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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22.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20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20, 7월 1일 로카마두르(Rocamaduor)


달이 바뀌어 7월이 되었다.


아침으로 버섯, 호박, 양파와 햄을 넣은 고추장찌개와 작은 프라이팬에 한가득 계란 프라이를 해서 김과 함께 먹었다. 아들은 옆 텐트의 여자 친구를 사귀어서 밥도 안 먹고 공놀이를 하는 중이다. 영어라고는 자기 이름과 나이, 한국에서 왔다는 정도밖에 할 줄 모르는데 어딜 가도 금세 친구를 만드는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다.

식사 준비하는 딸과 막 사귄 친구와 공놀이 중인 아들


조촐하지만 밥이라 든든한 아침


자기보다 2살은 어려 보이는데 열심히 공을 주어다 주며 놀고 있다. 엄마와 누나가 잔소리를 해대니 또래의 친구가 그리웠겠지. 밥을 대충 먹고는, 그 친구를 따라서 수영장으로 가겠다고 한다. 일요일이니 모처럼 오전 시간은 캠핑장에서 밀린 빨래도 하고, 수영도 하면서 여유롭게 지내기로 한다. 아들은 그새 늘어난 다른 친구들과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발이 바닥에 아직 닿지도 않는데 공 하나를 가지고 잘도 논다. 친구들이 물속으로 뛰어들면 자기도 따라 뛰어들고 공을 잡으러 아직 어설픈 수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곧 안타깝게도 친구들이 떠나야 할 시간이 오고, 금세 녀석도 풀이 죽어버린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괜찮다.









점심을 여유롭게 캠핑장 카페에서 먹으려 했는데, 오늘은 일요일이라 식당 문이 닫혀있다. 서둘러 가장 가까운 식당을 검색하고 근처 마을에 차를 타고 나갔는데, 이미 점심 영업시간이 지난 후였다. 하는 수 없이 30분 거리의 로카마두르 마을로 향했다. 원래는 내일 일정이었지만, 점심 식사도 할 겸 일정을 바꾸기로 했다. 유명한 관광지이므로 일요일과 상관없이 시간과 상관없이 오픈한 식당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100미터 석회암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성과 마을은 적들의 접근을 불허하는 장엄하고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성 아래 평지에 넓은 주차장이 있어서 주차를 해두었다. 마을로 들어가려면 비탈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야 했기에,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꼬마 열차를 타기로 한다.. 돌로 된 성문을 통과하여 열차에서 하차했다.


꼬마 열차를 타고 비탈길을 올라 마을에 들어간다.




 곧바로 절벽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차양을 친 테라스 자리에서는 건너편 산비탈을 굽이돌아 나오는 도로와 터널이 보였다. 늦은 점심이라 다들 맛있게 먹었다.


식당 테라스 자리에서 보이는 전경








마을은 산비탈 위에 수평으로 길고 좁게 조성된 아래쪽 상가 거리와 계단을 올라가 상층부의 성당으로 크게 구분된다.  


순례길 코스에 포함되는 곳이라 순례자용 지팡이를 파는 상점
흰옷만 파는 상점
예쁜 상점







상가 거리에서 올려다본 바위와 성당
순례자들이 무릎으로 올랐던 계단



성당과 전설의 검이 꽂힌 바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계단 224개를 올라가야 한다. 옛날 순례자들은 이 계단을 쇠사슬을 두르고 무릎으로 기어올랐다고 한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특히 중세 마을이 많은 유럽을 여행하려면 튼튼한 다리는 필수이다. 아이들은 재잘재잘 가위바위보를 하며 저만치 올라간다.








한 단계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니 저절로 신령한 존재가 된듯한 기분이 든다.


산비탈에 좁은 길을 따라 들어선 마을




성당(Basilique Notre-Dame de Rocamadour) 안에는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이 있다. 작고 소박해 보이는 이 상은 특히 검은색이라 인상적이다. 오래 전부터 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고 신성시되고 있다.  이 작은 성모 상 앞에 섰을 때 어쩐지 저절로 경건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분 간 아이들과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자연이 만든 거친 바위와 인간이 만든 건물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성모상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포스터를 찍었다.




성당 내부에는 오래된 나무 나선 계단이 이층으로 이어진다. 이층 공간은 그다지 넓지 않은 다락방 같은 모습이었는데, 4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성경을 낭독하고 있었다. 비록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른과 아이들 모두 진지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뒤쪽에 잠시 앉아 아이들과 조용히 나의 영혼이 그들과 공명하는지 느껴본다.



스패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성 야고보











성당을 나오면 바위에 꽂혀있는 검을 볼 수 있다. 이 검은 샤를마뉴 대제의 열두 기사 중 한 명인 롤랑의 검이라고 알려진 듀란달(Durandal)의 파편이라고 전해진다.  롤랑이 몇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던져서 여기에 와서 꽂혔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전설을 믿고 싶다. 이런 전설이 사실이 아니라면 세상이 너무 재미없지 않은가?


바위에 절묘하게 지은 성당, 건물 사이 바위에 롤랑의 검이 꽂혀 있다.
바위에 꽂힌 듀란달(Durandal)



이곳에서 치유를 받은 사람들의 감사 기록들








정상에 있는 성까지 올라간 후 지그재그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다시 마을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내려오는 길은 나무가 우거져 시원했고,  예수의 생애를 부조로 표현한 전시물을 보면서 편안하게 걸어올 수 있는 산책로이다. 올라올 때 땡볕 아래에서 수백 개 계단을 올라야 했던 수고를 다 갚아주고도 남을 만큼 평온한 길이었다.



그늘진 나무 그늘 아래로 내리막길을 걷는다.







주차장에 와보니 유독 우리 차 주변에 파리며 벌레들이 몰려있었다. 아이들은 징그럽다고 기겁을 했다. 차를 타고 다닌 지 2주가 되었으니 이제 세차 한 번쯤 해도 되겠다 싶어 오는 길에 세차장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다행히 숙소 가까운 마을을 지나다가 셀프 세차장이 보이길래 세차를 했다. 세차할 수 있는 공간이 세 곳으로 나뉘어 있고, 기계에 동전을 넣고 알아서 세차하는 우리나라의 새차장 시스템과 별로 다르지 않아 어렵지 않게 세차를 했다.









캠핑장 레스토랑 음식도 맛있다. 가성비도 좋다.


캠핑장에 돌아오니 다행히 식당이 문을 열어 피자와 샐러드로 저녁을 먹고, 크로아티아와 덴마크의 축구 경기를 보며 일기를 썼다. 맥주잔을 든 사람들이 티브이 앞에 앉아 열심히 경기를 본다. 나도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에 감사하며 맥주를 한병 비웠다. 이렇게 평화로운 하루가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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