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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25.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24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24, 7월 5일 퐁뒤 가르( Pont du Gard), 오헝쥬(Orange)





악마의 다리(Le Pont du Diable)



숙소 가까운 협곡 사이에 아름다운 다리가 있는데 이름하여 악마의 다리(Le Pont du Diable)이다. 젤론(Gellon) 계곡 위로 14세기경 지어진 이 다리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당시 이 지역 사람들이 이곳에 다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소원했는데, 악마가 그 소원을 들어주어 다리를 지었다. 악마는 그 대가로 이 다리를 처음 지나가는 영혼을 데려가겠다고 해서, 사람들이 고양이를 먼저 건너가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다리 아래로 풍부한 강물이 흐른다.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물이 고인 잔잔한 곳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3~4명 있을 뿐 매우 조용하다. 성수기에는 협곡에서 카누도 타고 다이빙도 하는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주차할 곳을 찾기 어렵다는 후기가 많다. 그만큼 경치도 좋고, 물놀이 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숲길을 걸어 다리 아래 잔잔한 물가까지 가는 산책로가 좋았다. 물가에 앉아서 이제 막 꼬리가 사라지고 있는 작은 개구리를 발견하기도 하고, 납작한 돌을 찾아서 물수제비도 뜨면서 평화로운 아침 한 때를 보냈다.

물수제비 뜨겠다고 돌 고르는 중


아주 작은 개구리










이제는 프랑스의 국도이건 고속도로건 완전히 적응이 된 것 같다. 유일하게 사용하는 핸드폰의 구글맵으로도 원하는 곳을 찾아가는데 충분했다. 우리나라처럼 곳곳에 과속 단속 카메라는 없지만, 도로마다 눈에 잘 띄게 제한 속도를 표시해 두었다. 제한속도 지키면서 운전하면 안전하고 크게 어려울 것이 없다.


구글맵의 시스템에도 적응을 완료해서 길을 잘못 드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국도에는 마을과 마을 인접한 도로에 로터리가 많은데 이 역시 로터리에 이미 진입한 차량이 지나간 후에 진입하면 크게 어렵지 않다. 차가 없는 곳의 로터리는 신호등보다 훨씬 편리한 시스템이다.  


출발 전에 도착지의 가장 편리한 주차장의 위치를 검색하고 주차장의 위치를 네비에 목적지로 설정하는 것도 편리하다. 야외 주차장의 경우 위성사진을 통해 대략적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구글 지도에서 주차장 정보를 검색해보면 사람들의 후기가 있으므로 요금이나 시설 상태 등을 참고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프랑스 전역의 작은 도시들에서 주차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주차 요금은 처음부터 아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고 정신건강에도 좋은 것 같다.




나무가 많은 국도


마을을 지나는 도로 제한 속도는 시속 30km











퐁 드 가르는 며칠 전 방문했던 Nimes까지 물을 공급하는 수도교로 로마인들이 지은 건축물이다. 주차요금이 포함된 입장료가 9유로이지만 나는 문화유산을 관리하고 보수하는데 쓰는 비용이라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주차 후 전시관 옆의 공식 카페에서 간단한 샌드위치와 샐러드로 점심을 먹었다.


이날도 역시 햇빛이 쨍쨍해서 먼저 시원한 실내의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로마 시대 건축물과 도시 계획에 관한 세세한 정보와, 유물들, 퐁 뒤 가르에 매설된 파이프 등이 전시되어 있다. 로마의 손길이 유럽 전역에 닿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로마시대의 파이프




전시관에서 다리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사람들이 제법 많다. 다리 아래로는 넓고 수량이 풍부한 가르 강(Le Gard)이 흐른다. 역사적인 가치도 있고, 보존 상태며 조형미며 어디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강물과 드넓은 들판이 이오랜 구조물과 어우러진 모습은 아름답다.  




