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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16.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여행기 #15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15. 6월 25일  카르카손(Carcassonne)



검색창에 카르카손을 검색하면 보드 게임 쇼핑몰과 게임 소개 블로그가 제일 먼저 뜬다. 아마 유명한 게임의 배경으로 사용되는가보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중세 도시 카르카손은 로마 시대에 사용되었던 방어 시설 위에 지어졌다. 


13세기 교황은 프랑스 남부 랑그독 지역으로 피신한 이교도를 숙청하기 위해 십자군 전쟁을 시작했다. 카타리파 이교도들의 주요 활동지였던 베지에(Béziers), 카르카손과 알비(Albi) 만이 저항을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북부의 십자군이 베지에를 탈환하고 시민들을 학살하자 카타리파 이교도들은 카르카손으로 피신했다.


카르카손은 샤를마뉴 군대에 의해 5년 동안 포위되었다. 이 당시 카르카스 공주가 홀로 지휘하면서 버티고 있었다. 공주는 성의 주민들에게 식량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한다. 사람들이 새끼 돼지와 밀 포대 한 개를 가져오자, 공주는 새끼 돼지에게 밀을 모두 먹인 후에 돼지를 가장 높은 탑에서 던지라고 명령했다. 샤를마뉴 대제는 돼지의 뱃속에 밀이 가득한 것을 보고 카르카손 성채는 돼지에게 먹이를 줄 만큼 식량이 풍부하고 강하다고 믿은 채로 성채의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고 한다. 이렇듯 프랑스 남부 사람들은 기존 질서에 저항하고 맞서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카르카손 성

카르카손 성까지는 숙소에서 도보로 20분 가량 걸렸다. 숙소가 위치한 오드 강의 북쪽의 시내에는 기차역과 마트, 호텔, 주택가가 있고 번화하다. 반면 강 건너 카르카손 성은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서 아직도 도시를 지키는 요새의 품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아침부터 땀이 나기 시작했다. 광장의 분수대에서 물장난 치는 어린 소년들과 강아지, 유모차를 끌고가는 엄마와 보드를 타고 가는 청년들이 평화로운 그림을 완성시켰다. 오드강을 가로 지르는 석조 다리 (Carcassonne Pont Vieux) 건너는 동안 저 멀리 언덕위에 웅장한 카르카손 성이 자태를 드러낸다. 한눈에 봐도 규모가 매우 크고 아름다운 성이었다.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 비탈길을 올라가야 했는데, 가는 길의 벽에 중세의 성과 말탄 기사와 보병들이 적과 싸우는 모습을 그린 벽화를 구경하면서 지루한 줄 모르고 갔다. 


아침부터 분수대에서 노는 아이들



성 입구,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


크고 아름다운 성이다. 


성안은 꽤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었다. 각종 기념품을 파는 상점, 그림이나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상점, 초콜릿과 캔디를 파는 상점이 눈길을 끌었다. 이미 중세 시대의 분위기에 젖어 있는 9살 아들은 목검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구경하는 것은 엄마인 나도 설레고 재미있는데 아이들은 어떨까? 아이들은 왜그런지 중세 시대의 고문이나 사형 방법에 관심이 많다. 결국 아들은 목검을 딸은 석궁을 하나씩 사서 들고 다녔다. 

성 안에 식당이 모여있는 작은 광장, 활기차서 좋다. 


매혹적인 초콜릿 상점


조화롭게 꾸며진 정원


카르카손 성에도 성벽 위를 걸을 수 있는 코스가 있어서, 별도로 입장권을 구매했다. 프랑스 유적지와 박물관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초등학생인 경우 대부분 입장료가 무료라는 점이다. 역시 오늘도 태양을 가려줄 만큼 넉넉한 크기의 구름은 없었기에 성벽 코너의 탑에 들어갈 때 잠깐 빼고는 햇빛을 온몸으로 다 흡수하며 돌아다녀야 했다.  성벽을 걸어다니며 내려다본 카르카손 시내는 어쩐지 성의 보호 날개 아래 있어서 더 평화롭고 안전하게 보였다. 유유히 흐르는 강과 다리, 주홍빛 지붕들과 초록 나무들이 너무나도 완벽한 동화 속 배경처럼 느껴졌다. 벽돌 한장한장에 서린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고, 이곳을 지키다가 죽어갔을 사람들과 이 매력적인 요새를 함락시키려고 공격했던 다양한 적들의 함성도 들리는 듯했다. 성벽을 돌고 나오는 출구의 기념품 샵에서 결국 아들은 작은 목검을 얻었고, 그 후 성 투어는 더 신나는 모험이 된듯하다. 

아이들과 성 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것은 정말 흥미롭고 신나는 일이다. 
작은 나무칼 하나에 행복한 9살
오늘도 성벽 위를 걷는다. 


게임의 배경이 될만큼 멋진 성이다. 


