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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23.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 #22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22, 7월 3일 콩끄(Conques) , 미요교(ViaducdeMillau), 생 길렘 르 데제르 (Saint-Guilhem-le-Désert)



4박 5일 동안 머물렀던 캠핑장을 떠나는 날이다. 여행 일정을 짜면서 가장 고민되는 부분 중 하나가 숙소를 어디에 잡고, 얼마나 머물 것인 가였다. 이동 거리를 계산하여 가능하면 한 곳을 정해서 최대한 오래 머무는 것이 아이들과 여행할 때는 덜 피곤하다.  숙소를 옮기는 일은 꽤 번거롭다.  우선 그동안 풀어놓은 물건을 다시 가방에 넣고, 대충이라도 숙소를 정리하는데 생각보다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콩크(Conques)이다. 이 곳에는 4세기경 12살의 나이로 순교한 성녀 푸아(Sainte-Foy)의 머리 유골이 전시되어 있다. 사실 이 유골은 아리비스퀴스(Ariviscus)라는 수도사가 다른 수도원에서 훔쳐온 것이다. 이 용감하고 기개 넘치는 수도사는 원래 이 유골을 보관하고 있던 수도원에 위장취업을 한다.  10년 동안 이 유골을 훔쳐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866년에 유골 탈취에 성공한다.  이 수도사의 헌신(?) 덕에 콩크는 기적을 체험하고자 몰려드는 순례자들로 번성하게 되었다. 차를 타고 오는 길에 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더니 재미있었는지 오래도록 기억하였다.  


콩크로 가는 길은 대부분 조용한 시골길과 숲길에 난 왕복 이차선 국도였다. 오고 가는 차량이 많지 않아 한적하며 느긋하게 운전할 수 있는 코스였다. 마지막 코스는 강줄기를 따라 구불구불한 산길을 가야 했는데, 크게 어려운 코스는 아니다. 이런 곳에 마을이 있다니 할 정도로 외딴 숲 속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관광객이 제법 많이 찾는 곳인지 마을 입구에는 주차 안내요원들도 여럿 서있다.


무릉도원 같은 곳이다.



산 중턱에 위치하여 보이는 것은 온통 산등성이와 나무와 하늘뿐인 곳이다. 산비탈에는 염소들이 방울을 딸랑거리며 풀을 뜯고 있다. 편평한 돌로 다듬어 만든 기와와 나무, 돌 벽돌로 지은 오래된 집들이 주변 숲과 어우러져 헨젤과 그레텔이 어딘가에서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이다.




순례길에 포함된 마을이라 기념품 가게에는 순례자를 위한 지팡이 등을 팔고 있고, 가게마다 순례자를 그린 그림을 걸어놓고 있다. 순례길과 관련된 것만 보면 왜 이리 하염없이 걷고 싶어 지는지. 머지않아 우리는 아마도 도보 여행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마을 입구에서 신부님이 바로 위 나무에서 떨어진 떨어진 열매를 주워서 드시고 있었다. 우리에게 인사하며 먹어보라고 건네주시기에 하나씩 맛을 보았다. 무슨 열매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먼 곳에서 온 여행객을 반갑게 맞아주시는 것 같아서 훈훈했다. 나에게 중세의 신부님이나 수도승은 [장미의 이름으로]라는 영화에 나왔던 숀 코넬리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고요한 마을, 새들이 많이 날아다닌다.




점심때가 되어 마을의 몇 안 되는 식당 중에 활기차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사실 이 마을은 활기와는 거리가 좀 멀다. 고요, 평화, 침묵이 어울리는 곳이다. 마을이 조용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식당 안은 제법 많은 손님이 있었다.  숲이 내다 보이는 야외 테라스 테이블에 앉았다.


 경치가 너무 좋아서 맥주 한잔을 마실 수밖에 없다.  검은 빵에 통깨가 촘촘히 박힌 버거와 통통하고 뜨거운 감자튀김, 감자와 베이컨, 치즈를 오븐에 구운 요리와 햄과 치즈를 곁들인 샐러드를 먹었다. 디저트로 아이들은 쵸코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나는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셨다. 프랑스에 와서 식당에서 먹는 음식은 매번 비슷한 느낌이지만, 작고 외딴 마을임을 감안해도 오늘 점심은 특별히 신선하고 맛이 풍부했다.

밖으로 숲이 내다보이는 식당 테라스, 식탁 위로 나무 그늘과 햇빛이 비친다.
신선한 재료로 만든 버거와 감자튀김
식당에서 식사할 때는 메인 메뉴만 시키지 않고 디저트도 함께 주문한다.






식사 후 재잘거리는 아이들과 함께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한국분이세요?”라고 물어보기에 돌아보니 젊은 한국 여자분이 서 있다.  이 젊은 여성은 프랑스인 남편과 이곳에서 살며 이 기념품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 마을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는 것은 손에 꼽히는 일이라, 한국말을 듣고 너무 반가워 뛰어나왔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극장이라도 가려면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가야 하기에, 서울에서 살던 시절이 그립다고 했다. 이런 작고 외진 아름다운 마을에서 살아보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 중 하나였다. 막상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 삶이 무조건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은 마을의 핵심인 성당(Saint Faith Abbey Church of Conques)을 빼먹을 수 없다. 성당은 마을의 크기를 감안하면, 크고 웅장하고 단단해 보였다. 1994년에 성당을 복원하였는데, 지금의 현대적인 스테인글라스는 술 라즈 Pierre Soulages 작가의 작품이라 한다. 사람들은 왜 옛날식으로 하지 않았냐며 비난하기도 하고, 새로운 방식이라서 신선하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하니 예술에 정답은 없는 법. 경건하게 살겠다고 처음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했을 첫 수도승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수도원을 부흥시키겠노라고 10년을 한결같이 유물을 탈취할 기회를 노렸던 수도승.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이 작은 마을과 성당의 역사가 더 궁금해진다.

