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명하던 곳
스즈키 세이준의 <육체의 문> 첫 씬에 흐르는 곡을 혹시 아니? ‘호소노 나가레니’, 그러니까 ‘별의 흐름에’라는 노래야. 후지 케이코가 불렀는데 그녀가 우타다 히카루의 엄마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어. 언젠가 그 영화 속 매음굴을 연상시키던 바에 한 프랑스인 촬영 기사와 앉아 밤새도록 스즈키 세이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지. 베를린 베딩 어느 교차로 구석의 이층짜리 바였어.
술을 주문하려면 비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는데 수십 번 그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끝내 세이준이라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이상하고 대단한 스즈키’로 그를 지칭했어. 밤이 새도록 말야. 대학에 막 입학해 서교동에 살 때였어. 스트레인지 프룻이라는 동네 바 출입문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스즈키 세이준을 처음 알았거든. 스즈키라는 성씨를 가진 감독이 다 있구나 싶었어. 속이 빈 철강과 CMYK의 사이언 같은 색을 연상시키는 성이라고 생각했다.
아무쪼록 그 촬영 기사와는 존 워터스의 <핑크 플라밍고스>로 화제를 옮겨 이야기를 마쳤고, 그날 꿈에는 내 집주인 바이텔만 씨가 ‘플라밍고’라는 바를 열어 운영하고 있더라. 꿈 속 세계에서는 '플라밍고어'라는 음악 장르가 존재했는데, 북적이던 그 바는 플라밍고어계의 유일무이한 명소와 다름없는 곳이었다. 플라밍고 속 사교계와 낯선 베갯잇의 촉감 사이에 놓여, 도통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얕은 수면을 한 월요일. 육체의 문은 열리고 금세 또 닫혔어. 애수 따윈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