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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22.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21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21, 7월 2일 파디락 동굴(Padirac Cave), 카스텔노 라 샤펠 성 (Château de Castelnaud-la-Chapelle)-라 로크 가제악(La Roque-Gageac)



사전 온라인 예약을 해두었기에 9시 반쯤 방문객 센터에 도착했다. 창구에서 온라인 예매권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연간 40만 명 이상이 찾는 곳이다 보니 고객 센터도 크고, 아침인데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행히 한국말 오디오 가이드 장비가 있어서 아이들도 각자 동굴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1898년에 에드와르-알프레 마르텔이  처음으로 발견하고, 후에 기 드 라보르(Guy de Lavaur, 1903~1986)라는 사람의 투자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동굴은 40km까지 이어지나, 사람들에게는 2km만 개방되어 있다.

동굴 입구부터 경이롭다.

라스코 동굴은 동굴 자체보다는 조상들의 멋진 작품에 감동을 받은 곳이었다. 파디락 동굴은 커다랗게 뻥 뚫린 지상의 33m 원형 입구부터 압도적으로 인상적이다. 130미터 아래로 계단을 걸어서 내려간다. 다행히 올라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동굴 내부 기온은 일 년 내내 약 13℃이므로, 여름이라 해도 긴팔이 필요하다.




한참을 어두운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작은 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이 있다. 배를 타고 500미터가량 동굴 속의 강을 따라 가면 맞은편 선착장에 내려 동굴의 더 깊은 곳을 돌아볼 수 있다. 동굴 안에 이렇게 큰 강이 흐르고 또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처음 경험해본다.



동굴 내부의 강과 선착장


나는 어쩐지 동굴이 좋다. 평상시 가볼 기회가 많지 않아서 이기도 할 테고, 또 이렇게 더운 여름에 동굴에 들어가면 딴 세상에 온 듯 시원해서 좋다.  동굴마다  완전히 새로운 지질 구조를 볼 수 있는 것도 좋다. 그래서 여행지에 동굴이 있으면 가능한 한 꼭 방문하곤 한다. 파디락(Gouffre de Padirac) 동굴 그 자체로는 내가 가본 동굴들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멋진 동굴이었다.


 배는 한 번에 대략 열명 정도를 태운다. 노련한 뱃사공이 배 뒤편에 서서 기다란 노를 저으며 간다. 동굴 안에 길이가 500미터나 되는 강이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어둡고 고요한 동굴 안을 미끄러지는 배를 타고 한참을 가다 보니, 세상엔 정말 신비로운 곳이 많구나 새삼 감탄하게 된다.




동굴 안은 습도가 높아 걸어 다닐 때 행여나 아이들이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하지만 내부 통로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데 편리하게 정비되어 있다.



건너편 선착장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내리며 동굴 내부를 감상했다. 이쪽은 천정이 훨씬 높고, 갖가지 기이한 모습으로 형성된 종유석들과 조명을 받고 신비한 푸른빛을 내는 물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근처에 간다면 꼭 가보기를 추천하는 곳이다. 오죽 만족스러웠으면 보트에 타고 있는 모습을 담은 기념사진도 구매했다. 하하하.



한 시간 넘게 동굴 탐험을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오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서 대지를 덥히고 있다.  다음 목적지로 가기 전에 동굴 앞 카페에서 생크림을 예쁘게 함께 내어주는 애플파이와, 쵸코 크림이 듬쁙 올라간 크레페를 먹었다. 아 너무 잘 먹고 잘 노는 거 아닌가 살짝 죄책감이 든다.

아무데서나 먹어도 맛있는 디저트와 커피









프랑스 남부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길이 약 500km의 도르도뉴강이 있다. 이 강을 따라서 형성된 오래된 마을과 약 1500개의 성들이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다. 또 이 지역은 바이킹과 영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기도 했던 접전지라 성마다 사연도 많다.


오후에 방문해볼 곳은 라로크 가젝( La Roque-Gageac)과  카스텔노 라 샤펠 성 (Château de Castelnaud-la-Chapelle ) 그리고 The Marqueyssac gardens이다. 사실 이 근처에 성도 많고 아름다운 마을도 많아서 어느 시점에서는 마음이 마구 급해졌다. 그럴 때 방문할 장소를 딱 세 군데로 압축할 수 있는 절제력이라니. 하하하. 아마 프랑스 사람이라면 한 곳에서 한 달 이상 머물면서 느긋하게 즐기겠지. 다행히 이 세 장소는 해가 긴 여름날 오후에 비교적 여유롭게 다닐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아~네 저희는 렌터카 업체들도 주행거리를 보고 놀란다는 한국인입니다.

라로크 가젝( La Roque-Gageac)
유람선을 타고 도르뉴강을 위아래로 왕복해준다.

라로크 가젣은 강변을 굽어보는 절벽 아래에 있는 정말 작은 마을이다. 도로 옆에 기념품과 아이스크림, 와인 등을 파는 예쁜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선착장에는 도르도뉴 강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유람선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절벽 위쪽 동굴에는 기둥을 세워둔 요새 안이 궁금하긴 했지만, 그곳까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멀리서 바라보기로 했다. 서른 명 가까이 탈 수 있는 나무로 만든 유람선을 타고 강바람을 맞으며 잠시 휴식을 취해 본다.

라로크 가젝( La Roque-Gageac)의 혈거 요새



아름다운 아치들로 이루어진 도르도뉴 다리 뒤편 산자락에 카스텔노 라 샤펠 성 (Château de Castelnaud-la-Chapelle ) 이 보인다. 잠시 후 방문할 목적지이기에 눈여겨봐 둔다. 다리에서 유람선은 방향을 돌려 원래 출발지로 데려다준다.