평야와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요새의 역할을 하는 성


무기로 쓰인 포탄





더위에 지쳐갈 무렵 가장 가깝고 찾기 쉽고 별표가 4개가 넘는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l'Ostal des Troubadours 이름의 식당이었다. 맛조개와, 오징어를 버터에 굽고 허브와 소금 정도로 간을 한 요리는 엄마의 취향이고, 여섯개의 작은 홈이 있는 접시에 여섯개의 달팽이와 올리브 오일을 넉넉하게 넣은 요리와 빵을 먹었다. 한바탕 돌아다녀서 배도 고팠고, 해산물과 올리브 오일에서 감칠맛이 나기도 하는 만족스러운 식사여서 오래 기억에 남았다. 디저트로 쵸코 시럽을 잔뜩 올리고 생크림을 얹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마무리는 에스프레소. 

맛조개와 오징어 요리 
달팽이 요리, 맛있다!
완벽해!






그늘진 성벽 아래에 검은 옷을 입고 머리를 빡빡 민 수도승이나 요가 수련생처럼 보이는 젊은 남성이 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는 크기가 다른 주먹만한 유리 구슬 대여섯개로 기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는 매끈해 보이는 투명한 구슬 네개를 가장 큰 것부터 자신의 민 머리 위에 세웠다.  이런 사람들이 여행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기에 기꺼이 2유로 주화를 모자 속에 넣었다. 


어떻게 하는건지 아직도 신기하네







성은 저녁에 불이 들어올 때 다시 와서 시원한 밤거리를 구경하기로 하고, 시내에 있는 카르카손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 de Carcassonne)에 들렀다.  미술관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와 딸에게는 늘 새로운 볼거리를 만나는 설렘을 주는 곳이다. 하지만 큰 흥미를 갖지 못하는 아들에게는 미술관에 갈 때마다 미안해 하며 양해를 구하곤 한다. 그래도 가끔은 특이한 그림이나 조각품을 보면 좋아할 때도 있다. 많이 보다보면 언젠가는 흥미를 갖지 않을까? 


카르카손 미술간은 널리 알려진 미술관은 아니지만,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오후의 더위를 피하기에도 비오는 날 비를 피하며 즐기기에도 매력적인 곳이다. 비교적 넓은 석조 건물로, 17세기부터 19세기의 유화작품과, 도자기, 태피스트리를 두루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어서 뜻밖의 기쁨을 주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입장료가 없다. 


미술관에 전시된 중세의 작품들






숙소 앞 마트에서 500그램 삼겹살을 4유로에 사서 전날 담근 배추 김치와 흰밥과 계란찜을 해서 함께 저녁으로 먹었다. 식당에서 사먹는 것도 즐겁지만, 여행이 길어지기 시작하니 아이들은 한식으로 밥을 해먹는 것을 더 좋아하기 시작했다. 집에 있을 때는 시시하다고 했을 소박한 식단인데, 타지에 나와서 먹으니 얼마나 귀하던지. 

싱싱한 삼겹살
음 완벽해
외국에서 한국식 식단을 만드는 것이 마치 소꼽놀이 하는 기분


아이들은 뒹굴 거리고 게임을 하면서 쉬었다. 나도 와인 한잔을 하면서 내일 일정을 점검하고, 운전하게될 길을 미리 살펴보기도 했다. 현재에 집중하려고 노력하지만, 여행의 책임자이다보니 내일 일을 미리 점검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해가 10시에나 지기 때문에 9시쯤 집에서 나와 다시 성으로 향했다. 시원해진 바람에 늘 사는 동네 산책 나가듯이 슬렁 슬렁 걸을 때의 여유가 참 좋다. 한낮의 더위를 식혀 주던 분수도 멈추고, 저녁 빛에 물든 하늘과 나무들이 우리에게 미소를 건네는 것 같다. 

저녁이 되어 조명이 켜진 마을과 성이 몽환적이다. 
성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석양

같은 거리인데 낮에 보는 것과 저녁 무렵에 보는 것은 매우 다른 인상을 준다. 과거란 것은 없다. 미래란 것도 없다. 현재만 있을 뿐이다. 다시 한번 다리 위에서 멀리 보이는 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불이 켜진 성과 저녁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 주변이 환상적으로 느껴졌다. 여행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성의 모습이었다.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조명으로 밝혀져서 동화속같은 분위기를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대낮 만큼은 아니었지만, 야경을 즐기러 나온 관광객이 많았다. 성 안의 식당들도 손님들로 붐볐다. 야외 테이블 위로 작은 등이 별처럼 빛나고 사람들의 떠들석함이 축제 날 처럼 느껴지게 했다. 

조명이 켜진 성은 환상적이다. 


조명이 멋지게 비치는 성벽



동양 어딘가에서 온 엄마와 딸과 아들은 중세 시대로 시간 여행을 온듯 성안을 산책했다. 조명에 비친 신비로운 고성의 성벽안과 밖의 경계에 서서 저 아래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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