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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02.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자동차 여행기#1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코로나로 일 년 가까이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언제 다시 전처럼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100일간의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여행기를 꼭 완성하겠노라고 2년 가까이 주문처럼 외우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첫째 점점 그때의 감동이 희미해지고 있다. 누군가 여행책은 그 도시를 떠난 후에 써야 한다고 했다. 아마도 그 장소에 있을 때는 감동에 너무 휩싸여 객관적으로 쓰기 어렵기 때문에 해주는 충고였으리라. 그렇다 하더라도 그 감동이 너무 희미해지면 책을 쓰고 싶은 동기마저 완전히 사라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둘째 기억력이 쇠퇴하고 있다. 여행 중에 써둔 일기가 있긴 하지만,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을 바탕으로 좀 더 생동감 있게 기록하고 싶다. 매번 떠오르는 추억들이 혹시나 사라질까 봐 일부러 기억하려고 애쓰곤 하는데, 차라리 머릿속에 있는 기억마저 모두 기록해두고 안심하고 싶다. 셋째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기록해두고 싶다. 여행을 할 때도 늘 여행이 이루어진 여건에 감사했다. 그런데 요즘 다음 여행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여행 당시의 감사와 기쁨을 공식적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거창할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원하는 일을 미래 언젠가로 미루지 말자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나는 즉흥적이면서도 겁이 많고, 예민하면서도 덜렁대고, 부지런할 때도 있으나 한없이 일을 미루기도 하는 사람이다. 내 나이가 마흔 중반을 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강철 체력까지는 아니지만, 부모님이 물려주신 튼튼한 골격 덕에 대체로 건강한 편이다. 아이들은 두 명, 하나는 너무 외롭고, 셋은 관광지에 가서 작은 보트를 빌리기에 애매한 숫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래된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의 사십여 년의 삶은 낮은 자존감, 정체를 알 수 없는 우울감과 또 때때로 대책 없는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좌충우돌 사업자, 게으른 학생을 참지 못하는 성마른 영어 강사쯤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을 때마다 나는 짐을 싸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용한 점쟁이 었던 친할머니는 내가 사는 동안 비행기를 많이 탈거라고 예언하셨다. 그만큼 속이 뒤집어질 일이 많다는 의미인지 돈이 많아 여행을 많이 할 수 있을 거라는 축복의 예언인지 알 수는 없다. 어쨌든 우리 집안을 통틀어 국내선 포함 비행 횟수가 가장 많은 사람이 되었으니, 정말 용한 할머니셨는가 보다. 걱정을 미리 사서 하는 스타일인데, 어쩌다 보니 내 앞에 놓인 현실이 두려워지고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보란 듯이 여행을 떠났다. 적어도 캐리어를 끌고 탑승구로 떠나는 뒷모습만큼은 그들도 부러워하겠지 하는 허영심도 없지 않았다. 도피하듯 낯선 곳으로 떠나면 맨땅에 헤딩하게 되었다. 완전히 낯선 세계에 자신을 몰아넣고 극기훈련과 같은 여행을 하곤 했다. 그러면 나의 이 오래 묵은  우울감과 무력감이 조금이나마 벗겨질까 기대했다. 20대의 유럽 배낭여행, 취업 후 수차례 미국, 유럽 출장, 산티아고 순례길 등의 적지 않은 여행 경험이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인 아이 둘을 데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계획하고 운전하는 부모이자 여행 가이드가 되는 여행은 나 혼자 여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여행이다.

초등학교 아이들 두 명과 엄마인 나 이렇게 셋이서 유럽을 자동차로 여행을 시행하기까지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다. 비용과 시간, 모든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기를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두 가지 이유일 테지. 그리고 나에게는 걱정 많고 겁이 많은 나 자신이라는 커다란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보고 싶었다. 누군가는 유럽은 아이들이 더 커서 역사를 이해할 때 가는 것이 좋다고도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너무 순수하고 예쁜 초등학생인 아이들과 동화 속 배경 같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많은 지식이 도움이 될만한 여행은 나중에 아이들이 각자의 목표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본전 생각을 해서 하나라도 입시와 관련된 지식 쌓기를 위한 여행이 아니었다.


