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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18.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17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17, 6월 28일 알비(Albi)


캠핑장에서 알비 성당이 있는 시내까지는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기에 산책 겸 걸어가기로 했다. 숲 속으로 난 오솔길을 통과하는 맘에 드는 길이다.. 중간에 징검다리가 있는 시냇물도 지난다. 근처 학교에서 아이들이 소풍을 나왔나 보다.



숲길을 지나 시내로 가는 길




숲길이 끝나고 타른 강(Le Tarn)을 가로지르는 1000년 된 붉은 벽돌로 만든 퐁 뷔에(Pont Vieux)가 보인다. 1035년 돌로 지은 후 벽돌로 치장한 다리는 8개의 아치 위에 놓여 있으며 길이는 151m이다. 우리가 보는 쪽에서 왼쪽으로는 주교들의 궁전인 베르비 궁전 (Berbie Palace)과 거대한 알비 성당(Cathédrale d’Albi)이 있고, 강 건너편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강변을 따라서 오래된 다리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게 늘어서 있다.

앞에 보이는 다리가 퐁 뷔에(Pont Vieux) 뒤에 보이는 다리가 알 비교(Pont d'Albi)


앞쪽이 베르디 궁전 (Berbie Palace), 뒷 건물이 알비 성당(Cathédrale d’Albi)


성당까지 가는 중 주택가에서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아는 척을 한다. 다리에 얼굴을 비비고 우리더러 아는 척하고 가라고 한다. 아이들은 주저앉아서 한참을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주인이 있는 고양이일 거야. 깨끗하잖아.’, ‘맞아, 사람도 엄청 좋아하네. 사랑 많이 받은 거 같아.’  내가 재촉하지 않으면 한 시간이라도 앉아 있을 것 같다.





건물들 사이로 49미터 높이의 세상에서 가장 큰 성당 알비 성당(Cathedral of Saint Cecilia of Albi) 모습을 드러냈다. 길고 좁은 창문이 있기는 하지만 마치 철갑으로 무장한 무자비한 거인 같은 모습의 붉은 벽돌의 건물이었다. 주변에서 적당한 석재가 없어 벽돌로 지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벽돌 건물, 알비 성당의 압도하는 크기



십자군들이 당시 이단으로 몰린 카타리파를 토벌한 후, 1480년에 완공된 요새와 같은 모습의 성당이다. 성당이라기보다는 요새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압도적인 모습이다. 이단 처단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이단이라 규정지은 사람들을 살육했다. 산사람을 불에 태우는 등 그 방법이 너무도 잔혹하였다.  “Caedite eos. Novit enim Dominus qui sunt eius."(모두 죽여라. 주님은 그분의 사람들을 알아보실 터이니)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때 처형당했다고 한다. 이렇게 위압적인 성당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히 딴 생각은 품지 못하게 하려고 했나보다.


어떤 성벽보다 더 튼튼해 보이는 성당
남부 프랑스의 고딕 양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성당 내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벽화가 있으니 ‘최후의 심판’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오르간 중 하나라는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아래 재단 양옆으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몸이 분리된 사람들을 뱀이 휘감고 있고, 꿈에 나올까 무서운  괴물들이 사람들을 고문한다.


7월과 8월, 일요일과 수요일에 오르간 연주가 있는데 아쉽지만 일정과 맞지 않아 볼 수가 없다. 언젠가 여행 중에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한 번쯤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


외부와 달리 정교하고 섬세한 성당 내부 장식
현대의 어떤 빌런보다 더 섬뜩하다. 작가는 알려지지 않음
무시무시한 최후의 심판






아이들에게 성당의 느낌이 어땠는지 물어보면 첫 번째 나오는 대답은 “시원하다”이다.  6월 말의 프랑스의 기온은 평균 32~37도 사이를 오가는 것 같다. 그나마 습도가 낮은 편이어서 이렇게 성당 안이나 식당 안에 들어가면 시원하다.


