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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21.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 #19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19, 6월 30일 라스코 동굴 (LASCAUX II) , 샤를라 라 카네다(Sarlat-la-Canéda)




밤새 비가 내렸다. 아이들이 푹 잠이 든 새벽 2시쯤 한두 방울 떨어지더니, 온 땅을 다 적시도록 비가 내렸다. 피곤해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제야 우리 텐트가 기본적인 방수 외에는  비에 대한 대비를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비몽사몽으로 비가 텐트 안으로 들어오고, 부랴 부랴 차 안으로 대피하는 상황을 그려보았다. 동시에 왜 비가 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나 자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잠이 들었나 보다. 아침에 텐트 밖으로 나오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하늘이 또 파랗다. 풀잎도 나뭇잎도 더 싱그러워지고 공기가 달콤하다. 다행이다. 하하 나처럼 이렇게 엉성한 여행자가 또 있을까?

이런 숲속을 운전할 때 정말 좋다.



오늘은 오전 11시에 라스코 동굴 투어를 예약해 둔 날이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짐을 정리하고 출발했다. 1시간 30분 정도 가야 하기 때문에 늦어도 9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사실 초행길은 구글맵에서 알려주는 예상 시간보다 최소 30분은 일찍 출발해야 마음이 놓인다. 가서 기다리더라도, 일찍 출발해야 가는 길도 즐기면서 편안하게 갈 수 있다. 중간에 숲을 지나기도 하고, 시골 도로라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열심히 갔는데도 이미 11시 투어는 참여할 수 없을 만큼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다행히 안내 데스트에서 한 시간 뒤 투어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변경해주었다.

기다리며 박물관 내 카페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와 크레페를 먹었다. 악센트로 보아 영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와 2살,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식구가 옆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두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아이들을 자제시키느라 아빠는 한시도 편안히 있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처럼 습도는 높지 않지만 오전 11시 30분의 태양은 이미 작렬하고 있었다. 음성은 낮았지만 아빠의 인내심이 곧 폭발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불행히도 우리는 이 가족과 함께 투어를 하게 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카페의 음료와 디저트도 훌륭하다.

   

     






1940 년 9 월 Marcel Ravidat라는 청년이 Lascaux 산비탈에서 구멍을 발견하고 4 일 후 다른 친구들과 함께 동굴로 들어가 수십 개의 벽화를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 그들이 벽화를 발견했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15000년 동안 땅속에서 잠자고 있던 환상적인 그림들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이 상상이 된다. 이 친구들은 이 발견을 당분간 자기들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약속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이 다 알아버리게 되었다. 비밀이란 역시 지켜지기 어려운 것.


동굴이 처음 발견된 직후 연구하는 사람들


     


일반 관광객들은 원래 동굴로부터 수백 미터 떨어진  LASCAUX II를 방문할 수 있다. 이곳은 애초에 발견된 동굴의 벽화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다. 원래 동굴은 이산화탄소 수치가 높아지는 등 내부 환경이 파괴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더 이상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라스코 동굴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LASCAUX II 안으로 들어가자 기온은 13도로 밖의 33도와 무려 20도 차이가 났다. 오래전 교과서에서 배운 라스코 동굴 벽화를 실제로 보게 되다니 사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들뜬상태이다.  10여 명이 그룹을 지어 가이드를 따라 동굴로 들어간다.



      

마치 지금의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이는 말의 모습을 그려놓았다.

       

복제 벽화를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식 가이드가 인솔하는 투어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전문가들이 최대한 원본 벽화를 그렸던 재료를 사용하여 정교하게 그려놓은 제2의 유물인 셈이다.   복제하여 만든 그림 역시 손상될 것을 우려하여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다. 여기에 올린 사진은 전시실에서 촬영한 것이다.
    