콩끄 생 푸아 성당(Abbaye Sainte-Foy de Conques)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 성당, 혁명으로 일부 파괴되어 복원되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성당 건설에도 참여한 장인의 섬세한 작품
현대식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햇빛이 풍부하게 쏟아지는 성당 내부



만약 다시 여행을 한다면 하룻밤 정도는 이 마을 안의 작은 호텔에서 머물고 싶다. 관광객마저 모두 떠난 숲 속의 성스러운 마을의 밤과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밤에 우는 새소리를 듣고 싶은 곳이다.




경건한 삶을 위해 수도원을 세운 그 옛날 수도승의 마음이 이해된다.
산중의 작은 마을, 많지 않은 관광객마저 없는 밤이나 새벽은 어떨지 궁금하다.









오늘은 총 운전 시간이 4시간이나 되지만, 아침에 1시간 30분, 콩끄에서 미요교 다리까지 1시간 30분, 저녁에 숙소까지 1시간을 가는 일정이라 큰 무리가 되는 일정은 아니다.


미요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량으로 길이가 336.4m, 폭 32.05m이다. 왕복 4차로이다. 여행 시작 전에 몇 편의 프랑스 여행 관련 영화를 보았는데, 그중 한편이 미스터 빈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홀리데이]라는 영화이다. 그 영화 속에서도 나오는 멋진 다리이다. 사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다리라기에 왠지 출발 전부터 긴장이 됐다. 또 예의 같은 질문들 말이다. 길을 잘못 들어서면 어쩌지? 너무 커서 무섭지는 않을까?


다리 시작점에 톨게이트가 있어서 11유로를 지불해야 한다. 다리에 진입해서 달리기 시작하니 몽환적인 기분이 들면서 미래의 도시로 진입하는 듯했다. 지상에서 240미터 높이 위에, 개당 700톤에 달하는 7개의 주탑에서 뻗어 나온 케이블들이 다리의 상판을 지지하는 사장교(cable-stayed bridge )이다. 협곡에서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라면 다리의 흔들림이 느껴질 것 같다.


우리가 온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다리를 건너서 13km 정도 거리에 미요교 박물관(Musée de Millau et des Grands Causses)이 있다. 박물관 뒤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미요교의 전체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져서 안전하게 기념사진을 찍기에 적합하다.

박물관 위쪽 언덕에서 전망대에서 보이는 미요교
미요교 쪽에서 보이는 풍경




박물관은 미요교에 관한 모든 정보를 세세하게 묘사한 그래프와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하고 있어서,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아이들이 방문한다면, 다리 건설에 대한 구체적이며 생생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전시관에서는 영상과 모형, 도표 등을 통해 미요교에 관한 정보를 보여준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2박을 하게 될 생 길렘 르 데제르(Saint Guilhem le Désert)이다. 미요교에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데, 가는 길이 산악 지대여서 경관이 너무도 아름다웠고, 반쯤 왔을 때부터는 평야가 펼쳐지며, 크고 작은 마을을 지나쳐 갔다. 긴 하루였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일층에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2층과 3층에는 방을 빌려주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예약한 후 짐을 풀고 모두 샤워를 마쳤다. 이층 침대가 놓인 작고 귀여운 방이었다. 아이들은 이 층 침대를 반긴다. 서로 2층에 자겠다고 티격태격하더니 오늘은 누나가 내일은 동생이 자는 걸로 합의를 본다.


작지만 아늑한 숙소



발코니가 있어서 속옷과 양말은 손빨래를 해서 낮에 널어놓을 수 있다. 밤에 별이 쏟아지는 테라스의 작은 탁자에 앉아서 물이 흐르는 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바로 아래층이 식당이니 씻고 바로 내려가서 주문을 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와인 한 병을 시켰다.  여행을 하다 보면 다음날 운전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 놓고 와인 한 병을 마실 수 있는 날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다음 날은 코앞의 마을을 둘러보는 일정이 전부이기에 정말 맘이 편한 저녁이다.  사실 나는 와인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겸손하게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추천해달라고 직원에게 말했다.


“Could you recommend one from this area?”

" Yes, Sure!"


뭐 시골이지만 각국의 관광객이 오는 곳이라서 이 정도의 영어는 문제없이 소통이 된다.

오래 기억에 남을 친절한 직원
능숙하게 고기 얻어먹는 동네 강아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웨이터였다. 다음 생애에는 친절한 프랑스 남자와 꼭 연애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상냥한 사람이었다. 여행지의 멋진 풍경도 기억에 남지만, 그곳에서 누군가 친절한 사람을 만났다면 장소 전체에 훈훈한 기억으로 포장된다.


오늘도 생전 처음 와 보는 곳에서 잠이 든다. 침대에 모두 누워 이야기를 나누는 밤. 얘들아 오늘은 어땠니? 우리 별 보러 잠깐 테라스에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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