을 한다. '내 글은 활자 덩어리야.' 라고.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내 뜻을 세상에 작게나마 펼치기 위해 글을 썼건만, 완성된 결과물은 그저 활자를 대충 이리저리 섞어 만들어 낸 덩어리라는 것이다. 나 또한 이 표현에 적극 동감한다.
참 우습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정말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정말 혐오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쓴 글을 혐오한다. 나름 잘 썼나? 하고 만족할 뻔하다가도,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 보면 자괴감에 빠진다. 당연히,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소홀히 대하고, 특출 난 재능도 없고, 심지어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이 그 반대의 사람이 쓰는 글을 따라갈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참 크다. 나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고, 사람들이 다음 편을 기다리는 소설을 쓰고 싶고, 오랫동안 회자될 글을 쓰고 싶지만. 막상 나오는 결과물은 이렇다. 두서도 없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심지어 문장도 제대로 읽히지 않는. 그 누구도 읽고 싶지 않아 하는 글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쓴 글을 보고 너무 역겨워서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이 읽고 써야 하지만, 당장 나오는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자꾸만 글을 멀리 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요즘은 조금 특이한 취미가 생겼다. 남의 글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생기면 그 글을 저장한 후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 몇십 번, 몇백 번을 계속 읽는다. 그러다 직접 입으로 내뱉어보기도 하고, 내가 직접 써 보기도 한다. 가끔 정말 완벽하다고 여겨지는 문장을 보게 된다면, 그 문장을 캡처해서 갤러리에 저장하고, 생각날 때마다 그 문장을 보며 곱씹고는 한다.
가끔은 내가 글을 정말 좋아하긴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다가도, 저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다 보면 저절로 납득하게 된다. 나는 글을 좋아하고,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일 뿐이다.
여전히 내 완벽주의는 현재 진행형이다. 글을 가볍게 써 보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무거운 글을 쓰게 된다. 이것은 내가 안고 가야 할 숙명이며, 이 완벽주의를 타파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한 글을 써 내려가게 되는 그날까지 글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원하는 문장이 나오질 않아 짜증이 가득한 상태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모든 글을 버리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가 지금 만드는 이 활자 덩어리들도, 언젠가 미래의 내가 보며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