사람들은 바위 위에서 선탠을 하고, 물에서 헤엄치고 카약을 타고 있다. 겁이 많은 나는 발이 바닥에 안전하게 닿는 투명한 수영장 외에서는 수영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내가 좀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아이들도 현지인들처럼 수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 텐데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겁을 좀 줄여야겠다.



푸른 하늘 구름이 예쁜 날이다.



삼층으로 이루어진 다리의 이층 부분이 보행자들의 길이다. 2층에는 거대한 아치들이 8개 있다. 아치 아래로 걸어가는데 감동이 밀려왔다. 다리 아래 그늘에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하늘은 진한 푸른빛이고, 솜사탕 같은 흰구름과 강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이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얼핏 보아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다리 난간에서 경치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며 이 유명한 다리를 즐기는 중이다.


 다리 끝 지점에서 계단을 따라 비탈길을 올라가면 다리의 3층 부분을 볼 수 있다. 위쪽에서 다리의 옆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석회암을 고르게 다듬어 만든 벽돌들이 아직도 튼튼하고 견고하게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다리의 3층 부분 수도관이 지나가던 터널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내가 확실하게 프랑스에 오기로 결정하게 만든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사진 출처(CHOREGIES D'ORANGE) 사이트



 해마다 열리는 오헝주(Orange) 한여름밤 오페라 공연장, 2000년 된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안에 관중이 가득 차고 무대 조명이 환하게 무대를 비추고 밤하늘은 깊은 푸른색인 사진이었다. 나는 오페라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이 사진에 그토록 마음이 설레었던 걸까? 나의 오페라 경험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전 일이다. 남산의 국립극장에서 파우스트를 본 게 다였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메피스토 텔레스를 보게 되었다.


오페라 티켓이 비쌌기 때문에 오늘의 숙소는 약 2.5평, 1박에 45,000원짜리 숙소이다. 어차피 하룻밤만 묵을 곳이라 최소한의 짐만 들고 숙소에 들어왔다.  이 오페라를 예매하면서 주변 숙소를 살펴보았는데, 오페라가 공연되는 동안에는 숙소도 예약하기 어려웠고 가격도 비쌌다.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위치면 매우 만족스러운 조건이었다. 무엇보다 비싼 오페라 티켓을 구매한 것을 조금이나마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좀 위안이 되었다.


어차피 하룻밤만 묵을 곳이라 최소한의 짐만 들고 숙소에 들어왔다.  벙커 침대가 놓여 있고 간신히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다. 입구 반대편 벽에 붙은 미니 탁자와 바로 옆에 딱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넓이의 샤워장과 변기가 있다. 전기포트도 없어서 우리의 만능 미니 전기밥솥에 물을 끓이고 마트에서 사둔 일본 컵라면에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 수프를 넣어서 먹었다.  납작하고 달콤한 유럽 복숭아를 후식으로 먹었다.

아주 작고 아주 싼 숙소(Hôtel Première Classe Orange), 도심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극장 주변에는 영화제 레드 카펫 위를 걸어가야 할 것 같은 차림의 주로 중년과 노년의 커플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들의 차림새와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나의 차림새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특히나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딸도 그 차이를 단박에 눈치채버렸고, 몇 번이나 나에게 옷을 갈아입고 왔어야 했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7월의 저녁 바람이 고대 야외극장에 불어온다. 10,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관중석은 이미 만원이다. 대부분이 프랑스 관람객인 것처럼 보이는데, 아마도 가까운 도시는 물론 먼 지방에서도 해마다 열리는 한여름 밤의 이 꿈같은 무대를 보기 위해 일 년을 기다린 사람들이겠지.


만석이다.




무대 앞 오케스트라 자리에서 연주자들은 악기의 조율을 마치고, 지휘자가 등장했다. 나의 예상과 달리 곱슬머리에 검은 정장과 흰 셔츠를 입은 여성 지휘자이다.


오케스트라가 악기를 조율 중이다.



