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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 Dec 09. 2021

위로받고 싶은 날

아, 우울하다. 우울해!


그런 날이 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우울하고 축 처지는 날들. 어제도, 그저께도, 일주일 전도, 한 달 전도 분명 같은 하루를 보냈지만, 이상하게 너무나 우울하고 무기력한 그런 날.


나는 특히 회사에서 그런 감정을 자주 느낀다. 회사는 언제나 북적이지만, 동시에 소름 돋게 고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에 가만히 앉아있다 보면 자칫 외로움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외로움은 우울을 증폭시킨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 내 침대에 누워 몇 시간이고 잠들고 싶은 그런 날.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어 더 우울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질 감정이지만, 시간이 지나기 전의 우울을 견뎌야 하는 나는, 이 무의미한 반복에 너무 지쳐버렸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수 없이 많은 잡념에 휩싸인다. 과연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걸까. 시간을 이렇게 허비해도 되는 걸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등등.


어릴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위로받고 싶으면 쪼르르 달려가 엄마 품에 안겨, 투정 몇 번 부리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의 난, 엄마 품에 안겨 투정 부리고 위로받기엔 너무 많이 자라 버렸다. 누군가와 대화하고, 그 사람에게 내 잡념을 모두 털어놓으면 난 괜찮아진다. 그러나 날 위로하기 위해 나의 감정을 이해한 그 사람은 내 힘들었던 감정을 오롯이 떠안게 된다. 한두 번은 괜찮아도, 여러 번 할 짓은 못 된다.




나는 예민하다. 정말 정말 예민하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엘리베이터가 왔다 갔다 하는 진동과 소리가 들릴 정도로 예민하고, 사람 얼굴만 보면 의도치 않게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모두 읽어버릴 정도로 예민하다.


그렇기에 괴롭다. 작게만 존재했던 나의 감정 속 편린을 나도 모르게 끄집어내어, 불리고, 또 불려서 결국 내 내면을 가득 채워버릴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난 그제야 허겁지겁 내 감정을 정리하려 하지만, 한번 덩어리 진 감정은 수습하기가 너무 어렵다.


극복하려 노력했다. 예민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실 지금도 노력 중이다.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항상 노력한다.


뭐, 물론 그게 잘 될 리가 없다. 타고난 예민함을 후천적 노력으로 억누른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닌 것처럼, 이것도 어쩔 수 없는 내 일부일 것이다. 내가 감당해야 하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나의 일부.


그렇기에 나는 이제 노력한다. 예민하고 우울해지는 내 혼란스러운 내면을 숨기고, 꽁꽁 싸매서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게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순응하려 애쓰고 있다.


그렇게 노력하고, 버티다 보면 어느샌가 시간은 흘러가고, 큰 덩어리가 되었던 내 감정은 다시 작은 조각이 되어 내 내면 어딘가에 자리 잡을 것이다. 이 과정은 분명 괴롭지만, 어찌 보면 자아 성찰의 기회를, 나 스스로가 더욱 단단해질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성장 과정이 되어 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난 오늘도 살아가고, 버틴다. 우울함, 외로움, 불안함을 등에 업은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을 꾸역꾸역 오른다. 이렇게 계속 오르다 보면 언젠가 정상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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