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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가오니 Jan 13. 2019

#2. 누구나 가진 '다시 시작하는 힘'

게임 파이널 판타지 IV 속에 담긴  '다시 시작하는 힘'을 읽다

지난번 '너무나 어려운 길, '인간성의 유지'에 이어 두 번째로 '게임과 인간에 대하여' 글을 쓰면서 어떤 얘기를 쓸까 생각해봤습니다.


바로 '다시 시작하는 힘'입니다.


지난 글의 주제였던  '인간다움'에 이어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다시 시작하는 힘’에 대해 인상 깊게 체험한 일상 속의 예술을 통해서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일상을 담담하게 비추는 램프 불빛 아래
(image = https://www.vangoghmuseum.nl , The Potato Eater, Van Gogh 1885)

여기 강렬한 자기만의 색채를 남기고 살다 간 화가 '반 고흐'의 1885년, 그의 20대 젊은 시절의 대표적인 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자 먹는 사람들'을 이루는 색상은 어둡고 투박하지만 역설적으로 실재하는 천연색 인간의 삶이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 자문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고흐의 생각을 엿보기로 했습니다.


동생인 테오에게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보내는 편지 속에서 반 고흐가 이 작품의 의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제 느낌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젊은 시절 후원자였던 라파르트가 이 그림을 보고 어두운 색감에 대해 의문을 가지자 고흐가 답한 내용에서도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탁한 빛깔 속에 얼마나 밝은 색이 있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고흐의 말을 곱씹어 다시 그림을 보다 보니 어두운 색감 속에서 왜 표현하기 어려운 천연색이 느껴지는지 그 이유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가 말한  ‘탁한 빛깔’은 ‘날 것 그대로의 특별하지 않은 일상’를 의미한다는 것, 그리고  그 안의 ‘밝은 색’이라는 의미는 계속되는 평범한 일상을 그대로 드러냄으로 오히려 작위적인 색감으로 담을 수 없는 강렬한 삶의 순간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그림 속 희미한 램프 불빛 아래 담담하게 저녁을 먹는 시간을 통해 다시 다가오는 다음 시간 또한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 화톳불이라는 공간


이번에는 첫 번째 글에서 다룬 어렵고 힘들고 무거운 게임 ‘다크 소울’에 나오는 ‘화톳불’이라는 공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이 게임을 하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이 게임을 그만두지 않고 나는 왜 다시 계속하고 있는가.'

'화톳불에 불을 지피고 휴식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둡고 험한 다크 소울의 세계 안, 어둠과 대비되는 화톳불의 존재는 거친 세계 속 내가 쉬어갈 수 있는 안식 같은 존재이다.

죽을 수 없는 불사의 망자(亡者)인 주인공의 삶을 직접 체험하는 나에게 이 게임은 게임오버가 없습니다. 오직 'YOU DIED'라는 검은 화면과 뒤이어 화톳불에서 게임을 재개하는 망자가 된 나의 모습만이 존재합니다.


게임의 어느 곳에서나 현재 상태의 저장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해 새로 시작하는 지점은 오로지 화톳불 앞에서 입니다. 심지어 새로 탐색하는 지역의 화톳불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영락없이 게임의 처음 화톳불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톳불이라는 장소를 찾고 불을 지피고 휴식을 취하는 것은 이 어려운 게임을 클리어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YOU DIED'. 영원히 죽지 못하는 망자인 주인공은 죽고 나서 망자의 몸으로 화톳불에서 플레이를 재개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겪다 보면 어느새 '화톳불을 찾는다' -  '인간성'아이템을 통해 '불을 붙인다' - 게임을 하다 '죽는다' - 화톳불에서 다시 '인간성을 회복한다'라는 흐름에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이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화톳불은 망자(亡者)가 아닌 실재하는 나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순간'임을 깨닫게 됩니다. 다음 화톳불 전까지 어려운 구간을 극복하고 다시 불을 붙이고 망자에서 인간으로 회복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성취감은 실제로 내가 살아나는 것 같은 감동이고 매우 인상 깊은 경험입니다.


앞서 말한 고흐의 그림에 드러난 일상의 평범한 단면, '어둠이 깔리고 램프에 불을 붙이고 저녁을 먹으며 그 날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며 내일을 준비한다'의 평범하고 담백한 모습에서 강렬한 삶의 에너지를 느끼고 위안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입니다.


만약 이 게임에서 화톳불이 없었다면 계속해서 죽고 자동 저장된 아무 곳에서나 게임을 재개하며 어느새 게임오버가 없이 죽기만 하는 행위에 질려 게임을 끝까지 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문득 실재하는 내가 살아가는 이 삶을 실감하는 순간을 다룬 그림과 게임의 경험을 이야기하다 보니 ‘다시 시작하는 힘’의 근원에 이것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긴 던전 속 숨겨진 다시 시작하는 힘

이제 파이널 판타지 IV (FINAL FANTASY IV)를 살펴봅니다. 이 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롤플레잉 게임이기도 합니다. 크리스털이라는 영롱한 마법석과 이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다양한 드라마가 당대 최고의 연출력과 기술력을 통해 펼쳐지며 전 세계 수많은 게이머들에게 깊은 감흥을 주었던 작품입니다.


