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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가오니 Apr 24. 2022

가장 비싼 게임은 무엇인가요?

Web 3.0 '가치 저장', '소유권 경제' 그리고, 신뢰 비용

며칠 전 동료들과 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할 때였다. 집안 곳곳을 채우고 있는 게임 패키지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동료가 '세가오니님이 가지고 계신 게임 중 가장 비싼 게임은 뭐예요?'라고 물어봤다.


비싼 게임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난 4년간 블록체인과 웹 3.0 관련 업무 도메인 지식을 쌓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평소보다 다른 시각과 관점에서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1.

오래된 게임의 가격을 측정한다는 것 



먼저 비싸다는 의미를 단순히 재화의 가치로 볼 지 유니크함으로 볼 지를 생각했다. 


1) 구매 당시 가격보다 비싼 프리미엄 붙어 중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게임

2) 출하수량이 적고 구할 수 없을 정도로 희소한 게임이고, 추억이 깃든 게임 

3) 위의 두 가지 사항을 모두 충족하는 게임 


짧은 순간 3)에 해당하는 게임이 떠올랐다. 

바로 1985년 발매된 <파이널 져스티스> (Final Justice)였다. 


[십 수년 전 어렵게 입찰 싸움에서 성공한 파이널 져스티스 공장 출하 신품]

1985년 게임으로 당시 발매 정가는 5만 원이 채 안 되는 가격이었지만, 지금은 Priceless이다.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물건을 구할 수가 없고 공급 없이 수요만 있다는 의미**


어린 시절의 추억을 찾아 어른이 되고 나서 이 게임을 찾기를 이십여 년. 십 수년 전 마침내 전 세계의 MSX 게임 컬렉터들과 입찰 경쟁을 벌이고 발매가의 00배에 구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기회를 흘려보냈다면 아마 이 게임 패키지의 공장 출하분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만져보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source = https://www.pricecharting.com/game/jp-msx/final-justice?q=final+justice]

각 종 희귀한 게임들을 사고파는 이베이 등의 고전게임 패키지 판매 가격을 모아서 보여주는 Price Charting에서도 이 게임은 가격을 알 수 없다. 몇 년 동안 패키지 자체를 팔고 산 이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파이널 져스티스> 같은 경우,  10년 전에 상태가 나쁜 알팩이 간혹 해외 옥션 사이트에서 보이면 30-40만 원 (USD 300-400) 정도 했었고, 패키지와 설명서의 상태가 좋지 않은 중고품이 5-60만 원선 (USD 500-600)에서 거래가 되기도 했으나 그것마저도 물건이 시장에서 사라지면서 이제는 가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철저하게 정보의 비대칭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source =https://rarest.org/entertainment/expensive-video-games]

<파이널 져스티스>와 같은 1985년에 데뷔하여 전 세계적 인기로 5000만 개나 팔린 <슈퍼 마리오 브로스>의 공장 출하 신품이 20억 원 (USD 2M)에 팔린 것은 두고두고 많은 게이머에게 회자되고 있다.


엄청나게 팔린 마리오의 패키지 수량이 반증하듯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것이고 그만큼 상태가 좋거나 미개봉품의 수량이 적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따라서, 거래 가격 정보도 많이 있고 2차 거래 시장에서도 인기가 많은 것이다. 

[source = https://en.wikipedia.org/wiki/Compile_(company)]

반면 <파이널 져스티스>는 슈퍼마리오와 달리 지극히 개인적인 내 어린 시절 호기심을 채워준 마이너 한 비디오 게임이었고, 훗날 <뿌요뿌요>의 대성공으로 <파이널 져스티스> 같은 과거 개발 슈팅게임까지 재조명받은 컴파일이라는 회사가 내수용으로만 발매했던 게임이기에 찾는 사람의 수요는 적을 수밖에 없다. 

[source = 트위터에서 파이널 져스티스 개발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가끔 나는 이 게임을 만들어준 개발자에게 어린 시절 추억을 만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트위터에서 얘기를 나누고는 했는데 친절하게 개발 당시의 생각들을 들려주실 때는 게임업계 사람으로서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1980년대 비디오 게임의 역사를 써 내려간 미국과 일본의 전설적인 크리에이터 중 한 명이기 때문에)


그럴수록 이 게임에 대한 내 안의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 이 게임은 정말 내게는 개인적으로 <슈퍼마리오 브로스>와 달리 '그 어떤 것보다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유니크한 게임'인 것이다. 


가끔 이렇게 공개된 SNS를 통해 이 게임에 대한 패키지 사진을 올리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거래를 요청하는 DM이 오곤 했다. 

