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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늘이 Feb 23. 2024

누가 대신 써줬으면

영화 에세이 <더 와이프>



글을 쓴다. 거의 매일 쓰고 있다.

글 쓰는 게 즐거워서? 아니다. 절대 아니다.

글쓰기는 고통이다. 그런데도 이 고통을 자처한다. 

그러다 글이 드럽게 안 써질 때가 있다. 안 써져도 그렇게 안 써질까. 그때의 고통이란, 장이 꼬이고 멀쩡한 맹장이 터질 것 같다. 그럴 때면 누군가 대신 써 줬으면, 적절한 단어를 찾아 기막힌 문장으로 내 대신 써주면 얼마나 좋을까. 고통스럽지 않으면서도 단 열매를 얻을 수 있게 말이다. 이런 달콤한 상상이 실현된 영화가 있다. 

<더 와이프>




             




작가 지망생 조안은 매일 8시간씩 소설을 쓴다. 그녀가 쓴 글은 남편 조셉 이름으로 출판되었고, 이후 남편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둘의 비밀을 알 리 없는 세상 사람들은 조셉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고. 주변의 쏟아지는 관심과 축하에 취한 조셉은 마치 자신이 쓴 것처럼 행동한다. 남편을 위해 헌신한 조안은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심적인 변화를 겪는다.






이건 내 문장, 내 고통.
당신이 저지른 망나니 짓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며 홀로 보낸 시간들이라고요.



이 영화는 대필한 아내의 억울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각도로 봤을 때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지만 사랑을 택한 조안과 재능은 없지만 유능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조셉의 욕망의 끝을 보여주는 영화로 볼 수 있다.


조안은 유부남이면서 문학교수인 조셉을 사랑했다. 둘의 불륜으로 조셉은 교수직에서 파직되고 이혼을 당해 좌절한다. 조안의 권유로 소설을 쓰지만 그의 작품은 허접하다. 재능이 없다. 조안은 사랑보다 자신의 유능함과 명성을 원하는 조셉을 위해 그의 소설을 수정해 주게 되고 이후 조셉은 조안 덕분에 유명한 소설가가가 되고 노벨문학상 수상을 앞두고 있다. 


조안이 글을 쓴 것은 사랑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 책이 유명해질수록 조셉의 마음속 에는 무능함과 열등감만 커져갔다.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조셉은 잦은 외도를 하게 되고 조안은 상처를 문학으로 승화시키며 가정을 지켜낸다.







영화에서 조셉이 과자나 음식을 먹는 장면이 많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문학 이야기는 하지 않고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이야기만 한다. 잦은 외도와 음식을 탐하는 것은 조셉의 공허함을 표현한 것이다. 거짓된 마음이 인간에게는 커다란 짐이 된다. 조안 덕분에 성공은 했지만 자신이 이룬 성공이 아니기에 성공의 크기만큼 공허함이 커져간다. 그에 반해 조안은 처음에는 조셉의 사랑을 얻기 위해 글을 썼고, 조셉의 외도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글을 쓰면서 성장하게 된다. 둘의 잘못된 선택을 되돌리려고 결심하는 것도 조안이다.


그의 영혼이 천천히 쓰러진다.
이 세상에 힘없이 내리는
눈소리를 들으며

눈은 힘없이
마치 지금이 마지막 하강인 듯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떨어진다.


이 시는 조셉이 조안에게 들려준 것이다. 조셉이 자주 여자들에게 작업 걸 때 들려준 시이기도 하다.

영화 마지막에 죽은 조셉을 보고 있는 조안을 비추던 카메라 시선은 서서히 옮겨 창 밖을 보여준다.

창 밖에는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시에서 처럼 죽어 있는 조셉 위로 눈이 내리는 것 같다. 이것은 거짓의 삶을 살았던 조셉의 영혼이 스러져 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작가는 책을 내려고 쓰는 게 아니라 꼭 말해야만 하는 다급하고도
사적인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죠. 작가는 글을 써야 합니다.
숨을 쉬어야 하듯 계속 써나가야만 하죠. 거절 편지가 셀 수없이 쌓이고, 부모 아내가 돈을 벌어 오라며 잔소리를 해도 작가는 써야 합니다.
쓰지 않으면 영혼이 굶주리거든요.





누가 대신 써줬으면 하는 달콤한 상상의 끝은 자기 소멸이다. 잘 쓰고 싶은 욕망, 성공하고 싶은 헛된 욕망이 커져 달콤한 상상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화를 통해 헛된 욕망의 끝을 봤기에 욕망의 부추김에 내몰리기 보다 더디지만 꾸준하게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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