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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17.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 #16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16, 6월 27일 리무시스 동굴(Grotte de Limousis) , 알비( Albi)


전날 밤늦게까지 카르카손 성의 야경을 보고 12시쯤 잠이 들었다. 아침 9시에 주차장에서 주인 할아버지에게 주차장 카드를 건네기로 약속했기에 긴장된 나는 역시나 일찍 잠에서 깨었다. 이러다가 여행 중반에 앓아눕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짐을 많이 꺼내 놓지도 않았는데,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짐 정리하고 설거지 하고, 아이들하고 주차장까지 가니 빠듯하게 9시였다. 무사히 짐을 차에 빛의 속도로 집어넣으니 주인아저씨가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메씨 보끄를 외치고 주차장을 빠져나와서 원래의 여정에는 없었지만, 관광안내소에서 본 소개서를 보고 끌려서 동굴 탐험을 하기로 했다.  카르카손에서 30분 거리에 있고, 오늘 숙소가 있는 알비(Albi)에 가는 길에 있다. 




Limousis에 도착하니 아주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인터넷 연결이 끊길 정도로 외진 곳이었고 Grotte(동굴)라는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이럴 때 살짝 긴장이 된다. 가다가 험한 비포장 도로를 만나면 어쩌지? 길을 잃으면 어쩌나. 그래도 아이들 앞이니까 긴장한 티는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속도를 낮춰서 마주 오는 차가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며 가면 안전한 길이다.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는 외진 길(구글 스트릿 뷰 캡처)


시골길을 따라 10분쯤 가니 외진 곳에 문닫힌 카페가 있었다. 오늘은 영업을 안 하는가 보다 하고 별 기대 없이 돌아가려는데, 카페 주인장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야외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 30분 뒤에 가이드 투어가 시작되고 카페는 곧 문을 연다고 한다. 아침도 못 먹고 서둘러서 나온지라 아이들과 쿠키와 사과 주스 등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시간이 되어 다른 몇 팀과 함께 동굴 탐험을 떠났다. 


물에 반사된 동굴 천장이 데칼코마니를 만들었다.


동굴 안의 온도는 일 년 내내 섭씨 14도, 습도는 19퍼센트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그래서인지 입구에는 와인을 담은 오크통이 여러 개 있었다.  여름이라도 동굴에 올 때는 긴팔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이 살기도 하고 커다란 곰도 살던 동굴이라고 한다.  동굴에서 발견한 동물의 뼛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다행히 지금은 곰은 살지 않는다. 또 이탈리아에서만 생산되는 보석이 이 동굴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은 등 풍부한 광물 자원을 캐는 일을 하며 고향에서 가져온 보석을 들고 왔다고 추정된다.


동굴 속의 맑은 물



동굴 안의 풍부한 물속에는 4mm 정도의 작은 새우들이 살고 있다. 원래는 바다에 살던 새우였는데,  캄캄한 동굴에 적응하다 보니 크기는 매우 작아지고 시력도 사라졌다.  원래 바다에 살던 새우가 아직도 동굴에 사는 것도 신기하고, 오랜 시간 동안 동굴 환경에 맞게 신체가 변화되는 것도 신기하다. 중간쯤 가다 보니 댄스 룸이라고 불리는 꽤 넓은 공간이 나왔다. 1940년대에 50여 명의 사람들이 커다란 신발을 신고 바이올린 등의 악기를 가지고 와서 춤을 추던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투어는 영어로 진행된다. 



 동굴의 끝자락에서는 불빛 쇼를 보여주었다. 철, 망간, 마그네슘 등의 작용으로 크리스털이 형성된 공간이었다. 수백만 년 전에는 강물이 흐르던 동굴이라고 한다.


광물이 만든 크리스털 결정체




관람을 마치고 출구로 나가기 전에 가이드가 보여줄 것이 있다고 아이들과 나를 멈춰 세웠다. 동그란 배를 가진 거미 한 마리가 열심히 먹이를 먹고 있었다. 보통의 거미는 8개의 눈을 가지고 있으며 1년 동안 사는데, 이 원시적 동굴 거미는 눈이 2개이며 수명은 약 3년이다. 동굴 밖과 안은 한 걸음 차이였는데 동굴 밖에 있는 거미와 동굴 안의 거미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열심히 집을 짓고 있는 동굴 거미