      

전시실에서만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동굴 입구부터 들소와 말과 아직도 해독하지 못한 여러 가지 기호들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을 그린 주인공은 2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이다.  미네랄 원료로 검은색, 노란색, 빨간색, 보라색으로 그렸다고 한다. 크고 작은 들소와 말, 사슴 등을 염료를 붓으로, 손가락으로, 혹은 불어서, 동물의 가죽에  묻히는 등 다양한 기법을 동원하여 높은 천장까지 의도적으로 짜임새 있게 그렸다. 식물이나 나무는 그리지 않고 주로 동물을 그리거나 새겨 넣었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벽화를 그렸다.


벽화를 그릴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들



전문가들은 이 그림들이 몇 세기에 걸쳐서, 여러 세대에 걸쳐서 그려졌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탄소로 연도를 추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 역시 불확실한 것이라고 한다. 동굴에는 1000여 점의 정교하게 묘사한 동물 그림이 있다. 그런데 이 유일한 사람의 모습은 동물들에 비해 매우 단순하게 그렸다. 또 원래 라스코 동굴에서는 7미터 좁은 샤프트 아래에 그려져 있다는데, 산소가 부족하여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동물들에 비해 단순하게 그린 인간의 모습


유물 복원 전문가들이 많은 프랑스이기에 이렇게 세심하고 정교하게 재현했으리라. 지금 어떤 화가의 그림에도 뒤처지지 않는 실력으로, 자연에 대한 선사시대 인간들의 태도를 잠시 엿볼 수 있는 환상적인 곳이다.  우리의 아주 오랜 조상과 시간을 초월하여 대화를 하는 기분이다.

가이드가 말해주는 내용 중 알기 쉽고 중요한 내용을 기억해두었다가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 아들의 귀에 조용히 전달해주었다. 그렇다고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시킬걸 하는 후회 따위는 하지 않기로 하자. 하하하.

동굴 밖에서 나오면 전시실이 있는데, 이곳 역시 각종 현대적인 매체들을 이용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관람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많은 노력을 하였다. 별도의 방에서는 계속해서 관련 영상을 보여 주었다. 직원들도 여러 명이 방문객들 가까이에서 대기하며 질문에 친절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엄청난 보물을 가지고 그것을 잘 활용하는 그들이 진심으로 부러웠던 곳이다.


    

이해하기 쉽게 자료를 잘 정리해둔 전시실


    

그늘이 하나도 없는 땡볕 아래에 야외에 주차할 수밖에 없어서, 관람을 끝나고 차에 돌아오니 실내 온도가 무려 4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토요 장터가 열린다는 30분 거리의 샤를라 라 카네다(Sarlat-la-Canéda) 마을로 이동했다.

라스코 동굴 근처 몽티냑에서 벽화에 그려진 소와 비슷한 소를 볼 수 있다.



     






평지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이 마을 역시 14세기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매력적인 곳이었다. 평지에 위치한 만큼 길도 넓고 광장도 넓었다. 큰 부담 없이 들른 마을이었다. 토요 장터는 이미 오후가 되어 철수하는 분위기였다. 장이 서는 길가의 작은 상가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동네를 슬슬 걸어 다녔다. 여름에는 해가 길어서인지 장은 아침 일찍 시작되고  오후 3시쯤이 되면 철수한다.  활기차고 아름다운 마을에는 사람들도 많고 볼거리가 많이 있었다.



    

활기찬 마을, 카페에서는 월드컵 본선 축구 경기를 보여주고 있다.





한창 월드컵 본선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카페마다 식당마다 경쟁적으로 프랑스 삼색기를 걸어 분위기를 띄우고, 커다란 모니터를 설치하고 경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국의 경기를 열성적으로 응원했고 모두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맥주는 엄청나게 잘 팔리겠군. 음주 운전들 조심하시길.


  





   
커다란 성당 옆 높은 담장 아래에선, 마술사가 공연이 한창이었다. 우리도 피곤한 다리를 쉴 겸 관람객 사이에 자리를 잡고 바닥에 앉았다. 마술사가 아들을 불러 자기 옆에 세우고 동전이 사라지게 한 후 아들 티셔츠 속에서 찾아낸다. 아직 순수한 아이는 마냥 신기해한다. 마술사의 무대 앞에 고만고만한 십 대 아이들이 10명도 안되게 앉아 있었다. 축구 경기 때문에 이분 오늘 수입이 별로 시원찮을 것 같아 안타깝다.
   