학교 운동장의 관람석처럼, 내가 앉은 좌석에는 뒷사람이 발을 내려놓아야 하기에 애초에 편한 자세를 취하기는 어려웠다. 몇십만 원짜리 좌석인데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어야 하다니. 특히 9살 아들에게는 더욱 불편한 밤이 될 것 같다. 다행히 아이가 나에게 기대고 편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옆자리 아름다운 프랑스 부인이 작은 쿠션을 빌려 주었다.



막이 오르길 기다리는 사람들




어느새 해가 지고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모두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000년 전에 세운 야외극장이 아직도 건재한다는 사실도 놀랍고, 그곳에서 실제로 공연이 이뤄진다는 사실도, 무엇보다 아이들과 내가 A석 11열 42, 44, 46 좌석 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 모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21:45 Théâtre Antique Orange,    Mefistofele




드디어 7월 프로방스의 부드러운 밤이 장막을 드리우고, 무대의 막은 올라갔다.  1막 1장은 흰 옷을 입은 천사들 수십 명이 등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 후 의기양양하며 매력을 뿜어내는 메피스토펠레가 병들어 죽어가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자기가 취하여 승리하여 보이겠노라고 호언장담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흰옷을 입은 합창단의 노래는 말 그대로 천상의 노랫소리 같았으며, 두 번의 밀레니엄과 두 번의 세계대전 동안 건재해온 극장의 벽면에 구름 영상을 비추어서 황홀한 무대를 만들었다.

천사들이 신을 찬미하는 장면




극은 중반으로 가면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 여주인공들의 솔로 곡이 이어지며 점점 더 진지해졌다. 공연 시작 전에 근처 초밥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각 장에 대한 스토리를 요약해서 알려 주었다.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악마인 메피스토텔레가 늙은 파우스트의 영혼을 빼앗아오는 이야기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늙은 파우스트는 기꺼이 혈기왕성한 청춘으로 돌아가기를 택하고, 그 대가로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넘겨준다. 다시 한번 젊은 청년의 인생을 살게 된 파우스트는 시골의 사랑스러운 아가씨와 연애하기도 하고, 트로이의 절세미인이자 예언자 헬레나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며 영화 같은 인생을 즐긴다.


나에게도 악마가 젊음을 돌려준다고 제의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잠시 고민 한다. 젊은 시절의 그 수많은 방황과 시행착오를 또다시 겪느니, 지금 이 토끼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40대 엄마의 역할이 더 만족스럽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록 배우들의 대사와 노래는 이탈리아어로 자막은 프랑스어라서 어느 하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스토리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세계적인 수준의 오케스트라의 악기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무대가 변하는 것을 감상하느라 3시간이 조금도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페라 문외한인 나조차 공연이 끝나자 큰 아쉬움이 남았다. 훌륭한 무대였다. 특히 메피스토펠레 역을 맡은 주인공이 매우 매력적인 악마 연기를 해냈다. 관중들의 박수갈채가 10분 동안 끊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브라보를 외쳐댄다. 모든 출연진이 나와서 인사를 하고 또 인사를 하고, 나와 아이들도 손바닥에 열이 날 정도로 박수를 쳤다.

무대 인사 하하는 배우와 지휘자





그렇게 아이들은 생애 최초의 오페라를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관람했다. 아들은 반은 졸며 보았다. 하지만 13살 딸은 눈을 반짝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관람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극장을 빠져나와 숙소로 향했다. 무대의 조명과 합창, 배우들의 연기는 어두워진 중세 마을을 빠져 나가는 내내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특히 벌써 작은 불꽃을 내뿜기 시작한 십 대의 소녀에게는 평생에 남을 추억을 남겼으리라 믿으면서.


공연이 끝나고 귀가하는 사람들


나처럼 오페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오페라의 스토리를 미리 알아보고, 곡들을 몇번 들어보고 현장에 간다면 틀림없이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훌륭한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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