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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24.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23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23, 7월 3일 생 길렘 르 데제르(Saint Guilhem le Désert)


숙소에서 50미터만 걸어가면 마을의 중심 광장과 수도원, 상점들이 있기에 느긋하게 일어난다.  아래층 식당에 내려가 예약해둔 조식을 먹었다.


아침에 일하는 여자 직원도 생기 있고 발랄하다. 노래를 부르듯 상냥한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에너지가 주변에 흘러넘쳤다. 반드시 돈을 많이 벌고, 남들이 인정할 만한 직업을 가져야만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작은 마을의 식당에서 손님에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며 자신도 행복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의 삶은 성공하지 못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 수만큼의 크루아상과 바게트, 버터와 요구르트와 다양한 잼과 오렌지 주스를 차려주었다. 신선한 아침 공기와 바삭한 크루아상을 함께 베어 물었다.



마을에 흐르는 맑은 시냇물과 물고기







성당이 정면으로 보이는 마을 광장에는 크고 작은 파라솔이 300년은 족히 될법한 나무 그늘 아래 펼쳐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광장을 중심으로 아기자기한 소품과 기념품 상점이 눈길을 끌었다. 사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면 별것 없는데, 현지에서 구경할 때는 들뜬 마음 때문인지 사고 싶어 진다.


성당 앞 마을의 광장과 야외 테이블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
방명록에서 한글을 찾는 중


벌써부터 태양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시원한 수도원의(Saint-Guilhem-le-Désert Abbey) 성당 안에 들어가 초를 켰다. 이 녀석들은 북한에서 온 김정은이라고 방명록에 쓰려고 한다. 얘들아 제발 참아줘.


이 곳 수도원의 안뜰은 사각형 모양이며 사방이 건물에 둘러 쌓여 아늑한 느낌이다. 높은 언덕 위에 옛 성의 잔해가 보인다. 우리는 저기까지 올라가지 않을 거다. 일단 너무 높고 가는 길이 험하고 무엇보다 너무 덥다. 안 갈 이유가 너무 많다. 하하하. 수도원 내에 기프트 샵이 있는데, 신실한 가톨릭 친구가 생각나서 성당이 그려진 책갈피를 산다. 좋은 곳에 오면 항상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생각이 난다.


수도원의 안뜰과 산 위의 성의 잔해


생 길렘 르 데제르 성(Chateau de saint guillem le desert)의 잔해






이좁은 골목길은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돌과 흙으로 지어진 집들, 꽃과 나무로 장식한 창가, 옛날 스타일의 가로등. 어느 것 하나 튀는 것이 없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독특한 악기 상점, 집시 스타일의 향초와 소품을 파는 상점, 위스키를 파는 상점 등 구경할 거리가 많았다. 골목 중간중간 어른 한명만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좁은 길들도 재미있는 요소이다.


틴 케이스들로 만든 악기들



상가에 들어가서 주인들과 짧은 대화를 나눈다. 어디에서 왔는지, 여행은 얼마나 오래 하는지를 보통 물어본다.

나는 요즘 장사는 잘 되는지, 이런 작은 마을에서 지내는 것이 어떤지 등을 묻는다. 휴가지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친절한 상점 주인들과의 짧고 유쾌한 대화가 즐겁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피자집의 내부는 원래의 돌과 흙이 그대로 드러나게 두었는데, 마치 동굴 속처럼 시원하고 아늑했다. 피자는 한국 피자가 최고인 아이들은 배가 고프니까 몇 조각 먹고, 오렌지나(프랑스 전역에서 판매되는 오렌지맛 탄산음료)와 콜라를 더 맛있게 먹는다. 녀석들 한국음식이 그리운 게야.



길에서 만난 작은 도마뱀








4시쯤 숙소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했다. 마을에 숙소를 잡은 덕분에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 시원한 숙소에서 뒹굴거린다. 오늘 쇼핑한 해리포터의 주제곡이 나오는 오르골을 돌려 소리를 내고 칼림바를 뜯고 피리를 불고 작은 악단이 따로 없다. 뭐 박자도 멜로디도 각자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내지만, 작은 발코니 사이로 부는 바람과 선풍기 바람, 끊이지 않는 시냇물 소리, 길가를 거니는 사람들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기분 좋은 소리이다.


얘들아 미래의 어떤 힘든 날 지금을 기억하자. 함께 웃고 즐거웠던 프랑스 어느 시골마을 오후를.








한동안 한식을 먹지 못해 우리는 금단 현상에 시달렸다. 가장 가까운 아시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차로 20분 정도 달려갔다. 주변 도로는 포도밭, 들판에는 포도밭뿐이다.


온통 포도밭이다.



저녁 무렵인데 사람들이 길에 많지 않고, 황량한 느낌마저 감돈다. 바람에 비닐봉지가 날아다니다. 가게 앞에 섰는데, 이 가게가 영업 중인지 아닌지도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가게 안의 희미한 불빛이 켜져 있어서 들어가니 다행히 영업 중이었다. 붉은 계통의 인테리어로 채운 중국식당이다. 손님은 우리 밖에 없다.  간장 베이스 소스에 굵은 계란면과 야채를 함께 볶은 면요리와, 포슬포슬한 밥의 볶음밥을 먹었다. 역시 밥이 들어가니 사람이 온순해진다.



간장만 들어가도 한국의 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여느 날과 비슷하게 씻고 일기 쓰고 약한 와이 파이 신호를 잡아본다.  아이들이 잠들고, 한밤중에 테라스에 나가 봤다. 외딴 시골 마을의 달콤한 공기와 푸른 밤하늘에 수놓은 수많은 별들이 반겨주었다. 낮에도 흐르던 시냇물이 밤에도 똑같이 졸졸졸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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