식당을 고를 때 가까운 곳을 가장 선호한다. 아이들과 움직일 때는 동선이 가장 크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핸드폰의 구글맵에서 근처 식당을 검색한 후 가까우면서도 평점이 높은 곳을 선택한다. 검색하지 않고 길을 걷다 맘에 드는 근처 식당으로 갈 때도 종종 있다.


프랑스 여행 시 점심을 먹을 때 좋은 옵션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식당마다 입간판에 적어 둔 오늘의 메뉴 (plat du jour)이다. 보통 샐러드가 기본으로 나오고 스테이크나 생선 요리 중에 하나를 메인 요리로 선택할 수 있다. 성당 앞 광장의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테이블이 문 앞에 두 개 놓인 분위기 좋은 식당이 있다. 작고 예쁜 식당에서 연어 찜과 소고기 감자 요리를 점심으로 먹었다.

비교적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오늘의 메뉴
여행을 다닐 때 점심에 마시는 와인 한잔은 화룡정점








오후에는 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베르비 궁전 안에 있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었다.  정문 앞에 그의 전신사진이 있는데, 나는 자꾸만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티리온 라니스터가 떠올랐다. 프랑스 곳곳에서 화가들의 고향이나 활동 무대를 돌아보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알비는 바로 로트레크의 고향이었다. 그의 부모가 소유했던 작품을 이곳에 전시할 수 있었다. 덕분에 로트렉의 작품을 가장 많이 전시하고 있는 곳이 알비의 로트렉 미술관이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의 삶과 작품에 설명서들이 각 전시실마다 비치되어 있다. 미술관 내부도 아름답고, 그의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도 모두 흥미롭다.

실물에 가깝도록 그린 초기 작품(위) 익살스러운 후반기 작품(아래)
미술관 뒤편의 정원과 타른 강의 모습

미술관의 뒤쪽 뜰에서  타른 강 위를 오가는 유람선과 강 건너 마을의 붉은 건물들과 교회 첨탑과 그름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관광객 중 한 명이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고 한국에서 태권도를 배웠다며 반갑게 인사한다.



 여행하며 나른해진 오후에 휴식을 취하며 관광하는 방법은 바로 유람선을 타고나 시내를 한바퀴 도는 관광용 꼬마얄차를 타는 것이다. 유람선을 타고 앉아서 강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걸을 때와 또 달리 더 평화롭게 보인다.

유유히 흐르는 타른 강의 오후, 유람선에 앉아서 휴식하는 것도 좋다.



가이드가 프랑스어와 영어로 타른 강과 알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흥미로운 내용은 아이들에게 전달해준다. 유유히 물 위를 미끄러져 가는 유람선에서 주변의 푸른 나무와 강물의 반짝임, 고기를 잡는 새들과 천년 된 붉은 다리를 몸과 영혼으로 기억해둔다.





상점들이 문을 닫기 전에 딸과 나는 작은 사치를 부렸다. 딸내미는 이후에도 계속 끼고 다닐 은반지를 샀고, 나도 예쁜 참이 여러 개 달린 팔찌를 샀다. 딸이 자라니 서로의 장신구를 골라주는 기쁨이 있다.


성당이 보이는 광장에서 아시안 식당이 있기에 저녁을 해결하고 간다. 각자 원하는 재료를 담으면 바로 요리를 만들어준다.


원하는 재료를 골라담으면 바로 요리를 해준다.
저녁까지 해결하고 천천히 캠핑장으로 돌아간다.
각자 고른 케이크



오늘 걸은 길이 벌써 2만보를 훌쩍 넘었지만, 어느새 단련된 아이들은 지친 기색없이 앞장서서 걷는다. 생전 처음 와보는 낯선 곳의 낯선 거리를 작은 휴대폰의 맵에 의지해서 길을 찾는다. 익숙한 것은 우리 셋과 하늘과 구름과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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