동굴 탐험을 마치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을 달렸다. 작은 상점도 하나 없는 동네를 지나기도 하고, 귀여운 교회 첨탑이 가장 높은 건축물인 마을도 지났다. 뭐가 있는지 너무 궁금하게 차들이 많이 주차된 마을도 지났다. 절벽 위에 아슬아슬 서 있는 성의 폐허도 지났다. 보이는 모든 곳을 다 방문할 수는 없는 법 과감히 무시하고 계속 우리의 숙소가 있는 Albi로 달렸다. 구불구불 산길이었기에 나는 가능한 한 시속 50킬로미터 정도로 안전하게 달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현지인들은 답답한지 뒤꽁무니에 바짝 달라붙는다. 늘 그렇듯 차량 서너 대를 양보하여 앞서 보낸다.



한참 달리다가 차량의 통행도 거의 없는 숲 속에 공터가 눈에 띄어  차를 세웠다. 적당한 식당을 찾는 것보다 후딱 라면으로 점심을 먹는 것이 좋을 듯했다.  가스버너를 켜고 코펠에 물을 붓고 라면을 끓였다. 달걀까지 한 개 넣고, 잠자는 아들을 깨워서 라면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기분 좋아진 우리는 다시 열심히 구불구불한 길을 달렸다. 산길을 벗어나니 곧 넓게 펼쳐진 평야가 이어졌다. 밀을 수확하고 남은 지푸라기를 둘둘 말아놓아은 무더기들이 펼쳐진 평야. 고르게 수확한 흔적이 남아 있는 밀밭과 초록 풀밭에 만개한 양귀비, 주황색, 황토색 지붕을 얹은 집들, 나무들이 말 그대로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이었다. 우와! 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아이들 이름을 불렀다. 얘들아 밖 풍경 좀 봐~~ 운전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이번 숙소는 알비 시내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의 캠핑장이다.  이번에는 텐트를 치지 않아도 되는 작은 오두막집을 예약해 두었다. 방이 두 개이고 샤워실과 화장실 각각 한 개씩, 작은 거실과 작은 주방이 있는 오두막 집이다. 테라스에 넉넉한 크기의 나무 테이블과 벤치가 있었다. 이런 오두막집이 나란히 10여 채 가량 있다. 차는 바로 오두막 집 앞에 세우고 짐을 내리고 실을 수 있어서 편하다. 숲 속의 오두막 숙소. 새소리와 바람 소리, 고양이들이 기웃거리는 곳이다. 


캠핑장의 오두막집, 여름철에는 최소 한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 
작지만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오두막 내부


캠핑장 리셉션 건물 바로 앞에 야외 수영장이 있어서 바로 수영을 한 시간 정도 했다. 아들은 카르카손에서 손에 넣은 장난감 투석기를 가지고 콩알만 한 쇠구슬을 날려 보내고는, 신이 나는지 서너 바퀴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고 구슬을 주으러 갔다. 이곳에서는 박스형 팬티 수영복은 입을 수 없고 몸에 딱 붙는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 박스형 수영복 밖에 없어서 아들은 수영은 할 수 없었다. 이후 다른 캠핑장 수영장에서는 이런 규칙을 듣지는 못했다. 

여유로운 사람들






오는 길에 마트에서 구입한 스테이크용 쇠고기에 양송이버섯과 양파를 넣고 소금만 뿌려서 구웠다. 냄새를 맡고 달려온 고양이 두 마리를 위해 고기를 작게 잘라서 나눠주었다. 어디서든 고양이가 나타나면 아이들은 금세 행복해진다. 

고기를 잘게 잘라주니 한 접시를 금방 비운다. 








아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샤워를 하는 동안 나는 아직 남은 로제 와인에 크림치즈와 크래커를 안주 삼아 여유를 만끽한다. 샤워를 마친 아이들이 집안과 밖을 오가며 장난을 친다. 오늘도 새로운 곳을 무사히 잘 찾아오고, 안전하게 운전한 나를 칭찬한다.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때 아이들도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내가 행복해야 행복이 넘쳐서 아이들에게 갈 수 있다.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더라도 매일 한 가지씩 잘한 일을 과하게 칭찬하기로 한다. 


아이들과 모두 다 같이 둘러앉아서 오늘 일기를 쓰고 있다. 글씨 쓰기를 죽을 만큼 싫어하는 아들은 맞춤법도 많이 틀리지만 그래도 매일 한 페이지를 채우기는 한다. 

오늘도 잘했어! 오늘도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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