또한, 매 시리즈마다 다른 게임에서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게임 시스템을 도입하여 게이머들 사이에서 말하는 '깊게 파고들기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하는 게임'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렇게 설명하고 나면 마치 화려하고 세밀한 연출을 즐기면서 게임을 손쉽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 반대로 파이널 판타지는 매우 어려운 게임이며, 특히 3편 이후의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가 죽음 (死) 일 정도로 세계관도 어둡습니다.


이런 데다 게임 시스템을 숙지하지 않고 공략 해나가지 않으면 금세 파티 전멸과 게임오버 (GAME OVER)를 당하는 게임 플레이 상의 죽음의 순간들도 빈번히 일어납니다. 한마디로 흥미를 가지고 게임을 시작해도 중간에 포기하기 쉬운 게임입니다.

초반 악명 높은 보스 '마더 봄', 스토리상 파티에 합류하는 얀의 전체 공격 '공중 차기 '를 제대로 못쓰면 자폭공격에 파티는 전멸당하기 일쑤
몬스터의 카운터 속성을 아는 것이 공략의 지름길. 좀비 몬스터는 주인공 암흑기사의 암흑 공격도 큰 효과가 없다. 흑마법 '파이어' 계열이 즉효약. Try & Error가 필요
아무런 설명이 없는 보스전, 상식적인 선에서 물이니까 번개 공격이란 공식을 뒤엎는 블리자드(흑마법) 공격이 유효한 옥토맘모스 보스전
특히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어려운 건 보스까지 가는 던전이 매우 길기 때문인데 이렇게 백어택을 당하면 게임 초반 제대로 공격 못해보고 게임 오버돼서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할 때가 많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전작 파이널 판타지 III까지 이어졌던 보스 던전의 길이입니다. 짧게 잡아도 1시간이 훨씬 넘게 걸리는 보스 던전. 던전 자체는 단순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랜덤 인카운터 배틀로 인해 피해 갈 수 없는 싸움이 수십여 차례, 점점 소진되어가는 생명력과 아이템, 마법력으로 보스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전투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길고 어려운 보스 던전에 '다시 시작하는 힘'이 숨어있습니다.


몇 번이나 좌절하고 보스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포기하려고 했을 때 그 순간 발견하게 되는 곳이 바로 던전 내의 세이브 포인트였습니다. 다크 소울의 다시 플레이를 재개하는 화톳불, '감자 먹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희미한 램프 등불 아래 모여 휴식을 취하고 감자를 나눠먹으며 내일을 준비하는 장소와 같은 곳입니다.  

기존 시리즈는 물론 다른 롤플레잉 게임에 없었던 던전 내의 게임 저장(SAVE)이 가능하고 체력과 마법 포인트, 상태 이상 치유가 가능한 포인트가 존재했다.
척박한 산맥으로 이뤄진 보스 던전. 산 중턱에서 발견하는 세이브 포인트는 사막 속의 오아시스 같다.

지금의 최신 게임에서는 게임을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재개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게이머들의 편의성이 극대화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1991년 파이널 판타지 IV에서 보여준 던전 내의 세이브 시스템은 획기적이었습니다.


당시의 다른 게임들도 플로피 디스크와 같은 자기 매체를 통해 게임의 진행사항을 저장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기능적인 편의성을 제공하는 선에서 멈추어져 있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IV와 같이 게임의 진행과 체험구간에서 세이브 포인트를 두어 '중간 점검'을 하는 곳에서 ‘게임 속에 실재하는 나를 체감’ 하게 해주는 한편, 아무리 어려워도 '여기서 다시 시작해도 되겠다'는 느낌을 주는 내러티브를 고려한 게임 디자인은 없었습니다.

모닥불 아래, 치열한 보스 던전의 전투를 뒤로하고 잠시나마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의 날 것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길고 긴 던전에서 세이브 포인트를 발견하고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지피고 자신을 포함한 파티 구성원의 가슴속 이야기를 꺼내 담담하게 서로의 마음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모험에 나선 소환사 리디아가 잠든 사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에 회의감을 느낌 암흑기사인 주인공, 그리고 딸을 구하기 위한 현자 테라는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습니다. 이 시퀀스에서 모닥불은 생명력을 회복하고 진행 내용을 저장하는 공간인 동시에 내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이유를 실감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렵고 힘든 과정 속에서 반복적으로 게임오버가 됨에도 매너리즘에 빠져 그만두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힘'을 만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인상적이었던 작품과 게임 속의 장면을 통해 얘기해보았습니다.


실재하는 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어떻게 이것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반복적으로 고민하는 과정을 도와주는 세이브 포인트 (또는 화톳불이나 램프 등불 아래)는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휴일 카페의 따뜻한 조명과 라떼 한잔 마시고 있는 떠들썩한 카페 구석. 이 곳이  ‘내가 살아있음’을 새삼 느끼게해주고 다시 일상을 시작할 수 있도록 환기시켜주는 훌륭한 세이브 포인트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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