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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20.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18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18, 6월 29일 꼬흐드 슈흐 씨엘(Cordes-sur-Ciel), 생 시라크 라포피(Saint-Cirq-Lapopie)


안개가 낀 이른 아침에 보면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인다는 꼬흐드 슈흐 씨엘 (Cordes-sur-Ciel). 이왕이면 이른 아침에 가서 혹시 안개 위에 솟아오른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서둘러 출발했다.  하지만 여행 이후 처음으로 하늘에는 회색 구름이 자욱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조금 쌀쌀하기까지 했다. 아쉽게도 안개 위로 솟아오른 엽서 속의 마을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마을은 제법 높은 언덕 위에 있다. 마을 아래에서 출발하는 꼬마 기차를 탔다. 말이 기차이지 기차 모양을 한 자동차이다. 좁고 굽고 비탈진 길을 용케 잘도 올라간다. 이른 시간이라 우리 외에 한 커플이 더 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 마을의 주된 수입원은 관광임이 틀림없다. 동화 속 마을처럼 좁은 골목길 양옆으로는 중세 시대 그대로 돌로 지은 집과 상가들이 서있다.

이런 관광객용 꼬마 열차가 많이 있다.


기차 종착점인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자 마을 아래 평야와 구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레고 블록 같은 몽글몽글한 나무들과 나지막한 구릉들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여기까지 오는 도로도 대부분 이런 배경이다.



주변에는 온통 나무와 구릉, 경작지만 있는 시골이다.





아치형 성문을 통과해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기념품 백화점이라 할 수 있는 장난감부터 엽서까지 두루 파는 가게, 독특한 그림을 전시한 갤러리, 마을 가운데 성당과 광장까지 갖춘 작지만 완벽한 마을이었다. 신축이나 증축은 아예 금지되어 있나 보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는 곳 같다. 당장 중세시대 배경의 영화를 찍는다 해도 될 만큼 오래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조상 대대로 이런 문화유산을 물려받아 보존해서, 가만히 있어도 몰려오는 관광객으로 먹고살 수 있는 복 받은 마을인 것 같다.



집집마다 형형색색의 꽃을 가꾸고, 건물에는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듯 담쟁이들이 뒤덮고 있었다. 새와 왕, 기사들과 기하학적인 모양을 아름답게 채색한 휘장과 깃발이 마을 곳곳에 걸려 있어서, 마치 마을은 항시 축제 중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데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엽서 같은 그림이 나오는 곳. 2014년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른 아침 오래된 마을 풍경



작은 물고기 모양의 초콜릿이 20개 정도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는 것과 작은 낙하산에 군인이 달려있어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사뿐히 내려앉는 장난감을 하나 샀다. 나는 뒤에 서서 천천히 걸으며 주변 건물과 꽃들 사진을 찍는다. 가능하면 아이들이 걷는 흐름을 방해하며 사진을 찍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초콜릿을 나눠 먹고 낙하산에 매달린 군인을 공중에 던지며 노느라 즐겁다. 4살 터울의 딸과 아들에게 공통 관심사가 매우 적음에도, 함께 잘 어울려 다니는 모습은 잔잔한 행복을 준다.  

아이들 사진은 가능하면  아이들을 불러 세우지 않고 찍으려고 한다.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 맘에 든다.








두 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마을이라 아침 일찍 도착한 덕에 여유롭게 다음 목적지인 생 시라크 라포피(Saint-Cirq-Lapopie)로 출발한다. 미디 피레네 지역의 도로는 구릉과 강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생 시라크 라포 피로 가는 한 시간 가량의 드라이브 코스는 마치 자동차 광고의 배경 같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싶어 지는 곳이다.  나무가 우거진 평평한 비포장 도로를 지날 때도 있고, 구릉 위쪽을 달리면 아래쪽으로 펼쳐진 평야와 다른 구릉들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  


차들도 많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
미디 피레네 지역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운전을 하는 나를 자주 상상하곤 했었다. 명동에 다니는 많은 차들을 보면서, 얼른 커서 선글라스를 끼고 한 손으로 운전하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다. 오죽하면 구릉과 초원이 펼쳐진 지역을 신나게 드라이브하는 꿈도 자주 꿨다. 이 지역의 도로와 풍경이야말로 내가 꿈에 보았던 이상적인 드라이브 코스였다. 다른 차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트럭이나 버스와 같은 큰 차량도 거의 보지 못했다. 자동차를 타고 산책을 한다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길이다.


