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추억이자 할머니에겐 인생이 담긴 순대국
결론부터 말하자면 순대국에 순대가 정말 없다.
가게에 들어서기 전부터 고민에 빠진다.
테이블 4개가 전부인 식당에 할머니 혼자 천천히 손님을 맞이한다.
웨이팅을 하면서 단골인듯한 부부가 하는 말이 바로 옆에서 에어팟 왼쪽 귀 빈틈 사이로 들린다.
"예전에 없던 젊은 아씨들도 여길 많이 오네? 여기 원래 아저씨들만 오던 곳인데 말이야"
내 생각엔 최자로드에 나온 뒤부터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다 보니 그런 듯하다. 나도 그걸 보고 왔으니까..
바로 내 뒤에 기다리던 아저씨는 닫혀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서 할머니한테 90도 인사를 꾸벅하고 나온다.
"할매 나 왔어요. 좀 오래 걸리나?"
할머니는
"아오 이제 사람이 안 반가워.. 난 나이 먹어서 돈도 명예도 인정도 필요 없어"
나는 이 말을 듣고 들어가기 전부터 괜히 할머니한테 미안한 감정이 생겼다.
한참을 기다리고 들어가서 보니 손님들이 분주하게 각자 알아서 상을 닦고 자기 반찬을 알아서 가져간다.
드디어 순대국이 나온다.
순대는 하나도 없고 머릿고기와 부속물들이 가득한 돼지국밥 비스무리하다.
밥은 국안에 토렴 되어 나온다. 할머니가 직접 들깨가루를 가득 두 수저 넣고 청양고추 4개를 가져와서 거침없이 가위로 잘라 넣어주신다. 다 섞고 뚝배기 한수저를 들이켠다.
!! 엄청나게 강렬하고 매콤한 맛이다!!
매운맛에 놀라 가만히 벙쩌있다가 할머니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신다. 그러곤
"여기 처음 온 거 아니지?"
"아니요 처음이에요!"
갑자기 머릿고기 세 점을 나한테만 가져다주신다.
뭐 어차피 모자를 푹 눌러쓰고 거무칙칙하게 입고 와서 다시와도 알아봐 주실진 모르겠지만 할머니의 작은 관심이 되게 따스하게 느껴진다.
그러곤 다정한 목소리로
"부족하면 말해 더 줄게"
먹는 도중에도 계속 물어보신다.
아까 그 부부손님 중 남편인 사람이 테이블에서 밥을 먹다가 큰소리로
"할매 힘들지 않아? 그냥 우리가 죽치고 앉아있을게 그때까지 할매 쉬어. 밖에 기다리는 사람 기다리다 지치면 가것지 뭐 하하"
할머니도 받아치신다.
"그래 기다리다 지치면 가는 거야.. “
한참의 정적이 흐른다.
할머니의 그 한마디에는 세월이 담겨있었다.
나도 그 말을 듣자마자 짧은 순간에 생각을 많아졌다.
할머니는 이어서
“근데 그중에는 멀리서 애타게 온사람도 있을 거야. 미안해서 그럼 어째.. 줘야지 고마운데.."
테이블 4개밖에 안 되는 좁은 식당 안에서 두 분의 대화가 의도치 않게 공유되지만 매우 정겹게 들려 나도 모르게 그 대화를 경청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말은 그렇게 힘들다 하시면서 오는 손님들에게 다 관심 가져주고 대화를 계속하신다.
부부손님이 빨리 먹고 나간다. 말은 오래 있겠다 해놓고 나보다 훨씬 빨리나 간다.
남편인 사람이
"할매 내가 마누라 잠깐만 빌려줄게 좀 쉬고 있어"
할머니는
"그냥 며칠 빌려주면 안 되냐?"
그렇게 말장난을 하고 부부는 나간다.
내가 계산할 때는 만원을 주고 뭔가 미안한 마음에 거스름돈 2000원 그냥 가지시라고 했다.
그러더니 허겁지겁 내 손을 잡으면서
"아니야 진짜 아니야 그냥 다음에 또와아"
김수미배우님의 목소리와 비슷하면서도 좀 더 낮고 느린 할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가게를 나오니 알지 모를 긴 여운이 남는다.
다시 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성북천을 걸으며 고민을 해본다.
<할머니의 인생이 담긴 순대국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