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명하던 곳
안나 카리나가 죽은 날이었어. 나는 비통한 심정으로 세르쥬 갱스부르가 작곡한 앨범 <안나> 중 '태양 바로 아래'라는 곡을 줄창 들으며 트빌리시 시내를 종횡무진했어. 지하상가에서 기다랗고 가는 붉은 향초를 몇 뭉치나 사기도 했다. 정처 없이 걷는데 소년 떼가 언덕에서 우르르 내려오며 나를 응시해. 검게 분장했지만 뽀얀 속살을 한 소년들. 그들 내려오던 언덕 위에 무언가 있을 것 같아 방향을 틀어 그리 올랐다. 언덕배기 위에는 양초 녹듯 괴이하게 뒤틀린 플라스틱 대형 쓰레기통이 단출하게 하나, 그 뒤로 우뚝 솟은 교회가 보여.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도 한참 더 등반해야 비로소 산 정상에 닿을 수 있잖아. 난 십자가를 눈에 품고도 그 경사진 마을을 꽤 오래 걸어 올라야 했어. 매캐한 거리가 가루처럼 날렸다.
오랜 산보 후 도달한 교회 정문에는 초등학교 앞 문방구 같은 조촐한 카페테리아가 있었어. 단체 견학 나온 아이들이 인솔자의 말을 듣지 않고 무단이탈하며 내게 말을 걸어와. 그들이 계산한 오늘 풍경에 나는 없었다고 말하는 것 같아. 안나가 없는 오늘 풍경은 내 계산에도 없었노라고 나는 물끄러미 답해. 난 참 그럴 때 졸렬해진 기분이 든다. 결국 병아리콩 같은 아이들이랑 닭벼슬 같은 어른들과 한 조가 되어 높고 널따란 석조 계단을 함께 올랐어. 닭벼슬들은 그 걸음, 무진장 심드렁해 보였다. 본당에 들어서자 세이지 향이 공간을 가득 메워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었어. 정신이 아득해져 바닥만 보고 걷다가 빼꼼히 열린 문틈 앞에서 걸음을 멈췄어. 고개 들어 그 안을 몰래 들여다보니 늙수레한 기술자가 비계 위에 올라 타서는 천장 벽화를 복원하고 있는 거야. 푸른 헤일로를 세밀히 덧질 하는데, 그게 예수의 유난히 붉은 수염과 쨍한 대비를 이루더라. 기술자는 별안간에 인기척을 느끼고 나와 눈이 마주쳤어. 당황한 나는 뒷걸음질 치다 복도를 달리던 한 사내와 부딪히고 말았지. 그는 양복 재킷을 휘날리며 복도 끝의 문으로 사라지고 나는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를 좇아갔어.
그는 빠른 걸음으로 대리석 계단을 뛰어 내려갔어. 타다다다다닥-. 나는 돌림노래처럼 그와 같은 리듬으로, 그러나 한두 마디 뒤늦게 그의 꽁무니를 따랐어. 타다다다다닥-. 기계적 운동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몇 층이나 내려왔는지도 알 수 없었어. 막다른 지하까지 내려오니 무거운 철문이 스르르 닫히고 있었어. 냉기가 철문의 움직임을 타고 진입해 공기가 돌연 으스스 해졌을 때, 사실 왔던 길로 돌아갈까 고민도 했지. 철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숨을 고르며 생각했지만 난 도저히 양복 입은 사내의 다급함, 그 원천을 모른 채 돌아갈 수 없었어. 문고리를 힘차게 틀어 냉기의 고향에 예의도 없이 난입했다. 그가 보였어. 그는 둥그런 무리를 향해 이제는 저벅저벅 걸어가. 그의 뒤를 살금살금 따라가는데 들려오는 성가의 음량이 정비례로 올라. 사람들은 반원의 모양을 그리며 질서 없이 서 있었고 그 모양새가 꼭 개싸움을 보는 아르헨티나의 날 선 구경꾼들 같았어. 반원의 가운데에는 다섯 명쯤 되는 중년들이 사제와 함께 서 있더라. 사제야말로 오늘 목격한 모든 인물 중 가장 닭벼슬의 표본에 속하는 유형이라고 생각했지. 성가대원들은 각자의 파트를 아예 성대에 달고 태어난 사람들처럼 완벽하게 음정을 지키며 신비로운 화음을 뽑아내고 있었어. 그들 앞에는 기다랗고 가는 붉은 향초가 타고 있었다. 몇 백 개나. 두건 착실히 두른 교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관찰하다, 문득 양복 사내의 존재가 떠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그의 형상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