도르도뉴 다리와 카스텔노 라 샤펠 성 (Château de Castelnaud-la-Chapelle )
라로크 가젝( La Roque-Gageac)






카스텔노 라 샤펠 성 (Château de Castelnaud-la-Chapelle ) 까지는 차로 10 거리이다. 도르도뉴 다리를 건너서 성으로 간다. 도로에서 성이 있는 마을로 갔지만 주차할 곳이 여의치 않아 다시 도로로 나와 500미터 근처 호두 농장 앞이 한산해 보이기에 주차를 했다. 키가 작은 호두나무들이 부드러운 연초록 빛을 사방에 뿌리고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호두나무 숲이 주는 청량감에 아이들과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호두나무 밭


카스텔노 라 샤펠 성 (Château de Castelnaud-la-Chapelle)은 영국이 차지하기도 하고 프랑스가 차지하기도 하던 격전지였다.  바로 전 La Roque-Gageac에서 유람선을 타고 구경했던 도르도뉴[Dordogne] 강이 성 아래로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고 강 건너 대각선에는 또 다른 성의 모습이 보였다. 전쟁과 종교로 살생이 항상 있었던 성들을 방문할 때마다, 그 안에서 혹은 그 밖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을 백성들이 떠오른다.



카스텔노 라 샤펠 성 (Château de Castelnaud-la-Chapelle)과 도르도뉴 강


성에 오기 전 유람선을 탔던 도르도뉴[Dordogne] 강이 성 아래로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고, 강 건너 산 위에 베냑성(Château de Beynac)의 모습이 보였다.




여행 내내 대부분 맑고 건조했다.



어른 키의 세배만큼 높은 아치문을 통과해 계단을 올라 성 내부로 들어갔다. 성은 아까 유람선을 타고 오가던 도르도뉴강과 주변 평야와 구릉지대를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높은 곳에 있다. 이곳은 푸아그라와 트러플의 주요 생산지로 유명하다.


왼편 산자락에 베냑성(Château de Beynac)이 보인다.



프랑스혁명 당시 훼손이 되었는데 보수공사를 마치고 현재는 사유지라고 한다. 성내부에는 기사들이 입던 갑옷과 창과 대포, 탄환 등 유물들을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도록 층마다 전시가 잘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전쟁에 쓰인 물건들에 특히 관심이 많았는데, 게임의 영향인가? 달군 쇠를 가지고 갑옷과 무기를 만드는 그림들도 흥미로웠다. 전쟁 당시의 상황을 만화처럼 그려놓은 그림을 보면서 전시된 무기들과 갑옷 그리고 요새로서의 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아이들과 한참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쟁 상황을 알기 쉽게 그린 그림
망루의 모형
멋진 기사의 모습
주방의 한구석
성 안의 화장실 사용설명서


성의 외부 뜰에서는 곳곳에 실물 크기의 나무로 만든 투석기가 있어서  손바닥만 한 모형 투석기로 만족해하던 9살 소년은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행복해했다. 이 놈아 저 투석기에 맞으면 죽어. 이 글을 쓰면서 사진을 확대해보니 성 바로 앞에 주차공간이 텅 비어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성벽 바로 아래 옹기종기 작은 붉은 지붕을 눌러쓴 장난감 같은 마을들이 정말 예쁘다. 전쟁 이야기를 좋아하고 중세 시대 배경의 게임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이라면 정말 좋아할 만한 성이다.

예쁜 마을







우리는 다시 다리 건너편으로 십분 정도 운전하여 The Marqueyssac gardens을 방문했다. 여름 성수기에는 밤 8시에 문을 닫기에 오늘 일정의 가장 마지막에 두었다. 이 곳은 말 그대로 정원인데, 잘 다듬은 정원수와 나무 그늘,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주변의 풍경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멋들어지게 잘 다듬었다.



공작들이 걸어다거나 담장 위에 앉아 있다. 아이들은 공작 뒤를 따라다니며 좋아했다. 부드러워진 저녁 햇살을 맞으며 나무들과 열매, 곤충들을 관찰했다. 작은 분수대에서 솟아나는 물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사람 키만큼 큰 나무들을 다듬고 그 안에 벤치를 두었다. 아이들은 숨고 잡으러 다닌다. 나는 아이들 뒤를 따라 나무가 터널을 만들어주는 길을 따라 조용히 걸었다.



식물 안내판도 예쁘네
자유롭게 다니는 공작새



바쁘다면 바쁜 여행이지만, 나는 가능하면 자연에서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다.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와 풀들이지만, 지구 반대편의 생전 처음 와보는 곳에 아이들과 서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문득문득 아득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오후의  부드러워진 햇살, 나무와 흙이 주는 편안함




구릉과 훤히 내다 보이는 야외 카페에서 음료수와 스낵을 먹으며 경치를 감상한다.  방문객이 많지 않았다. 이 주변에는 동양인 관광객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우리를 주목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카페


나는 특별히 이 정원의 기프트 샵이 마음에 들었다. 주변 관광지에서는 팔지 않는 독특한 제품들이 많았다. 특히 나무로 만든 식기와 생활용품, 정원과 나무에 관련된 책들이 많아서 둘러보는데 행복했다. 어쩐지 이렇게 맘에 드는 샵은 구매하지 않고도 흥미로운 물건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느꼈던 느낌이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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