마술쇼에 참가하여 기쁜 아들과 어린 관객들, 아저씨 오늘 수입이 걱정된다.
나른한 오후의 성당 뒷골목

   



   





삼층 건물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을 방문했다. 관람객은 우리말 고는 없었다. 일층에는 온갖 골동품과 박제한 동물들, 벽난로와 주방에서 쓰는 갖가지 오래된 물건을 전시하고 있다. 이층에는 귀족이 사용했을법한 침대와 패브릭들, 오래된 책들이 가득 찬 책장 등이 있었다. 가끔 마네킹이 사람처럼 서 있어서 섬찟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먼저 발견한 신기한 물건들이 있으면 경쟁하듯 엄마를 불러서 보여준다. 이런 사설 박물관이 또 얼마나 작지만 소소한 매력이 있는지,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집안에서 밖을 바라보니, 아늑하고 아름다운 돌로 만든 길과 집들이 얼마나 예쁘고 정답다. 집안을 다 둘러보고 나오려니, 잠시 현실 세계와 멀린 떨어진 어떤 곳에 다녀온 듯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도 재미있었다고 만족해하니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박물관 안에서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다.



   




아직 공기는 열기가 가득하지만 해가 부드러워질 무렵 캠핑장으로 향했다. 넓은 자연 국립공원 지대라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고판도 없고 강과 계곡 낮은 절벽 사이로 수많은 성과 오래된 마을이 보존되어 있다. 낮은 구릉과 나지막한 산길은 포장이 잘 된 왕복 2차선의 도로가 구비구비 이어진다. 벌써 수확이 끝난 밀밭 위에는 밀짚을 둥그렇게 말아 놓은 더미들이 흩어져 있고, 간혹 해바라기 밭과 또 옥수수와 같은 농작물 밭이 이어진다. 그림의 풍경 속으로 자꾸만 자꾸만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아침에는 신선한 공기와 막 시작된 더워, 저녁 7시 무렵 캠핑장으로 돌아올 때는 여전히 뜨겁지만 부드러워진 태양이 황금빛 들판과 황토색 건물을 더욱 그림처럼 만들어 준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아직 본격적이 휴가철이 아니어서인지 국도에는 차들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간혹 빨리 앞질러 가려는 차가 보이면 적당한 곳에서 양보해주면 나는 또 한참을 맘 편하게 달릴 수 있다. 피곤한지 아들은 곯아떨어지고 딸은 창밖을 감상한다.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간혹 너무 오래 차를 타서 피곤하고 지루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이런 시간들도 아이들에게는 여행 중의 여백이 되어 보고 느낀 것들을 곱씹어보는 시간이길 바라본다.




   



저녁은 캠핑장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기로 하고, 오랜만에 티셔츠와 반바지 대신 흰색과 파란 줄무늬가 있는 면 원피스와 빨간색 스트랩이 있는 샌들을 신고 향수를 살짝 뿌렸다. 아이들도 샤워를 마치고 뽀송뽀송 다시 살아난 얼굴로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야외 테이블은 이미 커플들과 혹은 가족들로 만석이었다. 부드러운 오렌지 빛으로 해가 지고  훈훈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루를 무사히 마친 후에 즐기는 여유가 여행을 완성시키는 마침표 이리라. 커다란 닭다리 한쪽과 알감자, 피자 한판을 시켰다. 나는 시원한 맥주와 아이들은 탄산음료를 마시며 오늘까지의 평온한 일정에 감사했다.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은 반드시 그 훗날에도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살아나고 더 분명하게 기억이 난다. 이 날 저녁이 그런 날이었다.

  

   

배가 불러도 디저트는 항상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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