[내게 컬렉션의 일부를 팔라고 정중? 하게 연락을 자주 하던 이태리 컬렉터]

보통 이런 경우, 외국인 컬렉터는 가격을 먼저 제안(Offer)하게 되는데 1980년대 비디오 게임 패키지는 하나의 골동품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보니 가격이 정말 부르는 게 값이라는 걸 실감하기도 한다.


물론, 나의 게임을 공유하는 SNS에서 이런 DM을 받고 판 적은 없다. 나의 추억과 애정이 담긴 게임을 교류가 없고 신뢰할 수 없는 모르는 사람에게 파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이런 DM으로 판매 제안을 하는 것을 NFT(Non Fungible Token)를 사고파는 마켓플레이스에서는 'Make an offer'라고 한다. 


[source = https://superrare.com/]


그런데, 익명의 SNS에서도 상호 신뢰하기 어려운데 NFT의 마켓플레이스는 어떻게 모르는 사이에 물건의 가치에 대해 인정하고 거래할 수 있는 것일까.


신뢰란 무엇일까.


2.

익명의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


'Trustless' 


 사전적 의미 '믿을 수 없는'이 아니라 무신뢰의 의미이다. 합의된 메커니즘에 따라 이중 지불을 방지하기 위해 분산 원장 기록하는 블록체인의 기본개념을 포함한 단어이기도 하다.



[source=https://www.preethikasireddy.com/post/what-do-we-mean-by-blockchains-are-trustless]


왜 게임 패키지 이야기를 하다 신뢰라는 단어가 내포한 뜻에 대해 블록체인의 개념을 담은 'Trustless'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을까. 


바로 레트로 게임에서의 게임 패키지 가격정보는 정보의 비대칭의 그늘 속에 있기 때문이며,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표준화된 합의 알고리즘을 따르고 모두가 함께 정보를 기록하는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되고 투명한 정보 공개와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있기에 가격에 대해 신뢰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참고할 데이터베이스가 없기에 고전게임의 가격을 신뢰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상당히 높다.


게다가 게임 패키지를 구매한 사람의 소장 이력을 공개하지 않는다. 또한, 이베이(eBay)나 야후! 옥션 (Yahoo! Auction) 등의 고전 게임 패키지가 거래되는 플랫폼에서는 대부분 낙찰 이력 데이터 베이스가 일정기간 후 삭제되기 때문에 보통 고전게임들은 폐쇄적인 커뮤니티 안에서 판매자의 평판에 의존하여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어진다. 마치 예술 재화가 소장 이력 (Provenance)에 따라 가격이 차이가 나듯 어떤 컬렉터가 가지고 있었느냐에 따라 가치가 올라가는 경우처럼 말이다. 가격으로 장난을 치거나 투기성으로 대량 매입해 단기간에 판매하는 리셀러들과 비교해 물건과 가격에 대한 신뢰 비용이 낮기 때문이다. 낮은 신뢰 비용만큼 물건의 가치와 신뢰도는 올라간다. 


이런 소장 이력을 두고 긍정적 이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건의 가치를 이해하고, 해당 분야에 대해 조예가 깊을수록 아끼면서 소장하는 행태가 물건의 가치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쉬운 건 이런 예술 재화의 소장 기록은 어느 곳에서도 드러나지 않고 오로지 폐쇄화된 커뮤니티 안에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신뢰 비용에 대한 측정은 폐쇄적 커뮤니티 안의 교류와 평판(Reputation) 추적 비용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3.

익명의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


'신뢰 비용' 


모든 거래 이력을 볼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합의 알고리즘으로 기록된 블록체인의 'Trustless'개념의 투명한 느낌과 수십 년 전 출하가 완료되어 공급이 수요보다 절대적으로 적은 'Priceless' 속성을 지닌 고전 게임의 중고 거래시장의 탁한 느낌 극명하게 대비가 된다. 


이 대비 속에는 '신뢰 비용'이 숨겨져 있다.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플랫폼적 측면에서 고전게임이 거래되는 eBay 또는 Yahoo! Auction은 신뢰 비용을 줄이는데 실패했다. 개인에게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전가하기 때문이다. 폐쇄적 커뮤니티가 아닌 전 세계 누군지 모르는 익명의 셀러와 거래하는 개개인에게 거래에 드는 정보수집과 평판 추적 등에 대한 비용을 전가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거래비용을 낮춘 플랫폼은 없을까.

[source = https://www.daangn.com/]


당근 마켓이 대표적으로 거래비용을 줄인 플랫폼이다. 이면에는 매너 온도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IT업체가 밀접해있는 판교에서 출발한 당근 마켓은 철저하게 근거리 위주의 로컬 커뮤니티 기반의 거래 플랫폼이기 때문에 매너 온도라는 것이 작동한다. 


이는 동네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이웃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신뢰 비용을 암묵적으로 푸시하는 효과가 느껴진다. 아쉽게도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단점은 로컬 베이스에 국한되어 내가 찾는  희귀한 Priceless 물품들을 발견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는 점이다.