딸이 좋아하는 아이유 노래를 듣다가, 엄마가 좋아하는 이승환 노래를 듣다가, 아들이 좋아하는 비틀스 노래도 들으면서 행복한 드라이브를 했다. 목적지에 가까이 오자 바위 산과 로강을 따라 도로가 커브를 그리고 바위 산 위에 자리 잡은 이 오래된 마을을 2킬로 정도 남겨두고는 휘어진 길 맞은편에서 갑자기 나타날지 모르는 차량에 대비해 천천히 운전한다.

아름다운 마을

100미터 높이 위 바위산 위에 자리한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마을은 해마다 4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꼽히는 곳이다. St.James 순례길에 포함되기에 길에는 자기 몸만 한 배낭을 메고 걷고 있는 순례자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나 역시 6년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본 경험이 있어서, 그때의 감동과 느낌이 되살아났다. 스페인에서는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해주었는데, 프랑스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니 그다음부터는 배낭 멘 사람만 보면 ‘부엔 까미노’라고 외친다. 아니 그 사람은 그냥 이 동네 사는 사람이라고~!


마을에서 좀 더 올라가 공용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야외 테라스가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신선한 토마토와 치즈를 곁들인 샐러드와, 오믈렛과 감자튀김을 먹었다. 딸은 뭐든 맛있게 잘 먹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반면 아들은 한국 아저씨 입맛인지라 뭐라도 익숙한 요리가 있다면 운이 좋은 날이다.








오늘도 하늘은 마냥 푸르르다. 높은 곳에 생긴 마을이다 보니 골목길도 대부분 비탈이다. 비탈길 양 옆으로 돌로 지은 오래된 낮은 건물들이 아기자기하다. 프로방스의 오렌지 빛보다 어둡고 붉은빛이 감도는 지붕을 얹은 건물들이다. 붉은색, 보라색 꽃들로 상점 앞을 생기 있게 장식한 가게들이 예쁘다. 내부는 훨씬 시원해서 구경한다는 핑계로 들어가 보기도 한다. 마을이 끝나는 비탈길 아래쪽에서 건너편 마을을 바라본다. 숲 속에 건물 만한 바위 뒤로 또 한 무더기의 붉은빛 지붕을 얹은 집들이 모여 있다. 초록이 절정을 이루는 6월이다. 저 100미터 아래로는 강과 산이 손을 맞잡고 완만하게 미끄러지듯 춤을 추는 듯하다.  


한낮이 되니 날이 화창하게 개었다.


무언가 사고 싶은 것을 발견한 듯



다시 비탈길을 올라서 마을 중간의 성당에 잠시 들러, 우리의 여행 관례에 따라 초를 켜고 5분 명상을 한다. 시원한 성당 내부의 공기가 감사하다. 한 무리의 관광객이 웅성웅성 들어오고, 우리도 다시 밖으로 나왔다. 1일 1 아이스크림을 실천하고, 마을 위쪽의 폐허가 된 요새를 둘러본다. 관광지에 포위당했다는 이 마을에도 여행을 떠나기 전 나의 예상과는 달리 비교적 한가한 편이었다.

각자 좋아하는 맛이 다르다.


아직까지는 인기 있는 관광지라고 하더라도 도로에 차가 막히거나, 주차 공간이 부족한 곳은 보지 못했다.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라서 그런 듯하다. 어쨌든 초보 여행가인 나로서는 아이들이 방학하기 2~3주 전에 여행을 시작한 것은 괜찮은 선택이었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서 오늘의 숙소인 캠핑장을 찾아간다. 중간에 마트에서 쇼핑백 한가득 장을 봤다.  캠핑장에서는 냉장고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늘 먹을 고기만 사고, 나머지는 물, 과자, 과일, 라면 정도만 조금씩 사둔다. 보통은 전날 냉장고가 있는 숙소에서 머물 경우 밤새 500미리 리터 물통 두세 개 정도를 꽁꽁 얼려서 아이스박스에 넣고, 김치나 남은 야채와 음료수 한 두 개 정도를 넣어두면, 저녁때까지 내부가 시원한 상태로 유지된다.


캠핑장 근처에 오니 더욱 한가로운 풍경이 이어진다. 3일 동안 머물면서 입구의 소떼들을 오며 가며 여러 번 만났다. 캠핑장 리셉션에서 예약을 확인하고, 자리를 배정받아 아이들과 뚝딱 텐트를 편다. 고기를 굽고 저녁을 먹는다.

캠핑장 가는 길
아름다운 캠핑장
아담하고 소박한 우리의 사이트




늘 웃는 얼굴이라 좋다
좀 번거롭고 불편해도 이런 풍경 때문에 캠핑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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