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드립니다.

콘셉트에 잡아먹힌 ESTJ 사장

by 세희호

"이곳에서의 커피와 디저트가 오늘의 행운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카페의 모토가 되는 멘트다.


어쩌다 보니 카페의 콘셉트를 행운으로 정하게 되었고,

(카페 이름과 콘셉트를 정하게 된 매우 유치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언젠가 풀게 될지도..?)

카페의 로고, 메뉴, 인테리어, 스토리텔링, 손님들께 드리는 도장 쿠폰..

카페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행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 카페의 정체성으로 만들고자 했던 키포인트였다.


그리고 내 MBTI는 ESTJ다.


갑자기 웬 MBTI냐고?


이런 훈훈하고 동화 같은 콘셉트는 원래의 나에겐 맞지 않는다는 걸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설명인 것 같아서.

엄격한 관리자로 불리는 ESTJ는 소위 말하는 현실주의자, 꼰대..(참고로, 난 내 MBTI가 좋다.)

논리와 사실이 제일 중요한 그런 성격이다.

N(직관형), F(감정형)와는 거리가 매우 먼 내가 손님들의 행운을 바라는 이런 따스한 카페의 사장이라니.


처음엔 콘셉트에 맞춰 카페를 꾸려 가는 게 즐거웠고, 개업 후에는 종종 남겨주시는 따뜻한 리뷰에 뿌듯했다.

그러다 문득, 본래 내 성격과는 다른 이 콘셉트를 유지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그렇게 따뜻한 사람 아닌데..

내 삶이 불행한지 행복한 지조차 모르는 내가 남들의 행운을 바라다니.


철저한 개인주의와 현실주의인 내가 이런 하루하루를 보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그렇게 '행운'이라는 콘셉트 아래서 '행운을 드리는' 사장이 되어 하루하루를 보내고,

매일 어떻게 진심을 전달할지 고민하며 손님의 리뷰에 답글을 달고, SNS 게시물을 올리다 보니

점점 콘셉트에 잡아먹혀 조금은 따스한 인간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인 일로 힘들던 와중에 우리 디저트로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는 손님의 글에 나 역시 소소한 행복과 힘을 얻게 되었고, 여기저기 클로버로 꾸민 인테리어를 알아보고 이야기 나누실 때 왠지 모를 성취감을 느꼈다.


카페를 오픈하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착하게 살자. 나는 사장이니까."

"우리 카페엔 행운이 가득해야 하니까"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이런 마음 가짐으로 일을 하다 보면,

왠지 조금은 더 나은 인간이 되어 있을 것만 같고

손님들과 함께 나에게도 행운이 찾아올 것만 같은

그런 우스운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행운'이라는 콘셉트에 잡아먹혀

오늘도 이름 모를 누군가의 행운과 행복을 바라며,

이 마음을 슬쩍 담아 커피와 디저트를 내어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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