아이들과 함께 라벤더가 만발한 프로방스에서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싶었다.  만년설이 덮인 몽블랑을 바라보며 트레킹을 하고,  2000년 로마 야외극장의 여름밤에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열리는 오페라를 꼭 한번 체험하고 싶었다. 딸아이가 동경하는 런던의 붐비는 시내와 아들이 좋아할 만한 중세의 성 속을, 아이들의 아직 작은 촉촉한 손을 잡고 걷고 싶었다. 아직은 전설을 믿고 동화가 사실이었을 수도 있다고 믿을 나이에 가고 싶었다. 비가 퍼붓는 영국 어느 오두막 집에 담요를 덮고 앉아서 핫쵸코를 아이들과 마시고, 비가 그치면 양 떼들을 쫓아다니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햇빛이 쏟아지는 야외 카페에서 나는 맥주를 아이들은 젤라토를 먹으며 인생은 행복하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세포 속에 새겨주고 싶었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공간 속에서 딱 100일만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본격적으로 자동차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동안 세 번의 감정 변화를 느꼈다. 여행을 결심하고 목적지를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로 확정한 초기에는 말 그대로 꿈이 실현되는 듯 심장이 두근두근 하고, 기대감과 설렘으로 흥분되었다. 방문할 나라와 도시를 정하고, 자동차 렌트, 숙소 예약 등을 하나씩 진행하고 비용을 지불하면서 든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세세하게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약 2개월가량 매일 여행 준비 프로젝트를 실행한 끝에, 그럴싸한 여행 일정표를 완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종 단계인 출발하기 일주일 전. 그때부터 나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그 불안과 공포는 비행기가 하늘에 뜬 후에 겨우 가라앉았는데 대략 이런 감정이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지? 이제는 되돌릴 수도 없잖아. 마치 롤러코스트 맨 앞자리에 앉아 정상에 올라서 90도 수직 낙하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네이버의 유명한 유럽 자동차 여행 카페와 수많은 블로그, 프랑스와 영국에 관한 역사책과 여행 가이드 책을 많이 참고하였다. 여러 루트를 통해서 다양한 정보를 얻으면서, 나처럼 엄마 혼자서 어린이들과 유럽이나 다른 나라를 자동차로 여행한 경우가 있는지 열심히 찾아보았다. 용기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아마 분명히 실행한 분이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나마 엄마 둘과 어린이 세 명이 유럽 자동차 여행을 한 경우는 발견했다.

나 혼자서 그 모든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무모한 짓이 아닐까? 괜히 어린이들을 위험에 몰아넣는 것은 아닐까? 나의 운전실력으로 유럽의 낯선 도로를 잘 다닐 수 있을까? 혹시 강도를 만나서 모든 것을 빼앗기면 어쩌지? 혹시 지갑을 뺏기지 않으려다 칼에 찔리거나 하면 어저지? 네비가 막다른 절벽 끝으로 인도하면 어쩌지? 도로 한복판에서 타이어가 펑크 나면 어쩌지? 고속도로 진입로를 착각해 역주행하면 어쩌지? 내가 예약한 숙소에 내 이름으로 예약 기록이 없다고 하면 어쩌지? 아이들이 전염병에 걸리거나 큰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쩌지? 혹시 내가 각종 공연과 숙소 등의 예약일을 혼동했으면 어쩌지? 렌터카의 트렁크가 너무 작으면 어쩌지? 내가 피곤하고 당황해서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면 어쩌지?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포기해버리면 어쩌지?

나의 걱정과 고민은 이렇게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런 모든 고민을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날짜별 예약 사항을 여러 번 확인하고, 준비물을 꼼꼼하게 챙기는 방법 외에는 없다.
나처럼 걱정이 많고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더 철저히 계획하고 준비하면 그나마 조금 더 자신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적다 보니 앞으로의 삶에 대한 불안과 염려 역시 하나씩 목록을 적어서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과 엄마 혼자 여행하는 것은 양날의 칼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는 엄마의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보람된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쉽게 지치기도 하고 또 이 곳까지 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드문 기회인지 매 순간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엄마가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여행은 아이들에게도 엄마에게도 오히려 불쾌한 경험으로 남을 수도 있다. 엄마는 종종 아이들의 반응, 특히 비가 오거나 춥거나 날씨가 좋지 않아도, 너무 해가 쨍쨍한 더운 날에도 아이들이 무언가에 감동받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엄마는 그런 모습에 실망하게 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너무나 흔한 말. 여행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돈 주고 사서 고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정말 그렇다. 사서 고생한다.

이제 돌아와 지난 여행을 돌아보며 내린 결론부터 말하고 싶다.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자!”

코로나가 종식되고, 다시 한번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시절이 온다면, 나는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떠날 것이다. 짐을 싸고 다시 머리가 터지도록 세세한 일정을 짜고, 설렘 반 긴장 반인 상태로 비행기를 탈것이다. 아이들도 이제는 쑥 자라서 좀 더 많은 모험을 하고, 좀 더 높은 산에 좀 더 높은 계곡에 도전해볼 수 있겠지? 그동안 책에서 배운 지식을 현장에서 확인해볼 수 있겠지? 그때는 또 다른 이유들로 여행을 갈 핑계를 백개쯤 찾을 테지.

첫날 Nice의 숙소에서 바라본 시장과 지중해와 야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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