당근 마켓이 로컬 커뮤니티 중심으로 평판 시스템을 넣었지만 거래 물건의 폭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면 글로벌 마켓 플랫폼 중에 시스템적으로 신뢰 비용을 낮춘 대표적 사례가 알리바바이다.  

[source =https://www.alibaba.com/]

알리바바는 신뢰 비용이 꽤 높은 (벽돌이 온다 거나한 괴담이 도는) 중국 e-Commerce 거래에서의 신뢰 비용을 낮추기 위해 에스크로 시스템을 도입했다. 물건을 받은 사람이 승인하지 않으면 판매자에게 물건값이 입금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알리익스프레스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역시나 소장 이력은 물론 희귀한 물건에 대한 거래비용을 개인에게 부과하는 점은 동일하다. 



3.

WEB3.0의 신뢰를 구축하는 '공평성'과 '지속성'


WEB3.0, Fair and Consistent


며칠 전 해외 웹진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내가 15년 전 N사 입사 과제로 작성해야 했던 T게임을 만든 핵심 개발자이자 어린 시절 컴퓨터학원에서 Apple II 게임으로 접한 <울티마>의 세상을 만든 로드 브리티쉬의 귀환 기사와 내용 때문이었다. 


“All we get from people trading items is risk and complaints. [The blockchain] is a way to just clarify the economics in a way that is very fair and consistent between the players who are buying, selling, and trading these virtual assets.” 

(원문: https://massivelyop.com/2022/04/12/richard-garriott-is-building-a-blockchain-mmo-following-the-fai lure-of-shroud-of-the-avatar/ )


[source = https://massivelyop.com/]

온라인 게임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울티마 온라인>을 만든 그가 eBay에서 자신이 만든 게임의 아이템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모든 거래비용과 Risk를 개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을 보고 느꼈던 불합리함을 해결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한 MMORPG 게임을 개발한다고 했다.


그의 대답에는 Web3.0이 추구하는 'Trustless'의 지속가능성과 공평함에 대한 본질적 의도를 담고 있었다. 


업무를 위해 여러 이해관계자들에게 Web 3.0 개념을 설명할 때, 세대를 구분하는 용어가 아니며 Web 2.0 기술 스택과 철학과 공존하며 발전해온 배경을 이야기한다. Web3.0는 블록체인 기술과 만나면서 조작 불가하며 영구적이고, 지속 가능한 신뢰를 향한 고민이 깔려있다는 점말이다. 리처드 개리엇은 그것을 MMORPG 게임에 도입하며 직관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Web3.0에서 무신뢰 네트워크에 대한 지속 가능하며 공평한 신뢰는 도전적인 과제이기도 하며 양자 컴퓨팅 시대의 보안에 대한 연구 또한 계속되고 있기에 완벽하지는 않을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얼마 전 집에서 찍은 <파이널 져스티스> 사진을 꺼내보았다. 

사진에 소유자와 촬영자 등의 정보를 표시하지 않았을 뿐이데 뭔가 허전하다. 내가 언제 구입했고 어느 시점에 촬영된 것인지 별도로 메타데이터를 남겨두지 않는 이상, 또한 그것을 까 보지 않는 이상 이 사진이 누구 것이고 어떤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내가 이 게임에 대한 추억과 애정을 포스팅하며 개발자와 직접 소통한 내용을 올린 블로그 글을 누군가 캡처하여 마치 자신이 개발자와 소통하며 이 Priceless 한 게임을 판다고 올리며 인터넷상에서 사기를 친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이 게임의 가진 가치는 고유하며 공장 출하 신품은 현시점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마치 NFT같은 유니크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위의 사진만 본다면 사전적의미인 '신용할 수 없다'의 'Trustless'가 돼버린 것이다. 만약, 이 사진을 블록체인의 기술을 활용하여 나의 소장과 거래 이력을 남긴다면 어떻게 될까. 개발사는 도산했지만 저작권을 양도받은 회사에게 거래될 때마다 장부를 기록하고 일정 수준의 로열티를 줄 수도 있고, 80년대 내게 꿈과 같은 추억을 안겨준 개발자에게 일정 수익을 배분해줄 수도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고, 현재 소유한 나에 대한 이력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사진 도용을 통한 사기를 막아줄 수 있다.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지속 가능한 Web3.0의 기술을 도입한다면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나아가 '가장 비싼 게임은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에 대해 누구나 믿을 수 있는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NFT 커뮤니티가 가진 발행자와 홀더 사이의 밀도 높은 인터랙션도 얼핏 보기에는 폐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소유권에 대한 신뢰 비용을 낮추는 'Trustless' 저변에 깔려있다는 점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가장 비싼 게임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를 생각하면서 든 생각들 


20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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