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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Nov 06.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 #42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42, 7월 23일, 슈베르니(Cheverny)






오늘은 구글맵 상으로 5시간 운전을 해야 하는 날이다. 중간에  휴식 시간을 포함한다면 나의 운전으로는 넉넉잡아 7시간은 걸릴 것이다. 장거리 운전을 혼자서 해야 하니 부담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이제 이곳 운전에도 꽤 익숙해졌으니, 중간 중간 휴식만 취하면 안전하게 도착할 것 같다. 9시쯤 출발하니까 늦어도 오후 4시 전에는 슈베르니의 호텔에 도착할 것이다.


오늘과 내일은 작정하고 돈을 좀 쓸 생각을 한 일정이다. 성 호텔에서 묵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난번처럼 성에서 쓰던 헛간을 개조한 것이 아니라 진짜 성 안의 방을 예약해두었다.


심호흡을 하고 출발한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순탄하게 잘 달렸다. 화장실에 들르러 휴게소에 들렀다. 나는 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커피를 마셨고, 아이들은 도넛과 과자를 먹었다. 잠시 휴대폰으로 한국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평소 좋아하던 노회찬 의원의 사망 소식을 보고 말았다. 돈이 뭐길래. 운전하면서 슬픈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중간에 한번 더 화장실과 벤치만 있는 휴게소에서 쉬었다. 그늘 아래 풀밭에 돗자리를 펴고, 점심으로 준비한 샌드위치와 사과를 먹었다. 다행히 아이들도 멀미 안 하고 장거리 여행에 피곤한 기색이 없다.


프랑스의 고속도로는 차선을 지키고 속도를 유지하면 편안하게 달릴 수 있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추월 차선은 항상 비어있고, 추월하고자 하는 차들은 여유를 두고 나를 추월해 간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 마을로 들어선다. 평야와 목초지를 한참 달려 드디어 2박 3일을 머물 성(Chateau du Breuil) 호텔에 도착했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기대하던 호텔이 자태를 드러냈다.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서둘러 건물로 향했다. 지난번 그르노블 근처에서 묵었던 호텔보다 두배 정도 더 큰 성이다.


공주님이 잠들 것 같은 방에 짐을 풀고, 곧장 수영장으로 갔다. 우리 평생에 가장 호사스러운 날이 될 것 같다.


 아이들은 수영도 하고, 내 옆에 와서 휴대폰으로 게임도 하며 느긋한 오후 시간을  보냈다. 먼길을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에너지가 넘친다.  숲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수영장 물이 오후의 햇살 덕에 아직 따뜻하다. 이런 좋은 곳에 올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한 팀과 막 연애를 시작한 듯 뜨거운 연인 커플이 있었다.



영주의 딸이 잠들 것 같은 침대




성 안의 넓은 정원과 숲



저녁 식사 전에 한 시간 정도 성안에 있는 숲길을 걸었다. 나무로 둘러싸인 넓은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기도 했다. 아들이 고무줄로 날리는 비행기를 날렸는데 그만 비행기가 나뭇가지에 걸렸다. 신발을 벗어던져서 비행기를 땅에 떨어뜨릴 수 있었다. 부드러워진 늦은 오후의 햇살이 나무 사이로 부드럽고 환한 빛을 비춘다. 멀리 하늘에 열기구가 떠 간다.


언젠가는 한번 꼭 타보고 싶은 열기구








투숙객에만 제공되는 호텔의 저녁 식사를 예약해 두었다. 1인 당 42유로에 애피타이저, 스타터, 메인 코스와 디저트가 나온다. 생전 처음으로 코스마다 어울리는 와인 페어링을 신청했다. 식사 외 별도로 26유로를 내면 네 가지 다른 종류의 와인을 무제한 맛볼 수 있으니 꽤 괜찮은 옵션이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얇은 빵, 소스와 치즈와 함께 맥주를 마셨다. 나는 고기 요리보다 이런 가벼운 먹을거리가 좋다.




프랑스 요리도 먹어본 적이 거의 없고, 와인도 마트에서 가격보고 사는 나이지만, 가재, 릭, 차이브를 갈아 만든 크림 수프와 블랙베리, 사과와 감자를 곁들인 오리 구이와 반쯤 익힌 참치 스테이크를 메인 요리가 내 입맛에도 맞았다.






여행지를 돌며 점심을 먹을 때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불평했던 것이 생각났다. 저녁에는 오히려 식사가 천천히 나와서,  맥주와 애피타이저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림처럼  플레이팅 된 음식을 보는 즐거움도 컸다.



내 생애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저녁식사였다.


히비스커스 시럽을 뿌린 티라미스와 코코아 비스킷에 슈 베르니 지역에서 생산된 발음하기도 어려운 화이트 와인과 또 다른 종류의 3가지 와인을 마시니 여왕이라도 된 기분이다. 아이들도 격식을 갖추어 서빙해주는 웨이터 때문에라도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예쁘게 앉아서 먹는다. 나 닮아서 걱정이 많은 딸은 이렇게 비싼 거 먹어도 되냐고 몇 번을 물어본다. 걱정하지 마 딸! 우리도 가끔은 예쁘고 좋은 것도 먹으며 살자.








와인을 세 잔이나 마시고 나니 더 행복해져서 아이들과 즐겁게 또 오솔길을 산책하고 해가 져서 어둑해진 하늘도 바라보았다. 안전하게 먼길을 운전해온 나에게 칭찬을 하고, 잘 따라와 준 작은 친구들과도 포옹을 하며 칭찬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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