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리 Aug 13. 2023

Quit

결심했다. 아니, 결심했었다.

브런치에서는 작가가 글을 쓰지 않으면 30일을 주기로 알림을 보낸다. 240일(8번)이 지나면 더 이상 알림을 보내지 않는다. 아마 더 이상 글을 쓸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글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었던 때가 있었다. 언제냐고 물을 것 없이, 당장 내 브런치 글 목록만 봐도 공백기가 꽤 길다. 2022년 5월이 마지막 글이었으니, 대략 1년 3개월 정도 글을 적지 않은 것이다.


왜 글을 쓰지 않기로 했었을까? 아마 나는, 나 스스로가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해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그만큼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나는 나의 즐거운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창작의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생각뿐이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진짜 '작가'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 그럼 글을 쓰면 되는 것 아니냐고 남들은 얘기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생각을 온전히 적는 것. 나는 내가 왜 글을 쓰기 싫어하는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내 가치관이나 신념에 대해 글을 적을 수 없었다. 분명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데, 싫다. 하기 싫다.


아마 현재의 힘든 회사 생활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심리적 탈출구를 만들어 둔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개발자로서의 삶을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나는 그래도 글을 잘 쓰니까 괜찮아' 하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정말 글을 열심히 썼던 시기도 분명 있다. 웹소설을 연재할 때였는데, 별생각 없이 시작한 소설이 반응이 좋아 친구에게 부탁해 소설 표지 일러스트도 만들고, 댓글도 읽어가면서 회사 일보다 소설을 우선으로 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원하는 글을 쓰면서 정말 행복했지만, 동시에 매일 밤 헛구역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완벽한 글을 향한 빌어먹을 내 집착 때문이다.


이전 내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내 완벽주의는 나를 항상 갉아먹었다.


사실, 글이라는 건 고려할 요소가 정말 많다. 주제, 전체적인 흐름, 문단 구분, 문단 별 내용 등등...


나는 내가 잘하고자 하는 부분에서는 철저한 완벽주의자 성격이었기에, 아무리 결심하고 또 결심해도 도저히 내 맘에 들지 않는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니, 보여줄 수 없었다.


쓰던 소설을 매번 연중 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약속한 '꾸준한 글쓰기'를 포기하면서도.


나는 도저히 '완벽한 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포기했었다.


완벽한 글을 쓸 자신이 없었기에, 글쓰기를 포기했고, 글을 읽는 것 또한 그만두었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글은, 어느새 커다란 바위가 되어 내 심장을 짓눌렀다. 간절히 원하나 닿을 수 없는, 마치 밤하늘에 수 놓인 별처럼.


그리고 그건,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글이란 뭘까? 내가 쓰고 싶은 건 대체 뭘까?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했을까?'


최소한 글이라는 것을 쓸 때는, 명확한 목표와 주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회사에서 작성하는 보고서를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누가, 누구에게, 언제, 무슨 내용을, 왜, 어떻게 보고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작성해야 하는 법이다.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기본'이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부터 명확한 주제를 생각하고 글을 작성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칭찬이 듣고 싶어서. 혹은, 내 심리적 도피처를 만들기 위해서 도망치듯 글을 작성해 온 것이다.


멋진 문장과 화려한 글만을 좇아 온 나에게 '완벽한 글'을 향한 길은 너무나 멀고도 험했다. 애초에, 어느 방향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조금이나마 경험을 쌓고 인생을 살다 보니 조금씩 다시 머리가 틔이는 듯하다. '완벽한 글'은 아니더라도,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정도는 조금 가닥이 잡혔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결심한 것들 중 하나를 포기하고, 다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원래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건 '꾸준한 글쓰기'였다. 하나, 내 목표가 '꾸준히 좋은 글쓰기'라는 걸 깨달아 버린 이상, 하나를 포기하려고 한다.


자주 글을 쓰지 못하더라도. 1년, 2년에 딱 한 번만 쓰더라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쓰자.


주제넘은 말일 수 있으나... 나는 이 길이 진정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씩이어도 좋으니, 계속 발전하는 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번 글을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 활동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